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정상의 경계 언저리,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 대한 연민과 매혹. 작품 자체가 양서류 같았다. 성인/청소년소설, 현실/환상 얘기가 아니라 미끈함, 끈적함, 뚜렷한 맥박이. 나만의 숨은 교훈은 ‘그냥 경찰을 믿자.’
일요일 밤. HJ가 왠지 울적하다며 맥주를 마시겠다고 한다. 나도 그 핑계로 맥주를 한 캔 딴다. 첫 캔은 볼파스 엔젤맨 프리미엄 라거, 그 다음은 볼파스 엔젤맨 헤페바이젠이다. 그게 지금 이 순간 조금 공교롭다. 볼파스 엔젤맨은 리투아니아의 맥주 회사인데, 리투아니아는 자살로 유명한 나라다(그리고 그게 내가 리투아니아에 대해 아는 거의 전부다).
하필 우리는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은 뮤지션의 앨범을 듣고 있다. 그 이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내가 묻는다. HJ의 해석은 명쾌하고, 나는 더 묻지 않는다.
HJ는 자기가 요즘 읽고 있는 영문소설의 줄거리 일부를 내게 말해준다. 이란성 쌍둥이 중 오빠가 자살하고, 사건 이후 아버지, 어머니, 쌍둥이 동생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나온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저릿하다.
한국도 자살로 유명한 나라다. 한국은 13년 동안 OECD 가입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였는데, 2018년에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하면서 2위로 물러났다. 그랬다가 바로 다음해 한국이 1위 자리를 ‘탈환’했다.
한국의 자살률이 그토록 높은 이유는 명확하다. 노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청년이 살기 힘든 나라 어쩌고 하지만 8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20대 자살률보다 세 배 이상 높다. 다른 나라의 노인 자살률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그나마 이게 전보다 훨씬 나아진 거다. 10년 전에는 8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지금의 두 배에 가까웠다. 그 높던 노인 자살률이 단기간에 이 정도로 낮아진 것은 전적으로 기초연금 덕분이라고 본다. 많은 사람을 살린 정책이다.
리투아니아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를 검색해보니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빈부 격차가 커져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고, 그곳 사람들이 감성이 예민한 데다 자기 감정을 감추려 드는 성향이 있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술을 많이 마셔서라거나 날씨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뚜렷한 원인은 모른다는 얘기 아닐는지?
볼파스 엔젤맨의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나는 계속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
내 소설에도 자살하는 인물이 꽤 나온다. 데뷔작의 소재가 연쇄 자살이었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해 사실상의 자살을 하는 인물이 나오는 소설도 썼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도 젊은 나이에 자살한 캐릭터가 나온다.
40대가 되기 전까지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몇 번 없다. ‘내가 죽는 순간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 정도였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그런데 전부터 지인들 중에는 나를 자살 고위험군으로 여기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다름 아닌 HJ도 그랬다.
하루는 집에서 대문을 잠근 채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크게 듣고 있었는데, 그러느라 밖에서 HJ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참 있다가 문을 열어줬더니 HJ는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그 사이 자살한 줄 알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내가 도리어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왜…?
그러다가 우울증을 앓으면서 실제로 자살 충동도 겪었다. 나의 자살 충동은 짜증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것저것 다 귀찮고, 맞서 싸우거나 극복해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니미, 그냥 확 끝내버리자―, 뭐 그런. 차분히 따지면 그게 절대 답이 될 수 없으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삶과 미래라는 선물을 그런 식으로 내팽개치는 건 엄청난 손해라고 물론 생각한다.
자살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신세가 된 게 서글프긴 하다. 그래도 그게 도움이 된다면 몇 번이고 다짐하련다. 남들이 들으면 ‘저 사람이 왜…?’ 하고 이상하게 여기거나 우스워 하리라는 걸 안다. 나는 이제 다른 이의 자살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우울증을 앓으며 얻은 교훈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요일 밤을 보낸다. 나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좋은 생각들을 떠올릴 수는 있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 맛있는 맥주, 따뜻한 집, 좋은 글과 음악들을 생각하려 애쓴다.
인생은 선물
그 증거를 지금 나는 마시고 있지
이렇게나 확실한 걸
자살과 별도로 죽음에 대한 상상은 자주 한다. 내게는 십 년 가까이 자주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날카로운 장검에 내가 배를 찔려 붉은 피를 쏟는 장면이다. 맥락도 없이 불쑥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 별로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은데.
이제는 그런 이미지가 자꾸 떠오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전생에 전쟁터에서 죽었나? 프로이트라면 내가 길쭉한 무언가가 몸에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선망한다고 말하려나?
저작권 전문 변호사 두 사람이 다양한 판례와 함께 출판권, 배타적 발행권, 초상권, 퍼블리시티권 등을 설명한다. 문외한이 ‘당연히 이건 저작권법 위반이지, 배상해줘야지’ 하고 막연하게 짐작하는 바와 법원의 판단은 꽤 달랐다.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 소속된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부산의 여러 장소들을 살피고 탐구한다. 근대도시, 항구도시, 굴곡진 역사를 담은 도시로서 개성을 보여준다. 부관페리와 기생관광에 얽힌 이야기 등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부산의 여러 가지 음식들을 소개하는데 글맛도 좋고 사진 도 생생해서 읽는 내내 구미가 돈다. 부산의 고유한 전통음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산의 음식문화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지역의 식문화가 급격히 섞여 만들어졌다고. 갑자기 멸치회가 먹고 싶다.
드디어 대단원. 시리즈 후반부는 조금 압축하거나 몇몇 에피소드를 건너뛰어도 됐을 것 같고, 한 사건을 여러 시대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방식이 썩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고, 위쳐는 여자들과 좀 덜 엮였으면 좋았겠고, 몇몇 인물들은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퇴장한 것 같다. 그래도 기억에 남을 멋진 시리즈.
역시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제 좀 지친다. 전쟁은 끝이 안 나는데, 주요 등장 인물이나 사건은 결국 거의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모든 세력이 중심 인물을 쫓고 있는 이유나 새로 등장한 악당에 대한 묘사는 급조한 것처럼 느껴진다.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여정은 끝이 없고, 일행이 늘어난다. 새로운 동료들은 대체로 설명이 더 필요하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어라 고생하는데, 특히 한 캐릭터의 정신적 추락이 안타깝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위쳐 시리즈 본편보다 초반부 단편집들이 더 좋다.
전쟁은 벌어졌고, 작품의 톤은 훨씬 어두워졌다. 동화적인 분위기를 조금 풍겼 던 단편집들과는 딴판.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묘사도 많이 나온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스케일이 훨씬 큰 시리즈구나. 제목의 뜻은 마지막에 설명된다.
앞선 단편집들에 비해 훨씬 더 깊이가 있다고 느꼈다. 인간과 비인간들이 서로 미워하는 경로, 박해 받던 이들이 선을 넘어 잔인해지고 정의가 어느 편에 있는지 따질 수 없게 되는 과정을 잘 그려낸다. 물론 흥미진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