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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정아은)

정아은 작가님이 앉으나 서나 전두환 생각을 하며 쓰셨다는 책. 아들과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와서 찾아보다가 읽게 되었다.


전두환은 왜 그토록 뻔뻔할까에 대한 답을 알게 된 책.


이순자의 저서 제목이 ‘당신은 외롭지 않다’ 라는 점이 근사하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2023년의 독서
  • 1월 :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천, 신시아 브라운, 크레이그 벤저민.
  • 어느새 책을 비롯해 영화, 음악, 게임에 이르기까지 어떤 미디어를 경험해도 감흥이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빅 히스토리는 매 챕터를 넘길 때마다 나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교정되면서 화각이 넓어짐.


  • 2월 : <돌봄과 작업> 정서경, 서유미, 홍한별, 임소연, 장하원, 전유진
  • "그렇게 작은 아이를 긴 의자에 뉘이고 서둘러 쓰레기를 정리하고 택배를 포장하고 롤 케이크를 만들었다. 안쓰러움과 별개로 그런 지리한 의무들을 먼저 처리해야 해. 그게 엄마의 일이야.”
  • 비록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라는 가장 오래된 직업에 대해서 생각했다. 골디락스 존처럼 경계에 있는 것들이 가장 매혹적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엄마라는 직업이야말로 감정과 이성, 비공식적인 일과 공식적인 일의 어떤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밸런스를 잡아야하는 일이라는 생각. 좋은 엄마란 되기 힘들고 내가 엄마가 아니라서 안도하게 됨.


  • 3월 :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 존 그리샴의 <카미노 아일랜드>를 읽다가 한국 출판계를 소재로 하는 에세이를 접했다. 한국 출판계의 오랜 관행이 탈세와 돈세탁에 상당히 용이한 시스템이란 생각. 전두환 장남 전재국이 롤모델이 되는 느와르도 괜찮지 않을까?


  • 4월 : <빌리 서머스> 스티븐 킹
  • 용두사미지만 2023년에 출간된 스티븐 킹 소설 가운데 가장 즐기면서 읽었다. 리 하비 오스왈드로 시작해 메이어 오브 킹스타운 시즌 1로 갔다가 샤이닝으로 마무리.


  • 5월 : <AI 이후의 세계> 헨리 키신저
  • 한참 챗 GPT에 관한 책이 쏟아져나오던 시기에 덩달아 출간한 책. 챗GPT 꼬리표를 달고 출간된 수십 종의 책들 가운데 그나마 정상적. 개인적으로 한참 AUTO GPT 같은 걸 돌리고 있던 시절이라 늦봄에 재밌게 읽었던 거 같기도


  • 6월 : <GV 빌런 고태경> 정대건
  • 읽을 땐 대한민국의 연극영화과 교재로 삼아도 좋을 법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연말 모임에서 정작 요즘 연극영화과 대학생들의 실태에 관한 뒷담화를 듣고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20대 대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리라.


  • 7월 :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
  • 7월 내내 읽은 책 보다 이 한편의 영화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책 주제를 벗어나고 말았다.


  • 8월 : <김혜순의 말> 김혜순
  • 늙은 시인의 생존기. 일년 그리고 24시간을 각성 상태 살아야했던 그렇게 시간이 흘러 노년에 이른 시인의 삶만큼 하드고어한 일이 또 있을까?


  • 9월 :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사카모토 류이치
  • 인두암으로 시작해 직장암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기록한 투병기는 아니고 작업 일지. 내가 보기에 그는 일 중독에 가까운데 일 중독은 어떤 관성에 가까운 거라서 교정이 되지 않는다.


  • 10월 : <수확자> 닐 셔스터먼
  • 2023년의 주식 시장을 비롯 AI가 주도하는 시대 상황과 타이밍이 잘 맞물린 영 어덜트 소설이 아닐까 싶은데 의외로 시장의 반응은 없었다. 국문 네이밍의 문제 같기도 한데 자칫 발음이 이과계 소설 같음. 반전에 대한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기분 좋은 변주.


  • 11월 :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 거짓말, 유토피아> 자미라 엘 우아실, 프리데만 카릭
  • 5년 전후로 출간한 스토리 관련 책 가운데 개인적으로 고르고 싶은 책. 목차만 보고 또 조셉 캠벨 사골 우려먹는 책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괜찮다. 사골 국물이긴 한데 일단 건더기도 많고 재료도 신선한 걸 쓰고 다대기 양념도 너무 짜거나 싱겁지 않게 밸런스가 잡혀있다.


  • 12월 : <전쟁의 기술> 로버트 그린
  • 언젠가 책으로 읽었는데 러닝 머신 뛰면서 윌라로 다시 들었다. 로버트 그린의 산만한 만담이 왜 재밌는지 모르겠는데 약간 쇼츠 보듯이 듣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덕분에 2023년에 목표했던 달리기 거리에 거의 근접.
빅 히스토리 - 우주와 지구, 인간을 하나로 잇는 새로운 역사
빅 히스토리 - 우주와 지구, 인간을 하나로 잇는 새로운 역사
라엘: 외계인들의 예언자

라엘리안 무브먼트에 관한 넷플릭스 다큐. UFO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에 김영사에서 출간한 '우주인이여 나를 데려가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70년대와 80년대 어느 시점에 라엘리안 무브먼트는 나름의 전성기를 구사했었고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아직까지도 나름의 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70년대 중후반에 세계적으로 UFO가 자주 목격이 되었고 산책을 갔다가 외계인과 조우해 우주선을 관람했다고 주장하는 프랑스 관종 클로드 보릴롱이란 자가 라엘리안 무브먼트라는 신종교를 창시한다.


이후 그는 스스로를 라엘이라 칭하며 우주선을 타고 인류를 창조한 외계 행성을 방문 후 다시 지구로 복귀. 그곳에서 과거 지구에 머물렀던 부처, 예수, 엘리야 등을 만나고 자신이 예수의 형제였다는 뜻밖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후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종교는 마치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초샤이어인으로 진화하 듯 한단게 업그레이드 된다.


70년대와 80년대에 가입한 신자들이 많아보인다. 우리나라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홍보 유튜브 등을 찾아봤는데 노년층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 온라인 게임도 그렇고 사이비 종교도 신규 유저가 유입되지 않으면 암울하기 마련인데 일단 교주의 나이도 있고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미래는 과연 어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선산

부산행 이후 가장 보기가 곤혹스러운 작품이 연상호 감독의 영화와 드라마. 볼테르가 '우리가 성공할 때는 칼날 바로 끝에서 성공하며, 우리가 죽을 때는 손에 든 그 무기로 죽는다'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연상호 역시 부산행의 신파를 이후 작품에서 계속 반복하며 연명하고 있다.


정이는 초반부터 신파가 디밀고 들어와서 보다가 포기했는데 그나마 선산은 초중반까지는 신파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연상호는 각본에 참여했을뿐 연출은 민홍남이라는 신인 감독. 김현주의 연기는 도대체 잘 모르겠고 박병은, 현봉식, 최유화 등 조연들의 연기가 좋다.

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괴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하드코어 심리학

선정적인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뇌과학에 관해 산만하게 파편화된 잡문 모음집. 블로그 글을 모아서 출판한 건지 편집자가 부재한 상태에서 글을 쓴 건지 아니면 산만하기 쉬운 뇌의 속성을 저술로 보여주려고 한 건지 모르겠다.

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괴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하드코어 심리학
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괴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하드코어 심리학
오늘부터 술을 줄이겠습니다! - 마셔볼 만큼 마셔본 자를 위한 기적의 금주·절주 비법

기적의 금주, 절주 비법까지는 아니고 알콜 중독 치료를 위한 약물 처방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있다. 실제 알콜 중독자의 케이스 소개도 흥미로움. 알콜 중독과 의존증의 경우 대부분 가정이 망가진다.

오늘부터 술을 줄이겠습니다! - 마셔볼 만큼 마셔본 자를 위한 기적의 금주·절주 비법
오늘부터 술을 줄이겠습니다! - 마셔볼 만큼 마셔본 자를 위한 기적의 금주·절주 비법
[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

2024년 2월 8일 (음력 12월 29일) 20시 29분에 구글미트를 통해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서진 작가, 정진영 작가의 북토크로 온라인 그믐밤이 열렸습니다.


열 아홉번째 그믐밤은 그믐 김새섬 대표의 사회로 서로 다른 주종만큼이나 다채로운 두 작가님의 인생 이야기,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연휴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한 잔 술과 차를 함께 나누며 많은 분들과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어 정말 즐거웠습니다.


함께 해 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믐밤 19회 이야기는 아래에 있습니다. 


[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


참여 해주신 그믄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모임이 종료되어서 마지막 인사를 못 하고 나온게 서운했어요. < 이 별이 마음에 들어> 29일동안 함께 읽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임을 계기로 저도 그믄활동 열심히 하려고요. 다른 모임에서 또 만나요.^^

(참고로 저 T 아니랍니다…ㅋㅋ)

이 별이 마음에 들어 - 제11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이 별이 마음에 들어 - 제11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절대적 비순응주의의 비평과 ‘있는 그대로’의 번역 ―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과의 만남

황현산 선생님은 섬세한 언어의 비평가이자 탁월한 번역가일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 시대의 어른이며 스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최근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와 산문집 『사소한 부탁』을 동시에 출간하였다.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는 보들레르와 함께 현대시에 큰 영향을 미친 시집인데, 이번 황현산 선생의 정련된 언어를 통해 한국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국어 판본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많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밤이 선생이다』 이후 만 5년 만에 산문집 『사소한 부탁』을 출간하였다. 이번 계기로 2018년 7월 5일, 황현산 선생님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포천으로 찾아갔다.

 

●송승환: 안녕하세요? 맑은 자연의 공기와 물소리가 흐르는 포천 작업실로 찾아뵙게 되어 새롭고 반갑습니다.(웃음) 이곳은 정릉 아파트와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작업실을 마련하셨는지요?

―황현산: 시간으로는 한 20여 년 되었습니다. 집사람이 도자기 작업실로 사용하다가 제가 번역하고 공부하는 작업실로 쓰고 있습니다.

 

●송승환: 특별히 이곳에서 번역을 집중적으로 하신 이유가 있는지요?

―황현산: 번역 같은 작업은 누가 시켜서 하는 작업이 아니라 마음이 내켜야 하는 것이고 특히 마음에 평화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곳은 평화를 누리기에 분위기가 좋습니다.

 

●송승환: 이번에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는 한국시에 선사해주신 귀한 선물이자 한국의 문화적 유산이 될 것 같습니다. 그간 한국에서 읽을 만한 완역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번역을 통해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동물들의 운동과 그 양태에 대한 세밀한 묘사, 그 문체에서 음악적 울림을 들었습니다. 번역하시면서 특별히 주목하신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황현산: 『말도로르의 노래』 특징 중의 하나는 역시 문체입니다. 내용이 글을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문체가 문체를 끌고 나가고 또 문체가 내용을 끌고 나가는 것이 『말도로르의 노래』의 특징입니다. 저는 그 점을 착안하여 번역을 했는데, 특히 『말도로르의 노래』 같은 이런 글을 번역할 때는 번역은 있는 그대로 번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무 노력한 흔적도 남지 않게 됩니다.

 

●송승환: 선생님께서 번역은 직역과 의역의 문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옮기면 된다고 말씀하신 바 있으십니다. 그 뜻을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는지요?

―황현산: 사람들은 원저자의 뜻을 잘 전한다고 텍스트를 자기 마음대로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왜곡을 시키는데 그 왜곡이라는 것이 그 당시 기분이나 주관성에는 맞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고 번역해 놓은 것보다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을 바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색하게 보이건 문체가 이상하게 보이건 어떤 경우에도 ‘있는 그대로’ 쓰인 그대로 번역을 하는 것이 옳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승환: 시도 ‘있는 그대로’ 쓰라고 하지만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선생님께서 말라르메의 『시집』을 번역하시면서 말씀하셨던 어떤 지역 언어, 우연에 갇히지 않는 필연과 보편적 언어로서의 지향, 그 언어를 말씀하시는지요?

―황현산: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번역을 하면 원저자가 갑이고 번역자가 을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원저자는 죽어버리고 번역자는 자기 마음대로 번역을 합니다. 번역자가 그 원문에 수많은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번역을 하면 ‘있는 그대로’의 번역에서부터 ‘보편언어’가 생겨납니다. ‘있는 그대로’ 번역을 할 때 우리가 보통 갖고 있는 자국의 언어습관이나 그 시대의 주관성에 의해서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 이상한 부분이 자기 시대의 주관성과 자기 시대의 습관, 언어의 타락, 이것을 넘어서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승환: 그렇다면 시인 말라르메가 개인의 주관성, 언어습관, 언어의 고유한 특성을 넘어선 보편적 우주로서의 언어로 다가갈 때의 그것과 맞닿아 있는 어떤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요?

―황현산: ‘있는 그대로’ 번역을 할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해묵은 언어습관들, 그리고 그 시대가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주관성, 또 언어를 갈라놓게 되는 풍속, 역사를 넘어서 언어, 그 자체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순수한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말라르메죠.

 

●송승환: 그것이 말라르메의 순수언어로서의 ‘절대시’이면서도 동시에 보편언어를 추구하는 것으로서의 번역이라고 받아들여도 될는지요?

―황현산: 네. 그렇습니다. 그 생각을 그대로 옮겨 담은 것이 발터 베냐민의 「번역가의 과제」입니다.

 

●송승환: 이번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 다섯 번째 노래, 3절에서는 “내가 존재한다면, 나는 타자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이 문장은 랭보의 “나는 타자다”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요?

―황현산: 랭보가 “나는 타자다”라고 말할 때 “나는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 다른 말이 아닙니다. “나는 타자다”라는 말은 ‘나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로트레아몽이 이렇게 말을 할 때에는 전혀 다르게 사르트르의 ‘존재가 본질을 앞선다’, 라고 말할 때의 말과 비슷한 말이 됩니다.

 

●송승환: 그렇다면 말도로르가 대면하고 증오하는, 싸우려고 하는 창조주, ‘있는 자’로서의 창조주, 그 ‘있는 자’로서의 타자라고 이해해도 될는지요?

―황현산: 네.

 

●송승환: 그렇다면 선생님의 번역과 비평은 로트레아몽의 ‘타자’보다 랭보의 “나는 타자다”에 더 가깝다고 보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타자의 삶’, “다른 삶들은 있는가”라는 물음을 품고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시게 되셨는지요?

―황현산: 젊었을 때부터 무슨 큰 생각을 갖고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살다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지. 그 삶에서 늘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늘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고, 늘 새롭게 무엇을 만들어 보려고 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특별하게 타자가 되겠다, 라는 생각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송승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비평과 번역은 용기와 희망을 주면서 후배 문인들과 젊은 세대에게 ‘다른 삶은 있다’고 읽힙니다. 특히,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초현실주의는 우리의 절대적 비순응주의다”라는 문장과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에서 “시는 포기하지 않음의 윤리”라는 문장은, “삶은 다른 곳에 있다”는 삶의 태도로 읽혔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삶의 태도는 언제부터 지니셨는지요?

―황현산: 아마 철들고 나서부터, 뭔가 다른 것이 되어 보고 싶고 뭔가 주어진 조건을 가지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을 해서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을 내내 해왔습니다. 그러한 생각들이 그러한 말로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송승환: 선생님의 번역과 비평의 배면에 흐르는 문장, ‘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와 ‘다른 삶이 있다’는 태도는 저희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황현산: 거꾸로 이야기하면 시인들이 결국 그런 태도를 가졌으니까 그 태도를 내가 시에서 발견한 것이지요.

 

●송승환: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초현실주의에서 ‘비순응주의’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시의 윤리라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요?

―황현산: 결국 시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갇혀있는 상태를 깨뜨릴 수 있는가, 어떤 방식으로 깨뜨릴 것인가, 그것을 깨뜨리는 어떤 징후가 있는가를 찾는 것이 시를 쓰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평가는 거기에 묻어가면서 같이 배우고 도와가며 훈수도 하며 협력하여 작업을 하는 것이죠.

 

●송승환: 지금까지 선생님께서는 어떤 비평가도 주목하지 않은 시인들의 새로움에 주목하고 그 언어를 통해서 다른 삶, 다른 사유가 가능함을 보여주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왜 시인들은 지금의 언어와 다른 언어를 써야만 언어의 새로움 혹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요?

―황현산: 시의 본질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라고 하는 것은, 언어의 아주 작은 뉘앙스, 리듬, 이런 것들을 빼놓고 새로운 징후는 발견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송승환: 『말도로르의 노래』는 장려한 문체가 돋보이는 첫 번째 노래부터 다섯 번째 노래까지 모두 흥미로웠습니다만, 특히, 짧은 소설이라고 쓴 여섯 번째 노래의 ‘파리의 거리’ 묘사가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여기에는 산문소시집 『파리의 우울󰡕을 쓴 보들레르와의 영향 관계가 있을까요?

―황현산: 물론 당연히 영향 관계가 있죠. 산문시와의 영향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들레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인간과 신에 관한 온갖 종류의 의문,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 이러한 모든 의문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송승환: 『밤이 선생이다』 이후 5년 만에 이번 산문집 『사소한 부탁』을 내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황현산: 김민정 시인이 『밤이 선생이다』 이후의 글들을 묶는다고 하여 그것이 읽을거리가 될까, 했는데 “묶어 놓으니까 재미있어요” 해서 “네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해서 나왔는데, 이번에 책 나와서 묶어 놓은 것을 보니까 그런대로 읽을 만하더라고요.

 

●송승환: 제 주변에서는 『밤이 선생이다』의 ‘우체국 장면’이 인상 깊었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책을 쉽게 구하는 것과 선생님의 시대처럼 통관을 거쳐 어렵게 책을 구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황현산: 그 당시에는 책을 그렇게 어렵게 구할 수밖에 없어서 책을 구하면 안고 잤어요. 그리고 책을 읽을 때 씹어 먹을 것처럼 읽었지요. 요즘은 책들을 쉽게, 거의 노력을 하지 않고 구하게 되니까 옛날처럼 책에 대해서 그렇게 큰 정열이 없어졌어요.

 

●송승환: 표제로 삼은 『사소한 부탁』에서 “말 그대로 ‘사소한 부탁’이지만, 이들 지엽적인 부탁이 어떤 알레고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라는 문장처럼 언제부터 이렇게 완곡한 문체를 쓰게 되셨는지요?

―황현산: 이런 완곡한 문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읽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내가 처음부터 독자들을 한꺼번에 설득하고 말을 전하는 방법이 완곡하게 말하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송승환: 선생님의 산문과 비평은 완곡어법과 알레고리의 특성이 있는 듯싶습니다. 선생님께 알레고리는 무엇일까요?

―황현산: 특별하게 그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는데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으로 쓴다는 것이 글 쓸 때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추상적이라는 것은 글이 어린이한테 하는 말처럼 쉽게 읽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체적이라는 것은 항상 사람들이 글을 자기 삶과 연결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인 것, 두 가지 길을 한꺼번에 가게 하는 방법이 알레고리적 방법이라고 봅니다.

 

●송승환: 그래서 비평뿐만 아니라 신문의 짧은 글도 읽고 나면 질문으로 남아서 큰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주시고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으로서의 언어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황현산: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 중에서 거의 90%는 흘러가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을 할 때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려고 한다, 라고 하는 것에 의식을 두고 말을 할 때 새로운 표현법도 만들어지고 그 언어와 일상적인 삶과의 깊은 관계도 파악이 되고 현실에 관한 새로운 측면, 새로운 모서리도 발견이 된다고 봅니다.

 

●송승환: 올곧이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공부하시고 번역하신 선생님께서 동시대 사람들과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황현산: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에 특별한 목적을 두고 공부하고 번역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하다 보니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상징주의나 초현실주의, 그 어떤 것이든 하다 보면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주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서 얻게 되는 일종의 인내라고 할까, 어떤 특별한 태도의 지혜라고 할까, 이런 것들이 연마가 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송승환: 현재 보들레르와 랭보의 번역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우선적으로 할 계획이신지요?

―황현산: 보들레르의 『악의 꽃』입니다. 번역은 끝냈고 주석을 붙이려고 하는데 힘에 부칩니다.

 

●창밖에서 물소리가 계속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선생님! 오랜 시간 가슴에 새기면서 흘러넘칠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902. 호모 파버 (막스 프리쉬)

이성과 과학을 믿고 계획대로 사는 중년 남성 발터 파버가 그리스 비극 같은 운명의 장난을 겪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죽은 아내의 브로치로 자기 눈을 찔렀고, 파버는 자기 앞에 놓인 포크를 보면서 ‘왜 나는 내 눈을 찌르지 않는가’ 하고 자문한다. 파버가 극중 과거에 겪은 사건은 실제 작가의 경험이라고 한다.

호모 파버
호모 파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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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책 증정]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6기 [책증정] 작가와 작가가 함께 등판하는 조영주 신작 <마지막 방화> 리디셀렉트로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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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단순 생활자 황보름 작가님과 함께 읽으실래요?
<계급 천장> 함께 읽으실래요?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함께 읽으실래요? <빌리 서머스> 함께 읽으실래요?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 떠오르는 책을 추천해주세요!
[성북구립도서관] 2024년 성북구 비문학 한 책을 추천해주세요. (~5/12)
차무진의 매력은 끝이 없어라~
[박소해의 장르살롱] 14. 차무진의 네 가지 얼굴 [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차무진 작가와 <어떤, 클래식>을 읽어 보아요. 차무진 작가와 귀주대첩을 다룬 장편소설 <여우의 계절>을 함께 읽어요<한국 소설이 좋아서 2> 차무진 소설가와의 온라인 대화
이 계절 그리고 지난 계절에 주목할 만한 장편소설 with 6인의 평론가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2
직장인이세요? 길 잃은 직장인을 위한 책들 여기 있어요.
[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직장인토크] 완생 향해 가는 직장인분들 우리 미생 얘기해요! | 우수참여자 미생 대본집🎈[생각의힘] 어렵지 않아요! 마케터와 함께 읽기 《커리어 그리고 가정》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오늘은 그믐밤] 저녁 8시 29분에 만나요
[그믐밤] 22. 가족의 달 5월, 가족에 관한 책 얘기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1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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