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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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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되풀이해서 읽을 책이냐. 그렇진 않음. 재미있었느냐. 최근 읽은 책 중 최고였고 찡하고 짠하기까지. 주변에 권할 거냐. 아는 사람 모두에게 권하련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113. 추적자 (리 차일드)

  잭 리처 시리즈 1탄. 독자의 피를 끓게 하는 솜씨도 훌륭한데 간간이 나오는 주인공의 감정 묘사, 남부의 촌스럽고 쓸쓸한 정경 묘사도 빼어남.


추적자
추적자
112.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할 헤르조그)

 이 책에는 내가 미친듯이 좋아하는 두 가지가 있다. 동물, 그리고 윤리적 딜레마. 그 두 테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매우 좋은 책.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 모든 것에 관하여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 모든 것에 관하여
11. 루포닉 디스토션: IPA 시리즈 No.016과 폭설

  서울에 폭설이 쏟아진 날 낮에 라디오 독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역시 신간 에세이를 홍보하는 자리였다. 10년 전에 첫 출연했던 프로그램인데 진행자도 담당 방송작가도 모두 그대로였다. 그 10년 사이에도 여러 번 출연해서, 이제는 만나는 것이 제법 반갑고 편안했다. 녹음하면서도 그 얘기를 했다.

  공중파 방송사 두 곳에서 라디오 독서 프로그램 진행자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두 제안 모두 거절했었다. 집필에 집중하겠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이후로 소설을 열심히 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 제안들 거절하지 말 걸. 매일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몰라도 일주일에 한 번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무척 아쉽다.

  방송국에 가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리고 오는 데에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정작 녹음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가는 길에 전화 영어 수업을 했다. 나는 영자신문을 읽고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수업에 등록했다. 이날 기사는 세계 최고령 노인인 일본의 어느 할머니가 117세 생일을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몇 살까지 살고 싶으냐고 묻기에 “영원히 살고 싶다”고 대답했더니 강사가 당황해했다.

  점심을 걸렀기 때문에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배가 무척 고팠다. 에어프라이어용 치킨 텐더스트립을 조리하고, 처가에서 보내준 가래떡과 캐슈넛을 저녁으로 먹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밤에 술집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에어프라이어를 샀는데 대만족이다. 술집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맛있게 안주들을 만들 수 있다. 거실 분위기도 어지간한 가게 못지않다 보니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도 술집에 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맥주도 꺼냈다. 보틀숍에서 사 온 ‘루포닉 디스토션: IPA 시리즈 No.016’이라는 병맥주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수제 맥주 회사인 파이어스톤 워커의 컨셉 양조 제품이다.

  이 회사는 여러 가지 홉을 섞어서 다양한 향을 내는 인디아 페일 에일을 만들어 분기에 한 종류씩 한정 판매하는데, 그 16번째 제품이다. 이번에는 복숭아, 눈깔사탕, 용과(龍果) 향을 내봤다고 한다. 첨가제 없이 오로지 홉만으로 그런 향을 냈다는 게 파이어스톤 워커의 자랑이다.

  거실에서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닭가슴살 튀김을 먹고 있는데 창밖 먼 곳이 뿌옇게 보였다. “지금 눈이 오는 거야?” HJ가 물었고 나는 유리에 김이 서린 것 아니냐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는 사이에 바깥 풍경은 점점 희뿌예져갔다. “눈이네! 눈이다!” 우리는 몇 분 뒤에 함께 소리쳤다. 폭설을 머금은 구름이 남쪽에서부터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HJ나 나나 눈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오늘 눈 온다고 했었어? 기상청이 예보했었어?” 우리가 흥분해서 지켜보는 사이에 눈발은 점점 강해져 마침내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2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길 건너 건물의 윤곽이 보이지 않았고, 건물 꼭대기의 네온사인만 유령처럼 둥둥 떠 있었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가래떡을 안주로 잔뜩 먹어서인지 평소보다 식곤증이 심하게 밀려왔고 나는 침대에 가서 눈을 붙였다. 30분쯤 자고 일어났더니 HJ가 밖에 나가 눈 구경을 하자고 했다. 집 앞 놀이터에 아이들이 나와서 놀고 있다며.

  “그럴까?” 나는 망설이다가 그러기로 했다. 가장 두꺼운 내복을 찾아 입고, 가장 두꺼운 점퍼 아래 두툼한 셔츠와 스웨터를 걸치고, 가장 두꺼운 비니 모자를 썼다. HJ도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 패딩을 입고 귀 모양 장식이 달린 귀여운 털모자를 썼다. 하도 옷을 껴 입어 걷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을 나가니 이미 제법 눈이 쌓여 있었다. 하늘이 하얬고, 가로수에는 눈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처음에는 집 바로 앞에 있는 놀이터까지만 갈까, 아니면 그보다 조금 멀리에 있는 공터―동네 흡연자들이 주로 찾는―까지 갈까 했는데 기왕 나온 김에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500미터쯤 떨어진 공원까지 걸어가서 풍경을 감상하고 오기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아장아장 걸었다. 자동차들도 엉금엉금 다녔다. 대단치도 않은 경사를 차들이 오르지 못하고 바퀴가 헛돌았다. 내려서 승용차 뒤를 미는 승객들도 곳곳에 보였다. 이런 큰 눈이 몇 년 만인지. 그리고 사람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왜 눈이 오면 다들 마음이 들뜨는 건지.

  공원에 가보니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썰매를 가지고 나온 가족도 있었다. 그런데 젊은 어머니가 썰매를 타고 어린 딸이 그걸 끌었다. 개와 함께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이 난 개도 있었고, 눈을 보는 게 처음인지 어리둥절한 듯한 개도 있었다. 어떤 개 한 마리는 내게 달려들어 발을 내 허벅지에 올리고 갔다.

  산책로는 무척 아름다웠다. 우리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바닥에서 HJ가 영화 《러브 스토리》의 한 장면처럼 누워 보겠다고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포기했다. 폭이 좁은 길에서 나는 HJ를 앞장세웠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경치를 보고 새 눈을 밟으라는 뜻에서였다. 그렇게 걷던 HJ가 “이렇게 걸으니 기분이 정말 이상해”라며 나와 자리를 바꾸었다. 뺨과 마스크 사이에서 입김이 올라와 안경이 자꾸 흐려졌다.

  의외로 춥지는 않았다. 눈은 그 사이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렸다. “홋카이도가 바로 여기네.” 그 말을 HJ가 몇 번이나 했다. “이런 게 인생이야. 이런 걸 많이 봐야지.” 나는 그런 말을 여러 번 했다. 나는 HJ에게 데리고 나와서 고맙다고 했다. 문득 로맨틱한 기분이 들어 뽀뽀를 해 달라고 했더니 HJ는 마스크를 쓴 채로 내게 입을 맞추었다. 이걸 ‘코로나 뽀뽀’라고 한단다.


 흔치 않아 기쁜 것들

  음미하며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자동차 운전자들은 길에 갇혀 패닉 상태에 이른 것 같았다. 제설 작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어떤 운전자는 보도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그냥 가버렸다. 버스 안에 있는 승객들은 넋 나간 표정들이었다. 내려서 카페에 갈 수도 없을 텐데. 설마 이런 날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킨다고 밤에는 대중교통을 축소 운영하나?

  흡연자들의 공터에서 한 사내가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아파트 앞에는 이미 누군가 3단 눈사람을 세워 놨다. HJ는 집에 돌아와서 그녀가 다니는 독서동호회 사람들이 단체대화방에 올린 설경 사진들을 보여줬다. 우리가 찍은 사진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풍경들이었다. 우리 동네가 최고였다.


10. 호가든과 기타 레슨

 『우울할 땐 뇌과학』도 조언하는 내용은 다른 책들과 같았다. 그러나 신경생리학적인 근거를 붙여 놓으니 더 믿음이 갔다.

  몇 번이고 강조하는 것은 운동이었다. 다음은 춤이었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도 추천했다. 자주 웃는 것, 박수를 치는 것, “나는 행복하다”고 혼잣말하기, 감사한 마음 갖기도 권장사항이었다.

  운동은 꾸준히 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했고, 자주 미소를 짓고 “나는 행복하다, 운이 좋다!”며 손뼉도 치기로 했다. 틈틈이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도 가사가 쉬우면서도 심오한 곡으로 한 곡 외웠다. 그런데 춤추는 것만큼은 하겠다고 쉽게 결심할 수 없었다. 워낙 몸치라서.

  그래서 대신 악기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가까이 연습은 하지 않고 곁에 두기만 했던 색소폰 말고, 막연히 동경하기만 했던 기타를 배워볼까? 기타 학원이 근처에 있나? 기타 레슨비는 얼마나 할까?

  찾아보니 집 근처에 걸어서 갈 만한 음악 학원이 세 곳 있었다. 기타 레슨비를 검색해보니 견적을 내준다는 사이트가 나왔다. 악보를 읽을 줄 아느냐, 레슨은 집에서 받고 싶으냐 강사가 있는 곳으로 와서 받을 수 있느냐 같은 질문이 나왔다. 내 연령대와 희망하는 강사의 성별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

  질문들에 다 답하고 나자 갑자기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기타 강사들의 연락이었다. 나는 기타를 배울지 말지 아직 결심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고 그냥 단순히 강습비가 궁금했던 건데, 내가 정보들을 입력한 사이트는 실제로 강사와 학생을 연결해주는 곳이었다. 어쩐지 처음에 이메일 주소 같은 걸 묻더라니.

  메시지에 답하는 동안 ‘이렇게 된 김에 정말 기타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초에 걸맞은 결심이기도 하고 말이다. 집에 통기타가 한 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HJ가 치던 물건이다. 미처 몰랐는데, 우리 집에는 일렉트릭 기타도 한 대 있었다. 내가 기타를 배워보겠다고 말하니 HJ가 집에 기타가 두 대 있다고, 한 대는 통기타이고 또 한 대는 일렉이라고 말해주었다.

  집 근처 강사를 연결해주는 사이트에서는 기타 연주자 6명을 소개 받았다. 모두 자기 스튜디오에서 악기를 가르친다고 했는데, 걸어서 갈 수는 없는 거리였다. 연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학원에도 문의를 해보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학원 영업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집 근처 기타 학원 중 가장 가까운 곳은 무한리필 소고기 식당 근처에 있다고 인터넷 지도에 나왔다. 가깝기도 하고, 기타 전문에 규모도 가장 커 보여서 제일 마음이 갔다. 다른 학원 두 곳은 웹사이트나 블로그도 없었고, 지도에 나온 사진만 보면 다 꾀죄죄한 낡은 건물에 작고 볼품없는 간판이 걸려 있는 게 다였다.

  그러나 가장 번듯해보였던 무한리필 소고기 식당 근처 학원은 식당에 가는 길에 확인해 보니 이미 문을 닫고 간판도 내린 상태였다. 다음날인 4일 오전에 전화도 걸어 봤지만 받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꾀죄죄한 두 학원은 전화를 받았다. 응대하는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두 곳 중 집에 더 가까운 곳이 레슨비도 더 쌌다. 강습비와 연회비를 따로 말하는 꼼수를 부리기는 했지만. 그곳에 다니기로 했다.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로 중단됐던 학원 영업도 1월 4일부터 소규모 강습에 한해 허용됐다고 했다.

  강사가 학원에 오는 날이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라고 했는데, 나는 1월 첫 목요일과 토요일 그 시각에는 모두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둘째 주부터 하겠다고 얘기했더니 학원에서는 다급하게 다른 요일도 괜찮다며, 내가 편한 시간에 맞춰 강사를 올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한시라도 빨리 학생을 붙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통화를 몇 통 더 하다가 일단 첫 수업은 바로 다음날인 화요일 저녁에 하고, 그 다음 수업일은 강사와 내가 만나서 정하기로 했다. 전화영어도 신청했다. 오후에 한강진역에 있는 서점에서 동영상 촬영이 있어서 전화영어 수업도 다음날부터 하기로 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오후 시간대에 기타 연습을 하거나 영어 공부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서점 동영상 촬영은 독자와의 만남 대신 하는 신간 홍보 행사였다. 한강진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한 시간, 촬영에 한 시간, 돌아오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텅 빈 서점에 MD와 촬영 담당자 두 사람, 출판사 마케터 한 사람, 그리고 나, 그렇게 다섯 사람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준비해 온 질문 10개에 내가 답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 답들을 궁리하는데 오전을 거의 다 썼다.

  촬영을 마치고 서점에서 나오는데 출판사 마케터가 근처에 핫한 수제 도넛 가게가 있다며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마케터 본인이 그 도넛 가게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도넛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카페인이 필요해서 그녀를 따라갔다.

  과연 서점 바로 아래 골목에 있는 가게였는데, 지나가다 궁금해서 찾아 들어갈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간판도 작았다. 철저히 인터넷 입소문에 의지하는 곳이었다. 인테리어가 ‘우리는 힙스터 전용 가게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큰 창문, 높은 천장, 꾸밈없는 흰 벽, 고풍스러워 보이는 목재 진열대, 포장에 활용한 민화 이미지. 전반적으로 손님들에게 무심하고 시크한 분위기였다.

  저녁에 HJ와 함께 가게에서 사 온 도넛을 먹었다. 토핑이 풍성하고 도넛 안에 잼이나 크림이 들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는데, 내 입맛에 썩 맞지는 않았다. HJ와 기타에 대해 이야기했다. HJ는 기타를 띄엄띄엄이기는 했어도 10년 가까이 배웠고, 한때 기타 동호회에도 열심히 나갔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완전히 그만뒀다.

  “악기와 운동은 참 달라. 내가 매일 2, 3시간씩 수영이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면 몇 년 안 되어서 몸짱이 될 거야. 노력한 만큼 고스란히 내게 효용이 돌아오지. 그런데 기타는 몇 년을 그렇게 연습해도 나 혼자 즐겁지 어디 내보일 수준은 못 돼. 이름 없는 밴드의 세컨드 기타 수준이나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의욕이 사라지더라. 자기는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배우겠다는 거니 상관없겠지만.”

  HJ가 말했다. 내가 기타 동호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HJ는 조금 놀랐다.

  “거기엔 뭐 하러?”

  “내가 사람들을 너무 안 만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우울할 땐 뇌과학』에 보니까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어울릴 사람이 없으면 그냥 사람이 많은 광장 같은 데라도 나가 있으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문학이나 글쓰기처럼 내 본업이랑 관련이 있는 모임에 나가면 은근히 대우에 신경 쓰게 되고 다른 사람이랑 평판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게 싫어. 기타나 맥주 모임 같은 데 가면 나는 아무 실력도 없으니까 남이 나를 어떻게 대접하든 상관없을 것 같아.”

  “기타 모임도 가보면 사람들끼리 은근히 신경전 벌여. 나이 갖고 그러더라고.”

 전날도 적지 않게 술을 마셨기 때문에 참으려 했지만 밤이 되니까 무척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결국 냉장고에서 호가든을 한 캔, 버드와이저를 한 캔 꺼내서 마셨다. 정말 맛있었다. 나는 늘 냉장고에 호가든을 한두 캔은 준비해 두려 한다.

  누가 인생 맥주를 묻는다면 호가든 아니면 버드와이저라고 답할 것 같다. 언제 만나도 기분 좋고 지루하지 않다. 언제나 믿을 수 있다. 평생 호가든과 버드와이저 외에 다른 맥주는 마시지 말라고 한다면 괴롭겠지만 말이다. 인생 맥주는 아마 그런 뜻으로 묻는 질문이 아닐 터다. 가장 친한 친구를 묻는 질문 같은 것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호가든과 버드와이저는 둘 다 OB맥주가 국내 생산을 하는구나. 맛있는 맥주니까 많이 팔리고 OEM 생산도 하게 된 거겠지. 기타도 내게 인생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 나는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인간이라 그런 사물 친구들이 필요하다. 내 쪽에서 들여야 할 정성은 충분히 들일 생각이다.

  다용도실에서 기타를 꺼내왔는데, 기타 케이스를 들어 올리려고 하자마자 손잡이가 찢어져 떨어져 나갔다. 나일론 천이 바짝 마른 낙엽처럼 부스러졌다. HJ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새 기타 가방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부드럽고 향긋하죠

  언제나 믿을 수 있다, 그걸로 좋아요

  순위 따윈 매기지 말아요


  다음날 저녁에 첫 기타 레슨 수업을 받았다. 손잡이가 찢어진 기타 가방을 안고 학원까지 걸어갔다. 주로 동네 어린이를 대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곳이었다. 난방을 전혀 하지 않아 발이 시렸다. 이날 학원에 있는 사람은 원장 선생님과 젊은 기타리스트, 그리고 나 셋뿐이었다. 원장과 강사에게 내 이름은 ‘장맥주’라고 알렸다.

  기타 강사는 20대로 보이는 얌전한 청년이었다. 아무 거나 물어보라기에 혹시 학생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대답했다. 내 질문에 기분이 상했던 것일까? 젊은이들은 마흔이 넘은 사람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하지만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강사는 수업 시간을 내가 편한 요일에 맞추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화요일 저녁으로 정했는데, 학원 원장이 나중에 목요일 저녁으로 바꿔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강사가 목요일에 다른 레슨 일정이 있으니, 한 번 와서 두 사람을 가르치고 가는 게 그에게 편하지 않겠느냐고. 물론 그러겠다고 했다. 강사의 집이 학원에서 왕복 세 시간쯤 걸리는 거리였다.



9. 설 콜드 IPA와 뒷산 오르기 신년회

  2021년 1월 1일은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HJ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1월 3일까지 사흘 연휴를 즐겼다.

  흠, ‘즐겼다’고 표현해도 될까?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고, 해외여행은커녕 혼자 카페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나조차 답답하고 무료한데, 다른 사람들은 이 기간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홈 트레이닝을 많이 한대. 넷플릭스도 많이 보고 인테리어 시장도 커졌나 봐.” HJ가 설명한다.

  “이 참에 책 좀 읽지.” 내가 푸념한다.

  “그러게. 사람들 책은 참 안 읽어.” HJ가 말한다.

  나는 1월 1일에 외출할 일정이 있었다. 방송국에 가서 신년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더빙하고 왔다. 더빙을 그렇게 방영 전날 하는 건지 몰랐다. 우리 프로그램이 뭘 잘못한 게 아니고, 원래 그런다고 했다. 영상을 편집하고 거기에 맞춰 최종 대본을 마지막 순간까지 고치기 때문인 듯했다.

  “방영 전날 자기가 갑자기 감기가 걸리거나 목이 잠기면 어떻게 되는 거야? 방송국 입장에서는 참 도박 같은 일 아니야?”

  HJ가 합당하게 지적했다. 나도 궁금했다.

  방송국에서는 녹음실로 가기 전에 편집실에서 한번 대본을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연습을 했다. 그걸 ‘예독’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읊어야 할 문장들을 시작하는 시점이 초 단위로 계산이 되어 있었다. 편집 감독이 ‘큐’라고 말하면 한 줄을 읽고, 편집 감독이 ‘포즈’라고 말하면 기다리고, 감독이 다시 ‘큐’라고 말하면 그 다음 줄을 읽는다.

  방송 발음에 대해서도 배웠다. 소유격을 만드는 조사 ‘―의’는 그냥 ‘에’에 가깝게 발음한다든가, ‘―입니다’는 ‘―ㅂ니다’로 줄여서 말한다든가. 목소리 톤을 높여 달라는 요청도 꾸준히 받았다. 낮고 조용한 내 원래 목소리가 나는 더 좋은데.

  녹음 때에는 나와 함께 일한 기자들의 상사인 팀장과 부장도 왔다. 나는 녹음 부스에서 혼자 대본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내가 제대로 읽는지,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타이밍을 놓치지는 않는지 주시했다. 방송 프로그램 참 정성들여 만드는구나, 새삼 놀랐다.

  예독을 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실제 녹음할 때는 내가 느리게 읽은 것인지 멘트가 미묘하게 장면과 안 맞아 떨어진 부분이 있었다. 그러자 작은 소동이 일었다. 그냥 내가 좀 더 빠르게 다시 읽으면 해결될 일이었는데, 제작진은 한 문장을 삭제하고 다른 문구들을 고쳤다.

  녹음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두어 시간 만에 마치고 집에 돌아와 떡국을 끓여 먹었다. 근력 운동을 하고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었다. 신경생물학의 관점에서 우울증을 살핀 책이다. 실제로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조언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 실천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월 2일에는 HJ도 나도 온종일 집에 있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연어회로 HJ가 김초밥을 만들어주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HJ의 김초밥에는 아보카도를, 내 김초밥에는 오이를 넣었다. 오후에는 머리를 염색했다. 그리고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신년 인사를 보내온 지인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1월 3일에는 동네 주변을 산책했다. 우리 아파트 뒤에는 매우 볼품없는 동산이 하나 있다. 집에서 창문으로 보기엔 소박하게 아름다운데 막상 가보면 별 경치가 없는 그런 산이다. 처음에 이 집에 이사 왔을 때에는 뒷산을 보며 반가워하고 자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몇 번 올라 본 뒤에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도 그냥 신년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찾았다. 우리 부부의 조촐한 신년 시무식이랄까. 작년에도 1월 초에 그렇게 올랐다. 1년에 한두 번 오르면 충분한 산이다. HJ나 나나 산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하늘은 흐렸고 상당히 추웠다. 눈은 쌓이지 않았고, 나무들은 가지가 앙상했다. 산길을 걸어도 자연 속에 있다는 기분은 거의 들지 않았다.

  산 중턱에는 토끼 사육장이 있다. 몇몇 주민들이 멋대로 지은 무허가 시설이어서 지저분하다고 구청에 철거해 달라는 민원도 있었던 모양이다. 반면 배춧잎이나 당근을 들고 가서 토끼들에게 먹이는 동네 사람들도 있다. 토끼들은 사육장 안이 아니라 밖에 있는데, 사람이 다가가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토끼들은 몸을 잔뜩 움츠려 돌멩이처럼 가만히 길가에 앉아 있었다. 귀를 등에 찰싹 붙이고 있었다. 그래도 추위로 고통스러워하거나 얼어 죽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산에서 내려와서는 근처에 있는 무한리필 소고기집에 갔다. 가끔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일요일이고 점심때였는데도 제법 규모가 있는 가게에 우리를 제외하고는 딱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그나마도 그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는 우리만 남았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식당은 난방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덜덜 떨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입에서는 김이 나왔고, 발이 얼면서 점점 감각이 사라져갔다. 1인당 1만9800원짜리 기본 메뉴를 주문하고, 추가 음료나 음식은 시키지 않았다.

  종업원 두 사람이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에서 조용히 밥을 차려 먹었다. 음악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식사 중에 이야기를 하니 종업원이 와서 “말씀을 하실 때에는 마스크를 쓰고 해 달라”고 주의를 주고 갔다.

  가게 바깥이 실내보다 더 따뜻한 것 같았다. 지하철역에 가서 화장실에 들르고, 좀 더 걸을지 집으로 돌아갈지 고민했다. HJ가 코인노래방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 중지 중이냐고 물었고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니 가까운 코인노래방이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걸로 나왔다.

  가서 문이 닫혀 있으면 그냥 돌아오기로 하고 코인노래방을 찾아갔다.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노래방에는 정문에 집합금지명령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별로 낙담하지도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원에 들렀는데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북적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들 집에 있기 괴로웠나 보다. 공원에서 오리가 붕어를 사냥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오리는 TV나 신문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펄떡펄떡 움직이는 붕어를 한 입에 꿀떡 삼키지 않았다. 죽은 게 분명한 물고기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으로 물었다 놓길 반복했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할인 판매를 한다고 해서 편의점에서 사 왔다. 점심을 배불리 먹었으므로 저녁은 걸렀다. 대신 맥주는 마셨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 중 설 콜드 IPA 캔을 골랐다. 눈 덮인 산 위로 눈이 오는 풍경이 캔에 그려져 있다. 보기만 해도 춥다.

  설 콜드 IPA는 속초에 양조장이 있는 한국 수제맥주 회사 크래프트루트의 제품이다. 캔에 그려진 산은 설악산이라고 한다. 맥주 이름의 ‘설’도 1월 1일이 아니라 눈(雪)을 의미한다. 이 회사의 맥주는 속초 지명이나 사투리, 혹은 속초의 명물에서 이름을 따 왔다. 속초 IPA, 동명항 페일 에일, 대포항 스타우트, 아바이 바이젠, 갯배 필스너….

  맥주를 마시며 HJ와 여행, 혹은 다른 도시에서 한 달이나 그 이상 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처럼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 그런 주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게 되다니. HJ나 나나 지쳐 있었다. 그 원인이 우리에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한계에 온 것인지, 이 나이 때쯤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인터넷과 사회 변화 때문인지.

 HJ는 요즘 이직을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 최종 면접까지는 통과했고, 연봉 협상 중이다. 새로 옮긴 회사가 괜찮은 곳일지 아닌지는 가서 일해 봐야 안다. 영 아닌 곳으로 판명 나면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둘이 같이 서울을 떠나 당분간 쉬기로 했다. 치앙마이 같은 곳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언감생심이고…. HJ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몇 달간 살고 싶다고 한다. 어쩌면 속초도 후보가 될 수 있겠다.


 올 겨울 참 길다

  설산 감상은 그림으로 할게요

 발이 꽁꽁 얼었거든요




8. 세종 듀퐁과 12월 31일의 과메기

  12월 31일에는 마감에 시달렸다. 신문 두 곳에 원고를 보냈는데 각각 ‘새해 추천하는 책’과 ‘새해 도전하려는 책’이 주제였다. 둘 다 여러 필자에게 짧은 글을 함께 청탁해 지면을 채우는 기획이다.

  이런 기사들을 보내면 항상 기자들이 나중에 난감해 하면서 분량을 줄여도 되느냐고 되물어온다. 요청을 받은 필자들이 대부분 요청 받은 것보다 더 길게 써서 글을 보내오기 때문이다. 200자나 400자처럼 짧은 분량으로 청탁을 하면 늘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비교적 분량을 엄수하는 편인데 그런 상황에서 내 원고가 제일 먼저, 또 많이 줄어드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이 있다. ‘같은 기자 출신이니까 고충을 알고, 손대도 뭐라고 안 할 것 같다’고 문화부 기자들이 부담을 덜 느끼는 것 아닌지?

  두 신문 외에도 구독자에게 에세이를 메일로 보내는 서비스에 원고를 보내야 했다. 사흘째 마감을 어긴 상태였는데, 정말 글이 더럽게 안 써졌다. 별로 할 얘기가 없어서였다. 아무래도 이 서비스 제작진이 정한 콘셉트와 내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붙들고 있었으나 결국 마감하지 못했다.

  낮에는 재택근무 중인 HJ와 밖으로 나가 근처 빵집에서 조각 케이크를 사 왔다. 가게에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계산대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우리 앞에 선 할머니는 빵을 사고 값을 치르는데 5분 가까이 걸렸다.

  속으로 할머니를 원망하고 있었는데, 우리 차례가 되어보니 문제는 할머니가 아니라 직원이었다. 일처리가 서툴고 느렸다. 채용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르바이트생인 듯했다. 자기도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어쩔 줄 몰라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또 직원에게 미안해졌지만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잠자코 계산을 하고 나왔다. 그런 미안한 감정이 집에 올 때까지 가슴에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나 할 걸 그랬다. 연말에 새 일자리를 얻은 직원의 사연이 궁금했다. 하루짜리 단기 아르바이트였을까.

  HJ는 집에서 오후 6시까지 일했다. 오후 6시부터 우리의 연말 의식인 과메기 파티를 준비했다. 과메기라는 요리를 내가 HJ에게 소개해줬고, 그 뒤로 겨울마다 둘이서 과메기를 온라인으로 주문해 집에서 먹는다. 2016년부터는 매년 12월 31일에 저녁에 과메기를 먹으며 한 해를 정리한다. 그때 유서도 써서 함께 낭독하고 녹음한다.

  올해도 며칠 전에 과메기를 주문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맥주도 사 놓았다. 청어보다 꽁치로 만든 과메기가 우리 부부 입맛에 더 잘 맞는다.

  인터넷에 ‘과메기에 어울리는 맥주’를 검색하니 어느 맥주 칼럼니스트의 글이 나왔다. 세종과 복이 과메기와 궁합이 좋다고 나와 있었다. 세종은 비린 맛을 상쇄해주며, 복은 맥주의 비스킷 풍미가 과메기의 고소함과 어울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과메기는 의외로 레드 와인과 조합이 좋다. 풍미 강한 음식과 술이 서로 단단하게 붙잡고 또 받쳐주는 느낌이다. 정작 생선과 어울린다는 화이트 와인은 과메기를 당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가벼운 느낌의 세종에 대해서도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어쨌든 대표적인 세종 맥주인 세종 듀퐁을 준비하긴 했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켠 뒤 부부가 함께 입김을 불어서 끄며 소원을 빌었다. 우리 계속 건강하게 해주세요, 하고. 그리고 HJ부터 유서를 낭독했다. 내 스마트폰으로 녹음했다. 2020년 HJ의 유서에는 과거와 달리 유머가 간간이 섞여 있었다. HJ는 올해 겪은 중요한 일 중 하나로 부동산 가격이 올라 스트레스를 받은 점을 적었다. 그건 유머가 아니었다.

  HJ와 나의 유서는 형식이 같은데, 처음 유서를 쓸 때 내가 HJ의 것을 베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매년 그 전해에 쓴 문서를 참고해서 조금씩 업데이트 하고 있다.

 유서에서 우리는 한 해에 있었던 일들, 느꼈던 일들을 먼저 간단히 정리하고, 그 다음에 유산 정리 방법을 길게 말한다. 뒷부분에서 장례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을 불러 식을 올리거나 빈소를 차리지 말고 화장한 뒤 바다에 뿌려달라는 내용이다. HJ도 나도 그렇게 유골 뿌린 뒤 가족끼리 시원한 바람 맞고 뜨끈하게 식사 한번 하면 충분하다, 고 쓴다. 마지막은 서로에게 남기는 말이다.

  “그 이후는 그 어떤 추모도 하지 마세요. 원래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와서 이것저것 재미있게 해보다 가니 여한이 없고 행복합니다. 내 남편 장강명은 나의 죽음으로 좌절하지 말고 꼭 본인이 원하는 명작을 최대한 많이 써서 남기기 바랍니다. 킵 캄 앤드 캐리 온 라이팅. 사랑합니다.”

  “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습니다. 서류에 작성한 상황이 발생하면 의향서에 제가 쓴 대로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아내 ○○○은 나의 죽음으로 좌절하지 말고 남은 인생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자기야, 나중에 좋은 곳에서 꼭 다시 만나자. 내 평생에 당신을 만난 게 제일 큰 행운이었어.”

  그렇게 유서를 낭독하고 나면 HJ나 나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좀 쑥스럽지만 적당히 숙연하고 마음이 정화된 듯한 기분도 든다. 무척 값지고 좋은 시간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유서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낭독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유서 녹음을 마친 뒤 드디어 과메기를 먹기 시작했다. 올해의 과메기는 예년보다 딱딱하고 살도 부족해서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세종 듀퐁은 무척 맛있었고, 깜짝 놀랄 정도로 과메기와 잘 어울렸다.


  세밑에는 유서를 씁니다

 밤이 되면 꽃향기 나는 술도 마실 거예요

  모두 고맙습니다


  낮에 몇몇 지인에게 메일로 송년 인사를 보냈는데 그 중 어떤 이는 그 사이에 벌써 답장을 길게 보내왔다. 그 답장 내용을 HJ와 보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지인이 떠올라 그에게도 짧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좋아하지만 여태까지 좋아한다고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다(나는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HJ는 그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는데 내가 들려주니 무척 놀라워했다. 세상 잘 모르겠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세종 듀퐁을 다 마신 뒤에는 호가든, 산미구엘 페일 필젠, 에델바이스를 마셨다.




7. 마튼즈 바이젠과 히가시노 게이고

 피트니스클럽에 다니면서 생활의 리듬을 되찾고 체중도 감량했다. 12월 초에는 63킬로그램 남짓이 되었다. 1킬로그램만 더 빼면 우울증에 걸리기 전으로 회복하는 건데, 그 마지막 1킬로그램이 잘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서 피트니스클럽이 운영을 축소하다가 마침내 문을 닫았다.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아무래도 피트니스클럽을 다닐 때보다는 게을러졌다. 운동량도 줄었다.

  아침에도 6시 반에 못 일어나고 늦잠을 자는 때가 생겼다. 안 좋은 생각들, 기억들이 머리에 떠올라 한참 사라지지 않았다. 분노에 차서 벽을 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혼자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기도 한다.

  이렇게 우울증이 오는 거구나. 알면서도 막지 못한다는 것, 내가 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 사랑과 닮았다. 참으로 운명 같구나.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면 안 된다. 침대에 기어 들어가서도 안 된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귀찮고 매사에 의욕이 안 난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들을 많이 읽었다. 단편집이 가장 좋았고, 가벼워 보이는 소설일수록 환영이었다.

  하루는 가와사키 소시의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을, 다음날에는 모리 아키마로의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를 읽었다. 『서장 다나카 겐이치…』는 수사에 관심 없는 젊은 경찰서장과 그런 서장을 오해하는 열혈 경찰관들이 벌이는 추리극인데 만화책처럼 유쾌하다. 『검정고양이…』는 ‘인문학 미스터리’를 표방하는데 라이트노벨 같은 서술과 거창한 소재의 결합이 독특하고 흥미롭다. 로맨스도 있다.

  셋째 날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세 권을 하루에 읽었다. 장편소설인 『하쿠바산장 살인사건』과 『11문자 살인사건』, 그리고 연작 단편집인 『살인 현장은 구름 위』. 모두 작가가 1980년대에 쓴 초기작들이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의 작품들은 대부분 2010년대에 나왔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공허한 십자가』, 『매스커레이드 호텔』….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에는 밀실 살인,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 암호 풀이가 나오는데 읽다 보면 ‘과연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숨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재미있으므로 넘어간다. 『11문자 살인사건』은 그보다는 조금 더 톤이 무겁다. 『살인 현장은…』에서는 승무원 콤비가 비행기나 항공사와 관련된 수수께끼들을 해결하는데 작가도 진지한 마음으로 쓴 작품은 아닌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많이 쓸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쓰지 못할까?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 비꼬는 말이 절대 아니다.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모두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실하게 쓰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그 두 일본 작가의 대단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히가시노의 책을 세 권 읽은 날에 글은 한 자도 쓰지 않았다. 대신 바닥을 청소하고 근력 운동을 했다. 점심은 굶고, 저녁에는 집 근처 사무용 건물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이 구내식당은 점심에는 두 가지 메뉴를 제공하지만 저녁식사 메뉴는 한 종류라서 뭘 먹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체로 저녁 메뉴가 점심보다 부실하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가서 페트병에 든 마튼즈 바이젠을 두 병 사 왔다. 마튼즈는 1758년에 술장사를 시작한 유서 깊은 맥주 가문이고 생산량도 벨기에 2위라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가격 대비 성능비로 인식되는 브랜드다. 이날 내가 모처럼 이 맥주에 손을 뻗은 데에도 하루 종일 밥값을 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한 몫 했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 와서 뚜껑을 따고는 크게 실망했다. 오래된 제품이었는지 탄산이 다 날아가 밍밍했고, 맛도 살짝 변한 것 같았다. HJ는 마실 만하다고 했지만 나는 한 잔을 겨우 비웠다. 다시는 페트병 맥주는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위스키, 보드카, 소주에는 유통기한이 없지만 맥주에는 있다. 알코올 함량이 낮고 여러 가지 첨가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도수가 특이하게 높거나 람빅 스타일이 아닌 한 병맥주와 캔맥주 대부분은 유통기한이 1년, 페트병 맥주는 6개월이다.

 홉은 단백질 성분이라서 직사광선을 받으면 맛이 변질된다. 맛의 측면에서는 병맥주보다 캔맥주가 더 안전한 선택이다. 특히 페트병은 유리병과 달리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서 뚜껑을 따기 전에도 바깥의 산소가 안으로 들어가고, 안의 탄산가스도 밖으로 조금씩 새어나온다. 맥주 페트병은 일반 페트병과 달리 다중막 구조로 만들거나 차폐 성분이 있는 특수 재질을 사용한다지만(그래서 재활용도 어렵다).


 김빠진 맥주

  가성비에 너무 매달리지 말아요

  인생 짧아요


 우울증에도 유통기한이 있으면 좋을 텐데. 6개월만, 1년만 버텨내면 끝난다는 보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김빠진 맥주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강 나선의 입구에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이 우울감에는 예전에 느끼곤 했던 감미로움 따위는 없다.

  오늘은 미야지마 겐야의 『고마워, 우울증』을 펼쳤다. 저자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데 본인 스스로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전공을 정신과로 택했다. 환자들에게 항우울증 약을 권하지 않는 의사라고 한다.

  기록을 찾아보니 전에 이 책을 읽은 게 2016년으로 나온다. 그때는 우울증을 겪지도 않았으면서 왜 읽었나 모르겠다. 그래도 덕분에 책 제목과 ‘우울증은 삶을 바꿀 기회’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아 다시 집어 들게 됐다.

  현대의학에서 우울증을 바라보는 방식을 비판하는 앞부분이 위로가 됐다. 정신과 의사들이 다른 검사 없이 오직 환자 말에만 의존해 우울증 진단을 내리며, 재발 환자에게 약을 계속 권하도록 교육받지만 그런다고 우울증이 치료되는 건 아니라고. ‘많은 정신과 의사의 치료는 약을 처방하는 것뿐’이라고.

  성실하고 사려 깊은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얘기는 듣기는 좋지만 썩 믿기지는 않는다. 뒷부분에 적힌 우울증을 극복하는 실천 방법들은 그냥 눈으로만 읽었다.

 우울증이 삶을 바꿀 기회라면, 우울증을 기회로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희망적인 생각도 한다. 이 병을 완전히 극복하기만 한다면, 나는 보다 현명하고 의연한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음영이 있는 인간이 될 것이다. 이미 얼마간은 그렇게 됐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전보다 미소를 더 자주 짓는 사람이 되어가고도 있다. ‘난 참 운이 좋다, 즐겁다’고 생각하면서 하루에 여러 번 의식적으로 미소를 짓는다. 혼자 박수를 치며 이상한 춤도 춘다. 50대, 60대에 늘 미소를 짓는 얼굴이면 좋겠다. 진심으로 “고마워,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6. 하이트제로와 항우울제

 동지가 가까워오니 우울증의 기운이 밀려오는 걸 느낀다. 역시 우울증은 일조량과 상관이 있는 거야. 거의 다 극복했다고 여기던 터라 당황스럽고 또 두렵다.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 올해 3월이었다. 3주가량 그 증상이 지속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무슨 동면하는 동물처럼 엄청나게 잤다. 삶에서 도피하고 싶었고, 방법이 술 아니면 잠이었다. 졸리기도 많이 졸렸고,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잠을 일부러 청하기도 했다.

  4월에 ‘이래선 안 되겠다’ 마음먹고 동네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았다. 정신과에 간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우울증의 흔한 증상 중 하나가 불면증이라는 이야기를 그날 듣고 멋쩍게 웃었다.

  약의 효과는 지금 생각해보면 애매하다. 다른 정신과 약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만한 경험도 없다. 자살 충동이 누그러들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다행이라고 여겼더랬다. 워낙 기대가 없기도 했고.

  그러다 다른 소설가의 우울증 경험을 뒤늦게 전해 들었는데, 그이는 항우울제를 먹고서는 너무 행복해져서 오히려 이래서는 글을 못 쓰겠는데, 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얘기를 들려준 작가가 부럽기까지 했다.

  부작용은 약하게 겪었다. 입 안이 뻑뻑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침이 말랐고,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신체에서 분비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한다. 안과에 가서 소독제와 일회용 눈물을 한아름 처방 받았는데, 안구건조증으로 안과에 간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약국에서 젊은 약사가 우울증 약을 건네며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하고 위로했다. 그래, 맛난 거 먹는 게 행복이지. 그래서 그 뒤로 한동안 다이어트 걱정 않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었다.

 그리고 불과 넉 달 사이에 7킬로그램이 쪘다. 5월 중순만 해도 몸무게가 62킬로그램 남짓이었는데, 9월 중순에는 70킬로그램을 돌파했다. 체중이 70킬로그램을 넘은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올해는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많다.

  얼굴도 몸도 동글동글해졌다. 66, 67킬로그램일 때 절식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나 원래 굶는 거 잘하는데…. 의사에게도 이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내가 처방 받은 항우울제인 렉사프로의 부작용 중 하나가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거라고 했다.

  정작 병세는 어느 단계에서 더 호전되는 것 같지 않았다. 7월에 한 번, 9월에 또 한 번, 만사 귀찮아져서 1, 2주씩 침대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의사에게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고 좋은 분이었지만, 그 이가 아니라 현대정신의학에 대해 품고 있던 높은 기대가 꺾였다. ‘못 믿겠다’는 아니고, ‘아, 기껏 이거였어?’ 정도.

  증세가 나쁘다고 하면 복용량을 늘려주고, 그래도 차도가 없다고 하면 약을 바꾸는 식으로, 땜질 처방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러다 요행히 나에게 딱 맞는 약과 투여량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치료가 나의 자가 진단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셈인데, 그 자기 파악에 내가 자신이 없었다. 나 상태가 좋아졌나? 나빠졌나? 잘 모르겠는데.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9월 중순에 항우울제 복용을 내 멋대로 중단했다. 이 경험을 솔직하게 써야겠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고백이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독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절박한 마음과 환자 특유의 오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운이 좋았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서서히 복용량을 줄여야지, 단번에 끊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실제로 나도 얼마 뒤 심각한 공황 발작을 두 번 겪었다.

  약을 찬장 안으로 치운 다음날부터 피트니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 무조건 6시 반에 일어나 HJ가 출근할 때 나도 피트니스클럽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하루에 30분씩 달리고, 이틀에 하루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기로. 다른 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것만큼은 지키자고 굳게 다짐했다.

  다행히 그렇게 억지로 몸을 밖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뒤부터 분명하게 차도가 있었다. 그래도 병원에 다니는 걸 멈추지는 않았는데, 운동의 효과 역시 얼마 못가고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병원에 의지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동네 병원은 예약을 한번만 지키지 않아도 환자를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석 달 동안 병원에 가서는 약 잘 먹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에는 가지 않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약 구매 기록을 의사가 검색할 수 있지 않나 우려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거의 다 나은 거 같으니 약은 그만 먹어도 될 거 같다”고 갈 때마다 이야기했지만 의사는 좀 더 지켜보자며 계속 처방전을 써주었다. 약의 용량은 줄었다.

 9월 말에 하루, 10월에 또 하루 공황 발작이 왔다. 갑자기 얼굴 앞에 투명한 벽이 생기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한밤에 집밖으로 나가 근처 개천 다리 위에 한참 서 있다가 돌아왔다. 10월에는 하룻밤에 두 번이나 그랬다.

 의사도, 약사도 술을 삼가라고 했다. 그래서 대신 무알코올 맥주를 많이 마셨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하이트제로를 박스째로 주문해서 쌓아놓고 마셨다.

  무알코올 맥주는 만드는 방법이 세 가지다. 아예 효모를 발효하지 않는 것, 발효를 한 다음 알코올을 제거하는 것, 발효를 하긴 하되 억제해서 알코올 함량이 1퍼센트 아래인 낮은 도수의 맥주를 만드는 것. 마지막 방법이 무알코올 맥주 중에는 제일 맛이 좋다고 한다. 알코올 함량이 1퍼센트보다 낮으면 무알코올 맥주라고 팔아도 된다.

  하이트제로는 비발효 공법 맥주다. 나무위키에는 하이트제로에 대해 ‘맥주고 뭐고를 떠나 기본적으로 맛이 없다’, ‘탄산음료로서도 부적격’ 같은 악평이 적혀 있다. 나는 이게 어디냐, 하고 감사히 먹었다. 진짜 맥주만큼 좋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나는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기질이 다분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알코올 맥주가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탄산수 같은 걸로 대신했으려나?


  고마운 친구여

  지옥 가는 길을 막아줬다오

  심심하긴 해요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주 원인은 아니겠지만 얼마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하는 요인 중에 일기를 쓰지 않게 됐다는 점도 있다. 30년 가까이 써왔던 일기를 재작년 말부터 쓰지 않고 있다. 타인에게 보여줄 글이 아니니 쓸모가 없다고 여겼고(나조차 다시 읽지 않았다), 바쁘기도 해서였다. 그리고 15개월 뒤에 우울증에 걸렸다.

  일상을 혼자 글자로 적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왔는데, 그걸 더 하지 못하게 되어 우울증이 온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맥주를 소재로 일상 에세이를 쓰는 것은 글쓰기에 있는 치유의 힘을 얻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111.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정아은)

지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좋아하고, 이 작가의 독서 칼럼을 좋아한다. 내가 은근히 로맨틱한 남자여서 사랑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매우 취향에 맞는 책이었다. 서태지와 신해철의 음악이나 노랫말이 아닌 사랑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일이 없어서 고개 끄덕이며 감탄. ‘결국 우리는 사랑 앞에서 버둥거리게 된다’는 표지 문구도 좋다.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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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눔][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버터북스/책증정] <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 담당 편집자와 읽으며 2025년을 맞아요[책증정] 연소민 장편소설 <고양이를 산책시키던 날> 함께 읽기[📕수북탐독] 7. 이 별이 마음에 들⭐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저자이자 도슨트인 유승연과 함께 읽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낸 500일>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11월 29일(금) 이번 그믐밤엔 소리산책 떠나요~
[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극단 피악과 함께 합니다.
[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그믐연뮤클럽] 2. 흡혈의 원조 x 고딕 호러의 고전 "카르밀라"
"동물"을 읽습니다 🐋🐕🦍
[현암사/책증정]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를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그믐북클럽] 14.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읽고 실천해요[진공상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 모여주세요![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③ 『동물권력』 함께 읽기 [그믐북클럽Xsam]19.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읽고 답해요 [그믐북클럽] 4. <유인원과의 산책> 읽고 생각해요
🏆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며 작품 함께 읽어요.
[라비북클럽](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1탄) 작별하지 않는다 같이 읽어요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작품 읽기 [Re:Fresh] 3. 『채식주의자』 다시 읽어요.
국내외 불문, 그믐에서 재미있게 읽은 SF 를 소개합니다!
(책 나눔) [핏북] 조 메노스키 작가의 공상과학판타지 소설 <해태>! 함께 읽기.[SF 함께 읽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 읽고 이야기해요![책증정] SF미스터리 스릴러 대작! 『아카식』 해원 작가가 말아주는 SF의 꽃, 시간여행[박소해의 장르살롱] 5. 고통에 관하여
버지니아 울프의 세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
'하루키'라는 장르
[이 계절의 소설] 두번째 계절 #2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마주>[그믐밤] 16. 하루키 읽는 밤 @수북강녕 에이츠발 독서모임 16회차: <기사단장 죽이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저
오늘의 문장 - 은화
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7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1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1월 03일오늘의 문장 - 2024년 10월 31일
현대 한국 사회를 조명하는 작품을 작가, 평론가와 함께 읽습니다.
[📕수북탐독] 4. 콜센터⭐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3. 로메리고 주식회사⭐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2.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수북탐독] 1. 속도의 안내자⭐수림문학상 수상작 함께 읽어요
멀고도 가까운 나라, 중국.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6. <마오주의>[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5. <중국필패>[한길사 - 김명호 - 중국인 이야기 읽기] 제 1권[서울국제작가축제X푸른숲] 위화 작가님의 <인생> 함께읽기 챌린지
🎨 책으로 그림 읽기!
[책증정] 미술을 보는 다양한 방법, <그림을 삼킨 개>를 작가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6기 [웅진지식북클럽] 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함께 읽어요[책증정] 《저주받은 미술관》을 함께 읽으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지금 읽기 좋은 뇌과학 책 by 신아
[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3. 도둑맞은 뇌[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2.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뇌과학책 함께 읽어요] 1.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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