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응원해주고 싶은 책이다. 언론사에서 이런 기획 많이 하고, 그걸 다 단행본으로 내면 좋겠다. 급식 노동자의 장화를 얼마나 자주 사는지가 영양사에 달려 있고, 산불을 끄는 게 정규직 소방대원이 아니라 계약직인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여성용 여성 장갑이 없다는 사실도, 비행기의 여성 승무원이 바지 유니폼을 신청하면 어딘가로 불려간다는 사실도.
소설에 ‘가짜’, 혹은 그와 비슷한 단어가 많이 나온다. 가짜 총, 가짜 총알, 가짜 욕, 가짜 외국인, 가짜 영어 교사, 가짜 경찰, 위조지폐, 신분 위장. 그 가짜들은 하나같이 성의가 없다. ‘장군님 솔방울 던지니 수류탄 터진다’(왜 하필 이 문장을 사례로 드는지는 작품을 읽으면 알 수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그 무성의한 거짓말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장군님 솔방울 던지니 수류탄 터진다’와 똑같다. 잉글리시 타운이라는 장소 자체가 그렇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언어를 뺏긴 채,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모두 가짜”라는 말을 듣고, “모두가 그렇다고, 연기조차 전부 우리의 삶이라고 대답”하며 살아간다.
생생하고, 매끄럽고, 재미있고, 공감된다. 자기계발서로 소비되는 게 아까울 정도. 작가가 분명히 다음 소설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팀장이 된다는 건 어른이 된다는 뜻이로구나. 그에게는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며, 져야 할 책임이 있다. 충분한 힘이 없어도 자신과 주변을 통제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어 괴롭고 또 외롭지만 내심을 감추고, 자신보다 미숙한 이들을 보호하고 이끌며 때로는 따끔하게 꾸짖어야 한다.
제가 평소에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신 분은 별로 안 계실 거예요. 말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느립니다. 목소리도 아주 작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내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좀 빨리 얘기해”랑 “웅얼거리지 마”입니다. 제가 말하는 거 듣다가 아내가 답답하다며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송이나 강연에서는 의식적으로 빨리, 크게 말하려 하는데 그럼에도 PD님들로부터 “조금만 텐션을 높여주세요” 같은 지적을 자주 받습니다.
얼마 전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평소의 2배속으로 말하고 왔습니다. 방송 시간도 길지 않고 질문도 워낙 다양해서요. 녹음을 마치고는 너무 빠르게 말했나 후회가 되더라고요. 이렇게 말을 빠르게 한 적이 없었으니...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40대와 50대뿐 아니라 30대, 60대에게도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 최근 읽은 책 중에 이 정도로 실생활에 도움이 된 책은 없었다. 듣기만 좋은 헛소리 같은 것은 없다. 논리적으로, 근거를 바탕으로 인생이 왜 50부터 반등하는지 살핀다. 사람이 중년 이후 지혜로워지는 데 진화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혜의 본질이 무엇일까 같은 생각 거리도 던진다.
이런 이야기 좋아한다. 권선징악 같은 데 얽매이지 않고, 수위 조절 같은 거 신경 쓰지 않고, 징그럽고 비린내 나게 막 나가는 무서운 이야기. 복고풍이라는 느낌을 받은 걸 보면 요즘은 이런 작품들이 잘 안 나오는 거 같다. 몇몇 인터넷 서점에서는 성인 인증을 하지 않으면 책 표지를 볼 수도 없다. 그 정도는 아닌데. 그런데 그 중 한 인터넷 서점에서 성인 인증 없이 전자책으로 읽었다.
넷플릭스는 고사하고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도 없던 어린 시절, 가족이 함께 본 드라마 중에 ‘조선왕조 오백년’이 있었다. 부모님이 시청을 북돋운 유일한 TV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역사를 배운다거나 심각한 교훈을 얻는다는 생각 없이, 권력을 둘러싼 군상극이 재미있어서 봤다. “이 손 안에 있소이다” 같은 유명한 대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G. F. 영의 저작 ‘메디치 가문 이야기’(현대지성)은 ‘조선왕조 오백년’과 흡사한 책이다. 15세기 초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메디치 가문의 흥망을 상세히 그린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같은 유명 인사들도 조연으로 등장한다.
권력자가 존경을 얻는 길, 명문가를 일구는 비결, 문화예술 후원,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사항들을 염두에 두고 읽어도 물론 좋다. 그러나 교훈을 찾겠다는 강박 없이, 역사 드라마를 보듯이 즐기기에도 충분하다. 그런 면에서는 반듯한 선조들을 찬양하는 분위기인 전반부보다, 개인적인 흠결이 있거나 시대의 한계에 부딪혔던 후손들이 나오는 후반부가 더 재미있다.
저자는 남자들뿐 아니라 카테리나 스포르차,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 같은 메디치가 여인들의 삶도 비중 있게 다룬다. 특히 프랑스 왕비가 된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이 책에서 가장 길고 깊이 있게 묘사되는 인물로, 전체 768쪽 중 100쪽 넘는 분량이 그녀 얘기다. 종교전쟁 시기, 거듭되는 위기를 헤쳐 나가며 섭정으로 훌륭한 정치를 펼쳤으나 인기는 없었고 개인사도 불운했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 읽어도 흥미진진한 평전으로 손색이 없다.
이 책은 한국에서는 1997년 ‘메디치’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 출간됐다. 박명곤 현대지성 대표가 해외 서점에서 읽고 수입을 결정했다고 한다. 2017년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바꾸고 교정도 새로 작업한 개정판을 내면서 제목을 ‘메디치 가문 이야기’로 변경했다. 박지성 현대지성 이사는 “1만 부 이상 팔리며 꾸준히 사랑 받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후세 사람들은 환관과 외척을 황권을 위협하고 정치를 어지럽힌 존재로 기억한다. 그러나 실은 그들의 권력은 황제로부터 나온 것이며, 황제가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자기 남자 형제들과 신하들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측근 정치, 측근 경영의 위험성은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한국 정치와 재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방 전문대졸 용접공의 삶’이라고만 적기에는 그가 용접공이 되기 전, 전문대에 가기 전의 가정사도 참 기구하다. 청년공은 이슬람 신자인 외국인 노동자와 경쟁하고, 노조가 투쟁해서 얻어낸 냉방 되는 휴게실은 하청업체 직원은 이용할 수 없다. 논픽션을 쓰러 거제도에 내려가는 저자를 응원한다.
‘계층화폐’라는 개념으로 암호화폐가 확고부동한 화폐이 고, 달러 체제를 대체할 거라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암호화폐가 그게 돈인지 아닌지 같은 논의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막연하게 블록체인은 중요한 미래 기술인데 암호화폐는 그걸 사용하니까 의의가 있다는 정도로 여겼는데, 돈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