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유족들 보고 눈물 날 수 있는데, 거기서 같이 우는 게 좋은 기자는 아니야. 그 모습도 꼼꼼히 취재해서 담는 게 좋은 기자야.” 사회부장이 주인공 송가을에게 하는 대사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나 역시 같은 조언을 선배들로부터 많이 들었고, 후배들에게 많이 했다. 그런데 이 말을 조금 비틀어 생각하면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인간이기를 억눌러야 한다는 뜻이 된다. 거기서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둘러싼 근원적 긴장이 생긴다.
시트콤, 드라마, 활극의 재미를 다 제공한다. 2020년대 한국 언론의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성매매에서 검찰 개혁, 분단에 이르기까지 건드리는 사회 문제도 다양하다. 그러면서 좋은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최근 속편도 나왔는데 시리즈로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표제작은 《환상특급》의 한 에피소드에 어울릴 듯한 이야기로, 좀 간지러운 기분이 든다. 이게 왜 휴고상과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받았는지 의아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꼽는 작품은 「소년과 개」. 이런 정신 나간 소설이 요즘 나오면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
동의하지 않는 내용도 꽤 있다. 그러나 종교가 아닌 이성을 바탕으로 ‘좋은 삶’에 대해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는 일 자체가 도움이 된다. 스토아 철학을 강조한다.
‘의견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이자 권리다. 오늘날 진짜 문제는 정보의 과부하가 아니라 의견의 과부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의견을 개진할 주제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라.’
‘삶은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허송세월만 할 경우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자아가 불러일으키는 헛된 욕망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고 자아가 벗이 될 수 있으며 도움이 될 수 있고 충만한 삶의 단단한 반석이 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여러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몰입 경험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는지는 좀 의문이 든다. 운동은 분명 인생에 도움이 되지만, 운동하기 위해 사는 건 아니잖은가.
입문서로서는 이런 접근 방식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추상적인 개념들을 다뤄야 하 는 업무에 있는 사람에게는 철학 공부가 분명 실용적인 도움도 될 테고. 그런데 다른 건 모르겠지만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은 저런 의미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
이 책은, ‘좋은가 나쁜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 무슨 색인가? 냄새는 어떤가? 모래와 비슷한가? 다른가? 얼마나 다른가? 하이힐 같은가? 파우더 같은가? 아이섀도 같은가? 아빠 같은가?’ (40쪽)
질문들이 매우 매력적. 셰익스피어를 사상가로 볼 수 있을까? 십계명을 새로 만든다면?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의 눈에서 비롯되는 개념이라면, 중요하지 않은 특성이라는 말일까? 현대 사회에는 과거보다 더 큰 사회악이 있을까?
사회는 구성원의 불만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걸 외부로 향하게 만들며, 인간은 익명 사회를 이룬다는 점에서 다른 영장류보다 오히려 곤충을 더 닮았다고.
“제가 기분이 막 행복하고 즐겁고, 그렇진 않거든요. 여전히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이기는 해요. 하지만 위험한 시기는 벗어난 거 같습니다. 약은 이제 그만 먹고 싶어요.”
정신과 의사에게 그렇게 말했다. 병원에 가서 약을 받은 지 9개월이 지나고, 내가 멋대로 복용을 중단한 지는 넉 달이 되었을 때였다. 사실 그 사이에 병원에 갈 때마다 내가 이미 약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 채 ‘약을 그만 먹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의사가 재발할지 모른다며 허용하지 않았다. 다만 복용량은 줄여줬다.
의사는 내가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도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였느냐고 물었다.
“네, 전에도 그랬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어떤 투지 같은 게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게 좀 없는 상태라는 점이 다르긴 해요. 이게 우울증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제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고요.”
어렸을 때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라’는 사방의 주문이 너무 지겨웠다. 어느 선배 앞에서 “나중에 꼭 성공해서 내 성공의 비결은 ‘파워 오브 네거티브 씽킹’ 덕분이라고 말할 거다”라고 대꾸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녀석이 이제는 하루에 서너 번씩 손뼉을 치고 “나는 행복하다”고 혼잣말하며 기분을 끌어올리려고 애쓴다. 이런 코미디가 또 있나.
의사는 항우울제 처방전을 이제는 더 주지 않겠지만, 내 뜻에 못 이겨 하는 거라고 덧붙였다. “환자 분이 자꾸 밀어붙이니까 저도 압박감을 느껴서 다른 환자들보다 더 빨리 투약을 중단하는 거예요.”
그는 우울증이 재발률이 아주 높은 병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렇게 높은 재발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러니까 약을 먹는다고 병의 원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소리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약을 먹지도 않으면서 왜 약을 그만 달라고 매번 그렇게 사정했던 걸까. 병원으로부터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의사가 처방전을 써주지 않았을 뿐, 병원을 안 가도 되는 건 아니었다. 진료비를 계산할 때 간호사로부터 “다음 진료일은 언제로 잡을까요?”라는 질문을 받고서야 비로소 아, 또 와야 하는구나, 하고 알았다.
의사에게도 말했지만, 우울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해 겪었던 극심한 무기력증만 아니면 이 정도 우울감은 그냥 껴안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상태까지 기분부전장애라고 여기고 치료 대상으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치료가 안 될 것 같다는 직감도 있었고.
이날 점심은 굶고 저녁에는 다이어트식을 먹었다. 웹진에 기고하는 칼럼을 하루 종일 썼다. 이태원더버거의 대표이자 한국비어소믈리에협회의 상임 고문인 권경민의 『맥주소담』을 읽었다. 서울 주변의 수제맥줏집들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2014년에 나온 책이라 그 사이에 문 닫은 가게들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한 곳 한 곳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은 HJ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HJ는 일주일에 이틀 정도 부정기적으로 집에서 일했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가능하면 재택근무를 하라고 지시했는데, 그녀의 부서장은 그러지 말라는 태도였다. 전형적인 상황이다.
HJ가 거실에서 일했으므로 거실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들―세 방과 다용도실, 베란다―을 청소했다. 점심은 나가서 혼자 사먹었다. HJ가 추천해 준 근처 오므라이스 전문점에 먼저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아무런 안내문도 붙어 있지 않았고 유리창 너머 내부 상태도 관리가 안 된지 시간이 좀 흐른 듯 보였다. 옆 가게에서 닭곰탕을 먹었다.
저녁에는 부모님 댁에 갔다. 꼭 일주일 전이 아버지 생신이었다. 그러니까 다소 늦은 생일 파티인 셈이었지만 선물을 사가지는 않았다. 혼자 갔다. 부모님 댁에 HJ를 데려가지는 않는다. 동생 부부나 조카와도 굳이 일정을 조정해가면서 자리를 함께 하려 하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갈비찜을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 어머니, 나, 그렇게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갈비찜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수입 맥주를 여러 종류 준비하셨다. 기네스 드래프트를 먼저 마시고 그 다음에 기네스 오리지널을 마셨다. 내 입에는 탄산이 많은 기네스 오리지널이 맞는다.
기네스 드래프트에 대한 내 감상은 이렇다.
들이붓지 마세요
차가운 간장 마시는 기분이 듭니다
인생도 그렇겠지요
부모님과는 주로 옛날 얘기를 했다. 전에 어느 동네 살던 것 기억나느냐, 그 동네에서 저녁 때 아버지 마중 나갔던 것 기억하느냐, 그 다음에 살았던 동네에서 버스 타고 초등학교 다녔던 것 기억하느냐…. 세 사람이 500밀리리터짜리 캔맥주 열 캔을 비웠는데 나 혼자 여덟 캔쯤 마시지 않았을까 싶다. 별로 취하는 느낌도 없었다.
내가 요즘 자살 충동을 간혹 느낀다고 털어놓고, 두 분은 그런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 고백에 아버지나 어머니는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런 충동을 겪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고, 어머니는 예전부터 아주 흔하게 느꼈다고 했다. 양쪽 대답 모두 조금 의외였다. 그냥 다들 살면서 이런 삽화를 한두 번씩, 그리고 한두 번씩만 경험하는 줄 알았는데.
부모님이 자고 가라고 했지만 그냥 집에 돌아왔다. 그다지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HJ가 나를 보더니 “간만에 술 많이 마셨네”라고 말했다. 다음날에는 늦잠을 잤다. 다행히 숙취는 거의 없었다.
한 등장인물이 “한국 소설에는 집을 지키려 싸우는 남자나, 복수를 다루는 이야기가 없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는 복수가 불가능한 세계에서 기이한 방식으로, 껍데기뿐인 집을 지키려는 여자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