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231125~231129)
❝ 별점: ★★★☆
❝ 한줄평: 사람과 삶,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 세 편
❝ 키워드: 구별, 의식 | 계획, 보상 | 사랑, 증오
❝ 추천: 사람, 삶, 사랑에 관해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 (23/11/30) 『소설 보다 : 여름(2021)』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봄도 구매했었는데, 가을 먼저 읽고 봄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생각보다 두께가 있어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소설들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나의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은 찾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서는 타인을 멋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면서 자신과 구별 짓는 화자에 공감이 잘 가지 않았고, 「오늘 할 일」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좋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사랑과 결함」이세 편 중 제일 인상적이었지만 이 단편도 잘 읽혔다기 보다는 어딘가 불편하고 찜찜한 구석이 있어 곰곰 생각하며 읽었다. 인물들에 충분히 이입하고 읽지 못해서일까.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읽으면 다를까? 재독을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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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 단체 명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움직임을 사심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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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나현, 「오늘 할 일」
| 어제와 비슷한 오늘도 괜찮은 것인지 아무에게나 묻고 싶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앞에는 없었다. 정말로 오긴 오는 것인가. 다가올 계절이 아직은 믿어지지 않았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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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소연, 「사랑과 결함」 ⛤
| 다만 내가 알 수 있는 건, 고모나 엄마는 그저 나에게 끔찍한 사랑을 흠뻑 물려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랑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과 결함이 나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도.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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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삶의 터전이 단단할수록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그것이 모순으로 느껴졌고 일탈마저 특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p.71)
| 이 소설에는 '삶은 통제되지 않는 것' 혹은 '삶은 우연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믿음이 반영되어 있어요. 사실 계획을 세우는 일이란 통제되지 않는 삶을 손에 쥐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걑거든요. (p.138-139)
| 물론 어떤 함의를 지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에게 '사랑'은 어찌 보면 가혹한 것과 같거든요. 마음을 주게 됨으로써 일어날 예기치 못한 일들을 감수하게끔 하는 감정입니다.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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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파수는 웃기거나 울리려고 하지 않아서 좋았다. 착한 척도 좋은 척도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 라디오를 아껴가며 들었다. 아끼고 아꼈다가 쉬고 싶을 때, 힘들 때, 죽고 싶을 때, 잠들기 전에 기도하듯이 들었다.
p.135
전쟁 중에 태어나서 전쟁만 겪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조상들의 전쟁에 휘말려 평생을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이나 질병은 선택 문제가 아니다. 나는, 구의 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구의 인간다움을 좀먹고 구의 삶을 말라 비틀어지게 만드는 돈이 전쟁이나 전염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를 게 없었다. 그건 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부모가 물려준 세계였다. 물려받은 세계에서 구는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했을 까?
p.149
그렇다면 나는 사람인가.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지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