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독서 팟캐스트를 엄청 많이 들었다. ‘눈동자를 굴릴 수 있고 주의력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 시간에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라고 생각한다. (눈은 있지만 정신이 없는 경우가 요즘 좀 많긴 하다. 😭) 그런데 귀를 이용하면 되는 팟캐스트 청취는 독서의 좋은 보완재다. 20분 정도 되는 구경거리 없는 길거리를 걸을 때, 설거지, 청소 등 싫지만 해치워야 하는 일이 쌓였을 때, 사람들로 가득 찬 울렁울렁 버스 안에서, 무언가를 보는 것은 어렵지만 듣는 것은 문제없다. 이럴 때 독서 팟캐스트를 듣는다. 읽은 책은 맞아맞아 하면서 듣고 안 읽은 책 소개가 흥미롭게 들리면 좋은 추천을 받아서 신이 난다.
한때는 들어야 할 팟캐스트가 너무 많았는데 어느새 점점 그 수가 줄더니 이제는 몇 개 남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와중에도 <YG와 JYP의 책걸상>은 2017년 시작한 이래 그 명맥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시즌6 펀딩에도 성공, 올해에도 방송을 계속 들을 수 있다.
그믐에서도 함께 하자고 협업을 간곡히 요청드려 작년 한 해 동안 함께 읽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무려 50개가 넘는 독서모임!!)
내가 생각하는 책걸상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 큐레이션이 너무 좋다. 신/구간의 적당한 소개 비율, 문학/비문학의 절묘한 배치, 국내/해외 작가의 적절한 안배.
방송 안 듣고 이들이 무슨 책 읽었나만 살펴본 뒤 그냥 개인적으로 그 책 따로 읽어도 이득이다. (라고 쓰면 매우 싫어하시겠지만 😂)
둘째, 소개하려는 책이 무조건 좋다고 하지 않는다. 출판 시장이 워낙 작아지다 보니 책의 단점을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책걸상은 담백하게 이 점은 이래서 좋고 저 부분은 저래서 조금 아쉽다고, 유머있게 풀어주니 듣는 맛이 있다. 자극적으로 방송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고 적당하게 아쉬운 점을 이야기한다. 덕담만 오가지 않으니 책 안 좋아하는 사람이 그냥 예능처럼 들어도 재밌다.
그 밖에도 하고 싶은 칭찬거리는 많지만, 너무 길어지니 오늘은 1절만.
실은 오늘 방영분에 내가 출연했다. (본론 등장😂)
* YG, JYP님과 찍은 송년회 사진 (혼비 작가님은 아쉽게도 먼저 가셨다)
*팟캐스트 책걸상 다시듣기 링크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342/episodes/24857515
장르를 농촌코믹엽기미스터리라고 불러야 할까? 범죄 없는 마을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군더더기 없이 진행하고 유쾌하게 잘 마무리한다. 소를 판 사람 이름은 소팔희, 양식장 주인 이름은 양식연. 신한국, 왕주영, 우태우 같은 이름도 범상치 않음.
조선시대의 별별 희한한 직업들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장례식장에서 대신 울어주는 직업, 매 잡는 직업이 있었는가 하면 변호사와 신문 발행인도 있었다. 아무래도 내 눈길을 가는 직업은 책 읽어주는 전기수, 책 유통하는 책쾌. 법적 책임을 피하려고 고용하는 바지사장은 현대판 매품팔이 아니냐고 따끔하게 비판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콩트 60편. 재미있다. 추리 잡지의 ‘2000자 미스터리’라는 코너 연재물이었다고 한다. 간혹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야기도 있었는데 옮긴이도 그랬다고 고백한다. 2000자라는 분량에 맞추려다 설명을 생략해서 그렇게 됐나 보다.
원숭이 신이 다스리는 황금 도시가 온두라스 정글에 있다고 하고, 원정대가 출범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특파원이 그 원정대에 합류해서 책을 썼다. 탐사팀이 정말 그 도시를 발견하는 건지 아닌지 너무 궁금해서 중간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본 게 후회될 정도로 재미있었다. ‘저주’도 아주 무섭다.
‘전문가의 몰락’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 실패로 이어지게 된다고 경고한다. 유권자는 무책임한 선택을 하고, 전문가들은 대중과 언쟁을 피하며 자기들 집단의 사적 이익만 꾀할 것이기에 포퓰리즘과 기술관료주의가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 나는 무척 동의하며 읽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수학 모델이 인간과 세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때 우린 수학 모델 속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단편 「데이터 시대의 사랑」을 쓸 때 참고했다.
요즘 한국 문학에서는 이른바 문단문학과 장르소설의 오랜 골을 메우려는 실험들이 한창이다. ‘이쪽저쪽 작가들이 한데 모이면 물질과 반물질이 합쳐지는 듯한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작은따옴표 안의 비유는 내가 아니라 미국 소설가 마이클 셰이본의 표현이다. 752쪽짜리 소설집 『안 그러면 아비규환』의 제작 후기에 실려 있다.
셰이본은 퓰리처상, 휴고상, 네뷸러상을 모두 수상하며 문단과 장르소설계 양쪽에서 인정받은 희귀한 존재다. ‘지루한 순문학 대 가벼운 대중소설’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이 작가는 거기에 어지간히 짜증이 났나 보다. 대담하고 독창적인 편집으로 2000년대 초 미국 문학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독립출판사 맥스위니스의 편집장과 저녁을 먹다가 셰이본은 그런 불만을 토로한다. “내가 문예지를 만든다면 양쪽 대세 작가들을 모아서 이렇게 저렇게 할 거야” 라면서. 그러자 편집장 왈, “그냥 우리 잡지 한 호를 네가 만들어.”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안 그러면 아비규환』이다. 셰이본은 스티븐 킹, 닉 혼비, 닐 게이먼, 마이클 크라이튼 등 설명이 필요 없는 소설가 20명을 모았고, 그들에게 ‘오싹한 이야기’를 주문했다. 장르는 자유. 결과물은 흔한 마케팅 용어가 되어 버린 ‘융합’의 가치를 새삼 실감하게 해준다. 어느 소설집에 실려도 좋았을 수작들 가운데 릭 무디의 「앨버틴 노트」처럼 이런 기획 덕분에 작가가 쓰고 독자가 읽게 된 게 아닐까 싶은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적으로는 댄 숀의 「벌」이 가장 섬뜩했다. 이렇게 전에 몰랐던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도 이런 기획 앤솔로지에서 얻는 즐거움의 하나렷다.
콘셉트뿐 아니라 표지와 본문의 디자인까지 통통 튀는 책인데, 국내 번역서도 그런 요소들을 충실히 반영하려 애썼다. 책을 편집한 이수은 현 스윙밴드 출판사 대표는 “1950~1960년대 가판대 잡지 느낌을 추구한 원서의 레이아웃과 삽화를 적절히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 자신이 맥스위니스 출판사의 오랜 ‘덕후’여서 더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