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서 살인을 저지른 아들. 이를 눈 앞에서 목격한 어머니인 주인공,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가게 된다. 원래라면 이런 종류의 책에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 편인데 <30일의 밤>을 일전에 재미있게 읽고 나서 시간여행물에 마음이 많이 열렸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초반부가 정말 재미있다. 미스터리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읽는 내내 인간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과연 뭘까 생각하게 된다.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을 맞는 장소, 맞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는 마법과도 같은 존재, 그게 바로 내 아이인걸까?
“난 항상 네 생각을 해.”
제목은 저자의 꾸뻬씨 시리즈보다 훨씬 근사하다. 사실 꾸뻬씨 시리즈도 듬성듬성 보고 그나마도 시간 순서도 안 맞았지만, 말랑말랑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었고 이 책도 그렇다. 지구인의 지구여행(분명히 지구여행인데 판타지세계같은 건 기분탓일까..)에서, 화성에 살던 지구인이 문명이 퇴화한 지구별 여행으로 이동하고, sf니까 인공지능도 좀 나오고.엑또르가 배움을 메모했듯이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읽다보면 저자가 굳이 언급한 이 수식어들이 무용하게 느껴진다...)은 성찰 메모를 남기고 나중에 연인에게 코멘트를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의 출생 이야기는 딱히 놀라운 부분이 없었고, 아무리 지구가 핵 때문에 한 번 작살이 나서 인프라가 제로에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문명이 굳이 거의 원시시대로 돌아가고 그게 펼쳐지는 게 폴리네시아 언저리라는 게 언짢기도 하다. 그 동네 사람들이 지금도 전통을 중요시한다는 사실은 기회 생기면 기꺼이 원시인이 될 거라는 가능성이랑 손톱의 때만큼도 연결되지 않으니까. 차라리 백인 원시인이 라스코나 알타미라에 살고 주인공이 프랑스어를 말하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책의 메인은 성찰메모고 나머지는 다 그걸 위한 배경이니, 작가나 출판사가 딱히 신경 썼을 것 같지 않다. 아니, 그냥 나 말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지도 모른다...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이 정도로 끝내고 싶다. "내가 확신하는 거라고는 소외되는 사람, 용도 불명, 잉여 인간이 없는 세상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같은 생각이 아니겠는가. 흐르듯이 읽어야하는 책은 그냥 그렇게 덮기로 한다. 어쨌든 사랑과 자유의지는 위대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