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는 고통분담의 역사적 체험을 축적하는 성장과정에서 꾸준히 실패해 왔다’는 문장에 깊이 공감. 지금도 물론 실패 중이며, ‘고통을 분담하는 도덕적 원리’는 여전히 아득하다.
사유가 깊어지면 문장은 자연스럽게 비장해지는 걸까, 아니면 이 비장함은 그저 글쓴이의 개성일까.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이 ‘예’라면, ‘경쾌한 문장에는 얕은 생각밖에 담을 수 없다’는 대우 명제도 옳은 걸까.
웹진 ‘거울’이 2011년에 낸 비평선. 독립출판물이다. 뭉클한 에세이도 있고, 너무 기합이 들어가서인지 문단 평론의 가장 안 좋은 점을 애써 흉내 낸 글도 있다. 팬덤의 성취를 냉정하게 평가한 분석도 있고,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지 모를 진영 논리도 있다.
늘 집중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정착한 앱. Focus To-Do
25분 집중, 5분 휴식 알람이 울리는 타이머이다. 뽀모도로 타이머 라는 건 파스타 면 삶을때 쓰는 타이머라고 한다. 최근에는 기능이 추가되어서 뽀모도로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뒤집어 놓지 않으면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늘은 스터디카페에 가서 8뽀모도로를 하고 왔다. 네시간동안 집중한 셈인데, 논문의 서론을 채 완성하지 못 했다. 8뽀모도로까지는 바리지 않지만 4뽀모도로만 이라도 매일 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을텐데.
미루고 미루던 치과 치료를 시작했다. 간만에 (이런 종류의 설레임을 원한건 아니지만 어쨌든) 설레이는 나날들이 이어졌고 금주의 세계로 들어섰다.
처음 며칠은 술시가 되면 초롱초롱해지는 내 신체시계가 참으로 원망스럽기까지 했는데 3주가 된 지금, 나름 버틸만하다.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니가 술을 안마시니 재미가 없다", "손은 안떨리냐", "제 정신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안부를 받고 있다. 심지어 금주기간이라니까 약속을 미루자는 놈도 있었다. (그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지만 여튼 실로 장대한 내 계획은) 앞으로 30년 더 마시기 위해 비루한 4달을 견뎌내는 것이다.(100세 시대라지만 그때까지 살고 싶진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17살 때 서른 되기 전에 죽겠다고 흠모하던 34살 된 영어선생님께 편지를 썼던 기억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왔다. 훗😏 미쳐ㅆ...)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이불킥하는 일도 줄어들었고 (기억에 없지만 술김에 시킨) 인터넷 서점 박스가 OO개 까지 쌓여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몰래 숨겨놓기도 해봤던 일이 줄어들었다. 시킨 기억이 없으므로 선물을 뜯듯 설레는 마음으로 박스들을 뜯으며 <욕실 인테리어>, <못생긴 여자의 역사>, <술꾼도시처녀들>, <세월> 같은 책들을 꺼내며 당연히 필요한 책들이었다 변명하는 횟수가 (여전히 충동구매는 하고 있으므로 없어지진 않고) 줄어들고 있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는 얼마전 그믐밤에서 들었던 호밀밭 출판사의 책이라 산거 같고, <욕실 인테리어>는 집정리 프로그램을 보던 중 욕심이 생겨 담아둔 것 같고, <술꾼도시처녀들>은 남일이 아닌것 같아 담았고, 아니 에르노의 <세월>은 이미 읽은 책이 집에 있는데 노벨문학상 광고를 보고 무의식이 담은 것 같다. 동생한테 줘야겠다. 선물주려고 일부러 샀다고 해야지.
치료가 끝난 후 마트에서 장을 봤다. 아이쇼핑으로 알코올 코너를 천천히 음미하다 무알콜 진열장을 발견했다. 신세계였다!! 이렇게 다양하다니!!! 왜 몰랐지!!!?
어젠 치밀한(?) 계획하에 시킨 책들과 무알콜을 들이키며 행복했다. 무알콜이라지만 완벽한 0%로는 아니므로 99%속에 스며든 1%로의 순수알코올을 온몸으로 (치료중 30번 정도 들었던) 썩션하며 책을 훑어본다. 이제 3달 남았다!!!
이사한 날에는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데 왠지 안 땡겨서 (지난 번 이사할 때 먹었던 짜장면이 별로였던 기억도 나고) 무턱대고 집을 나섰다. 뉴스가 나오는 조용한 동네 치킨집. 술집에서 아이돌 음악보다 뉴스 나오는 게 듣기에 더 나은 나이가 되었다. T.T
옛날 통닭과 닭똥집 세트. 싸진 않지만 매우 맛있어서 흡족한 기분으로 나왔다.
뇌과학자가 본 인생의 의미. 신도 영혼도 없고, 철학은 말장난이며, 삶의 의미는 사랑-일-놀이라고 결론내린다. 행복이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의미 없지만 행복한 삶과 불행하지만 의미 있는 삶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의미에 따라오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서구 철학사의 한 흐름이었던 비관주의와 염세론을 훑으며 진보, 휴머니즘, 자아실현, 세계에 대한 이해 같은 개념의 허구성을 공격한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대해 답을 거부하는 태도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급진적 좌파들은 우리 시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매체 오락물(media cabare)의 일부이다. 정치적으로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하필 이 책을 10.29. 참사 며칠 뒤에 읽었다. 뉴스로만 접했음에도 도무지 믿겨지지않는 일이 또 일어났음에, 그 참혹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날 그 현장에서 고군분투했을 경찰관들, 구조대원들이 또 얼마나 속으로 힘들어하고 있을까를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했다.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 할때 그 시스템을 떠받 치는 개인들은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다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읽는 내내 그 비명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해서 읽기엔 좀 괴롭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영화와 TV 드라마 대본, 어린이 책을 쓴 저자가 글쓰기 팁을 섹스에 빗대 소개한다. 체위 바꿔보라, 전희 공들여라, 하는 식. 그러고 보니 글쓰기와 섹스가 비슷한 구석이 꽤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어떤 부분은 좀 억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