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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쓰다: 005. 여행


여행은 내게 낯선 것이었다. 애초에 내가 여행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지, 싫어하는 지 조차 아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여행은 저 멀리,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부모님은 여행을 즐기지 않으셨다. 꼭 거창하게 멀리, 오랜 기간 떠나는 해외 여행만이 여행은 아님을 안다. 허나 부모님은 (국내 여행이든, 당일치기 여행이든) 어떤 형태로든 집을 떠나 시간을 보내는 소소한 나들이조차 썩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유년시절부터 나는 여행이라는 것을 접할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아예 삶 속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여행이라는 개념이 내게는 없었다. 우리 세 식구가 함께 한 여행을 꼽자면 다섯 손가락으로도 충분하다. 방학 때 강원도에 살고 계신 이모 집에 놀러간 일(여름과 겨울 한 번씩 간 것이 전부), 서울에 출장 간 아빠를 만나러 엄마랑 단 둘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간 일, 부곡하와이에 놀러간 일. 유년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은 그 네 번이 전부였다. 흔한 나들이도 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퍽퍽했을까. 늘 미래에 살고 있었던 엄마는 현재를 즐기는 법을 몰랐다. 여행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돈이 아까운 사람이었다. 여행이 우리 삶에 가져다 주는 가치들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아빠는 해외에서 일을 한 경험도 있고 여행 자체를 제법 즐기는 남자였지만 좀처럼 떠나지 않는 엄마를 배려했고, 적응했고, 어느새 떠나지 않는 삶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퍽 삭막한 삶을 살았던 부모님이(정확히는 엄마가) 나의 여행을 적극 지지할 리 만무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친구 집에서 하루 자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격 없이 지내는 (부모님끼리도 친한) 친구네라고 할지라도 외박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친구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은 가능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엄마는 안 되는 게 참 많았다. 좀 더 자라서는 친구와 [내일로 기차 여행]을 떠나는 것도 꿈꿨지만 말 그대로 꿈이었다. 친구 집에 하루 머무는 것도 안되는 판국에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이라니, 가당찮은 일이었다. 학교에서 떠나는 수학여행처럼 오직 공식 일정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여행의 전부였다.

다행히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고등학교는 당시 중국의 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고, 덕분에 수학여행은 중국으로 떠났다. 국립 고등학교였던 덕도 보았다. 4박 5일 일정이었음에도 매우 저렴한 비용을 들여 중국을 다녀올 수 있었다. 대학을 가고서는 그 공식 일정들이 늘어났다.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으니 MT는 빠지지 않고 다녔다. 대학은 '개성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학생회 임원들은 매년 북한을 다녀왔다. 나도 그 행운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공장 문제로 개성 공장을 가지는 못했지만, 임진강을 건너 북한의 공개된 일부 식당과 산을 탔다. 하루 머물렀을 뿐이지만 평생 잊지 못할 풍경들을 나는 눈에, 마음에 담았다. 학생회라는 이유로 자매결연 대학이 있었던 일본도 다녀왔다. 대학원에 가서는 학회 참석이라는 명목으로 국내의 많은 지역과 해외를 다닐 수 있었다. 나는 그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즐겼다. 부모님이 알려주지 않았던 여행의 묘미를 나는 그렇게 배웠다. 어찌나 달콤하던지. 외국에서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나는 물 갈이도 하지 않았고, 모든 음식도 잘 먹었고, 적응력이 높았다. 모든 것이 좋았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모든 여행들은 어디까지나 '공식' 일정이었다. 내 개인이 주체적으로 하는 여행은 없었다. 양심에 찔렸지만, 내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눈속임만이 답이었다. 나는 공식 MT의 일정 중 하루를 더 불려 내 개인 여행 일정으로 썼고, 장학재단의 MT 일정 중 이틀을 빼내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대담하게 아예 없는 공식 일정을 거짓말로 창조해 낼 베짱은 없었다. 그렇게 떠나는 여행은 1분 1초가 불안을 짊어져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안으로 쌓아올린 여행은 쓰디 썼다. 공식 일정 말고, 개인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들을 쌓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어학 연수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친구들,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선배, 국내외 여행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훌쩍 다녀올 수 있던 많은 이들. 나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을까. 엄마와 아빠의 '안 된다'는 틀을 벗어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결혼을 하고서야 비로소 나는 자유를 찾았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실은 '자유롭게 나의 시간을 갖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행복했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즉흥적이고 무계획이 계획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내 남편 덕에 나의 결혼 생활은 자유 그 자체였다. 결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나는 학교 일정이 끝나고, 남편은 회사 일정이 끝난 금요일 저녁.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남해로 떠나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진짜로 집에 들러 간단히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만 챙겨 남해로 떠나는 차 안. 숙소도 잡지 않고 떠나는 길, 급히 검색해서 펜션마다 전화를 돌려 겨우 하나를 잡았다. 별안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구름 탄 듯 붕 뜬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오빠. 나, 결혼 한 거 같지 않고 마음 잘 맞는 룸메이트가 한 명 생긴 것 같아!"라는 나를 보며 실없이 웃던 남편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꽁꽁 묶여 있던 속박의 틀을 벗어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어떤 모양새였을까. 그 쯔음이었을 게다. 남편은 내게 약속했다. 많이 다니자고. 어디든 이렇게 함께 여행하듯 즐기며 살자고. 그리고 여권에도 도장을 많이 찍어주겠다고. 적어도 1년에 1번은 꼭 도장을 찍자고. 국내는 가깝든 멀든 자주 다니면 그만이니, 해외도 자주 다니자고. 그리고 남편은 정말로 그 약속을 지켰다. 1번이 대수일까, 그보다 더 많은 도장을 찍어줬다.






여행은 내게 위안이자 쉼이었다. 집이 아닌, 익숙한 풍경들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그 모든 순간들의 추억은 다시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일상에 지칠 때면, 이제는 내 입에서 '떠나고 싶다'는 말이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삶에 여행이란 개념조차 없던 내가, 이제는 여행이 곧 삶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도 쉬지 않았던 여행. 그 덕에 아이는 나이에 비해 여권에 제법 많은 도장이 찍혀 있고, 국내에 많은 지역들을 돌아다녔으며,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하다. 가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놀랍다. 어디에서 먹었던 무엇이 좋았다던가, 거긴 A가 좋은 대신 B가 아쉬웠는데 여기는 A가 아쉬운 대신 B가 좋다고 고민을 한다던가, 어디에서 보았던 그걸 또 보고 싶다던가, 그걸 할 수 있는 곳에 또 가고 싶다던가, 그 때 누군가와 같이 갔던 그 곳이 너무 좋아서 또 가고 싶다던가 ... 여행을 통해 켜켜이 쌓인 자신만의 견고한 취향들을 주장할 때면 아이가 가진 그 색깔이 멋있어서 감탄스럽다. 앞으로 더 쌓여갈 여행들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더 취할 수 있을까, 기대가 된다. 내가 놓친 것들을 이 아이는 충분히 누리고 있는 것 같아 내심 감사하게 된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찾게 된 여행의 의미를, 이 아이는 벌써부터 삶 속에 녹이고 있음에 괜히 안도하게 된다. 여행이 없는 삶을 살았던 나는 여행이 있는 삶을 사는 네가 못내 부럽다.

2019년 12월, 아이 생일을 기념해서 떠났던 세부 여행이 우리 세 식구의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다. 다음 해 1월 코로나가 한국에 극심하게 퍼진 뒤로 우리는 발이 묶였다. 물론 캠핑으로 여행의 형태를 전환했고, 나들이는 변함없이 자주 다녔지만 아주 낯선 땅을 밟고 싶은 그 욕구는 늘 발을 간질인다. 위드 코로나가 된 지금, 오랜만에 다시 여권을 펼쳐본다. 올해는 오랜만에 다시 도장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슬며시 기대도 해 본다. 비행기의 그 소란스러운 진동을 느껴보고 싶다. 몹시도 낯선 타국의 공기 냄새와 어색한 언어들 속에 갇힌 나를 그려본다. 여행이 주는 그 자유를,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더쓰다: 004. 음식


김영하 북클럽이 발단이었다. "자, 오늘이 마지막 식사라면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 그 전까지 열심히 반응하며 북클럽에 참여하고 있었거늘, 저 질문 하나에 나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뒷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답변은 이전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올라왔지만 나 혼자 백지상태로 멈추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채팅창에 스치는 다양한 음식들을 보고 있어도 마지막 식사로 먹고 싶은 것이 단 하나도 떠오르질 않았다.


나만 그런 걸까. 그 뒤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북클럽에서 내가 받았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다들 고민하지 않고 하나씩 답을 내놓았다. 여러 가지 음식 중에 하나를 고르기 힘들어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고, 한 가지 음식만을 콕 찝어 이야기 한 사람도 있었고, 거한 상차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힐링푸드라서, 단순히 맛있어서, 평소에 너무 좋아해서, 그리운 추억이 담겨 있어서, 보고싶은 사람이 해 주던 음식이어서, 흔히 잘 못 먹는 음식이라서 ... 제각기 음식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그득 담겨 있었다. 게다가 한 번 음식에 대한 이야기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심지어는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어질 정도로 저 질문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풍부한 단서가 되어주었다. 나는 몹시 절망했다. 나만 이상한거야?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나는 맛에 무딘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가성비가 참 좋은 혀를 가졌다. 웬만하면 다 맛있다. (사실 맛 없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남편의 표현에 따르면 저렴한 입맛을 가졌고, 아빠의 표현에 따르면 평균보다 대체로 만족도가 높은 편이고, 또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삶의 큰 낙을 하나 잃은 사람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먹는 행위에 어떤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소식가라던가 사흘밤낮 쫄쫄 굶는다는 뜻은 아니다. 배가 고프면 무언가를 먹고, 적당히 먹어 배가 부르면 그만이다. 좋은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힐링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지만, 맛있음의 기준이 현격히 낮고 명확한 기준이 없는 터라 음식을 먹는 행위로 얻는 힐링이라는 게 퍽 스펙타클하지도 않다. 그만큼 내게는 음식이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바로 '마지막'이었다. 삶의 마지막에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어차피 죽을 몸인데! 죽는다잖아! 끝없는 외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즈막히 울려퍼졌다. 아마도 나는 그 질문에서 '음식'보다 '마지막'에 꽂힌 탓에 나머지는 제대로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끝, 소멸, 허무. 내게 죽음은 그런 것이었던가. 차라리 질문이 "오늘이 마지막 순간이라면,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였더라면 상대적으로 답 하기 쉬웠을 것이다. 오히려 여러 명 중에 한 명을 뽑기 위해 고민을 하거나, 꼭 함께이고 싶지만 나의 죽음 뒤에 홀로 남겨질 이의 슬픔 때문에 답 하기 꺼려했으면 몰라도 아예 백지상태는 아니었을 거란 말이다.






얼마 전, 그런 내게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다. 남편이 해 주는 떡볶이. 남편은 강의 준비를 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는 나를 위해, 저녁을 허술하게 먹고 출출하다는 나를 위해 종종 떡볶이를 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떡볶이와는 좀 거리가 멀 지 모른다. 밀떡이나 쌀떡으로 된 떡볶이 떡으로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냉동실에 있는 떡국 떡이 주 재료일 때가 많다(시도해 보지 않았다면 추천! 의외로 가장 맛있다.). 떡국 떡마저도 없는 날엔 라면 사리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어묵이나 햄, 순대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떡볶이라고 부르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어쨋든 남편이 내게 해 주는 떡볶이는 오로지 나의 요구를 100퍼센트 반영한 떡볶이 소스와 토핑(이 두 가지는 매번 바뀐다), 그리고 주재료만큼 듬뿍 넣은 양파가 핵심이다(양파는 다다익선). 심한 날은 일주일에 세 번이나 연속으로 떡볶이를 먹었고, 이 떡볶이가 먹고 싶어 저녁을 대충 먹고 아이가 잠들 시간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취사병 출신의 남편은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 떡볶이가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가, 물어본다면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아니, 있다. '남편'이 아니면 절대로 먹을 수 없는 맛과 모양의, 내 인생 유일한 남편표 떡볶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오늘이 마지막 식사라면 무엇을 먹고 싶습니까. '생의 마지막'에만 몰두했던 내가 일상에서 찾아낸 또 다른 의미의 '마지막'이자 '유일함'이 답을 주었다. 평소처럼 남편이 만들어준 떡볶이를 먹다가 불현듯, 폭탄선언을 하는 사람마냥 비장한 얼굴로 남편에게 외쳤다. "나,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 정했어. 이거야!"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찾지 못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의 답이 싫지 않은 듯, 비식 웃음을 흘렸다. 본인이 먼저 죽으면 이 떡볶이는 더 이상 못 먹을텐데 나의 마지막 식사로 먹을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실없는 농담도 던졌다(남편은 나보다 나이가 7살이 많다). 나는 남편을 따라 웃으며 가는 데 순서가 있느냐는 더 실없는 농담으로 받아쳤다. 진짜로 죽기 전에 그걸 꼭 먹겠다는 말이 아니라, 몹시 저렴한 입맛을 가진 내가 인생 최대치의 힐링을 주는 음식이 바로 당신이 만든 이 떡볶이라는 진심은 으쓱이는 어깨짓으로 대신했다.


내일 야식으로는 남편에게 떡볶이를 주문해야겠다. 지난 번 하지 못했던, 진심을 담은 '고맙다'는 인사도 함께.





더쓰다: 003. 탄생


心理(마음 심, 이치 리)

마음의 이치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 간단히 말하면 그렇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 마음이 궁금했다. 고대 철학자나 사상가들은 관찰과 물음을 통해 몸과 마음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했다. 의식이란 무엇이고,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신체는 마음과 어떻게 관련되는가? 우리가 아는 것의 얼마 만큼이 생득적으로 주어지고, 경험을 통해 획득되는가? 이러한 형태의 질문들은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사유들을 일컬어 '과학 이전의 심리학'이라 한다.


현대에 이르러 심리학은 '과학(science)로서의 심리학'이라 일컫는다. 행동과 심적 과정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실시하는 학문이다. 이 과학이라는 수식어는 어디에 기인할까. 사실 심리학은 그저 철학에 속하는 어떤 한 분야일 뿐이었고, 심리라는 단어 자체도 크게 화두가 되지 않았다. 1879년, 빌헬름 분트는 세계 최초로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에 실험 심리 연구실을 만들었다. 그의 첫 번째 심리학 실험은 몹시도 간단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소리가 들리면 버튼을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이 때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한 집단의 참가자들에게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버튼을 누를 것'을, 다른 집단의 참가자들에게는 '소리의 지각을 의식적으로 자각하면 버튼을 누를 것'을 요구한 것. 결과는 어땠을까. 참가자들의 반응 시간은 조건에 따라 약 100ms 정도의 차이가 생겼다(두 번째 집단이 약 100ms 정도 반응이 느렸다). 분트는 이 시간 차이를 두고 우리의 의식이 작동하는 시간이라고 간주했다. 그게 현대의 심리학 입장에서 진정한 실험이냐 아니냐, 혹은 진짜 그게 의식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뒤로 하고 이 실험은 심리학 역사에 큰 의미를 갖는다. 과학으로서의 심리학, 실험 심리학 탄생의 순간이었다.






내가 심리학에 처음으로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나는 외줄타기를 하듯 마음이 위태로운 사춘기 소녀였다. 그 시절,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는 인간, 본능, 선과 악, 삶, 죽음 등에 대해 늘 궁금해했고 나는 그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을 참 좋아했다. 그녀와 나눈 대화가 켜켜이 쌓이는 동안 심리학을 향한 열망이 태어났다. 인간의 마음을 다룬다는 심리학에 관심이 생겼다. 우리는 같은 대학에 진학했다. 그녀는 철학과, 나는 심리학과였다. 우리가 흥미를 느끼고 다루고 싶었던 주제들은 같았지만 그 질문들에 접근하는 방법은 철저히 달랐다. 심리학과 1학년, 전공시간. 심리학의 역사에 대한 챕터에서 심리학이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녀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철학적 사유를 즐겼던 그녀 덕분에 탄생한 심리학에 대한 열망이지 않았던가. 함께 대학을 다니는 동안 우리는 참 즐거웠다. 같은 문제를 두고 전혀 다르게 접근하는 우리의 방식이 재미있었고, 그 사이에서 폭발처럼 튀는 시너지효과는 실로 말할 것이 없었다. 그녀는 '과학적 사고'를 하는 나를 신기하게 여겼고, 나는 '철학적 사유'를 끝없이 이어가는 그녀가 신기했다.


지금도 그녀와 나는 나눌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서울과 경남, 매우 먼 거리에 살고 있어 자주 볼 수 없고, 서로 엄마가 된 뒤로는 아이를 키우느라 연락을 자주 주고 받지 못하는데도 한 번 불이 붙으면 대화의 깊이가 끝이 없다. 가끔 생각해본다. 그 때, 그녀와 가까워지지 않았더라면 과연 나는 심리학을 전공했을까(그 전까지 나의 관심은 오로지 통역, 외교 같은 것이었다). 심리학과에 진학하고, 학부 2학년 때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의 실험 하나로 심리학에 뼈를 묻겠다 다짐하고, 졸업 전에 논문을 연이어 쓰면서 자연스레 대학원을 갔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지도 교수님의 믿음으로 이른 시기에 시간 강사로의 경력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모두 나의 선택과 노력이 쌓은 공든 탑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애초에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내 마음 속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시간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내 마음에 심어둔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는 씨앗이 싹을 틔운 순간, 어쩌면 약 20년 후 지금의 내가 완성될 준비가 이미 끝마쳐졌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녀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 보아야겠다. 심리학자 밤비의 탄생에 네 공이 몹시 크다고,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해 주어 고맙다고, 앞으로도 이 시간들에 햇빛을 쬐어주고 물 주며 사랑으로 잘 키워보겠다고.



더쓰다: 002. 나의 온도


애초에 몸이 차가운 아이였다. 한의학이든 양학이든 모든 전문가들이 내놓은 합의된 진단은 심장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심장이 튼튼해야 온 몸에 혈액이 잘 돌텐데, 내 심장은 그럴 여력이 없는 채로 태어난 듯 했다. 가느다란 말초 신경계 끝까지 혈액을 다 보내줄 만큼 힘이 없는 심장 말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나면 내가 가진 심장은 허약하게 태어났으니 몹시도 유약할 것 같겠지만, 가슴팍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 심장은 그 누구보다 가열차게 펌프질을 한다. 매 분, 매 초 그 누구보다 힘차게 뛴다. 그걸 처음 인지했던 날 '한 번의 펌프질로 힘 닿는 데까지 최대한 많은 양의 혈액을 내보내려고 너도 애 쓰고 있구나' 기특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쨋든 심장의 그런 가련한 노력에도 내 몸은 늘 차가웠다.


차가운 몸이 유난히 빛을 발하는 건 추운 계절이었다. 어릴 때는 겨울에 동상에도 쉽게 걸렸다. 양 손 손가락 끝부터 두 마디씩, 차례로 모두 노랗게 변해서 어른들을 놀래켰다. 김이 폴폴 나는 뜨거운 두붓물에도 담그어 보고, 지린내 나는 오줌물에도 담그었다. 저릿저릿 손 끝을 타고 오르는 전기같은 통증을 안다. 겨울이면 그 때처럼 다시 손가락 색이 변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날들이 종종 있다. 통증보다는 변색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크다.



좋은 점도 있다. 계절의 변화를 빠르게 안다. 코 끝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면 추운 계절이 시작된다. 몸이 먼저 계절의 변화를 눈치 챈다. 내 코 끝이 차가워졌다 싶으면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 남편과 아이가 차가운 바람에 킁킁, 콧물과의 사투를 시작한다. 그것이 내게는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는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어느 날 아이가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부비다가 화들짝 놀라며 조그마한 두 손으로 내 코 끝을 얼른 감쌌다. '엄마 코가 얼음이야!' 꼭 산타의 루돌프 코라도 만난 모양새로 동그래진 그 눈이 나를 향했다. '엄마는 추운 가을이나 겨울엔 항상 그래. 따뜻해지면 또 괜찮다, 신기하지?' 아이가 코를 감쌌던 손을 내리며 실없이 웃는 나를 못 믿겠다는 듯 쳐다보는데 머쓱해져서 코 끝을 손으로 비볐다. 아이 말처럼 코가 차가웠다. 26도, 따뜻한 방 안에서 말이다. 열심히 펌프질하는 심장의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손발이 차가워서, 손이 따뜻한 사람이 늘 좋았다. 언제든 손을 맞잡아도 녹아내릴 것만 같은 그런 뜨거운 사람. 아무리 더운 여름이어도 내 손의 최대 온도는 정수기 정수 정도의 온도여서 철철 끓는 뜨거운 온수같은 손을 사랑했다. 더없이 따뜻했던 그 많은 손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시린 사람이었나. 추운 겨울, 얼음장같은 내 손을 마주할 때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지는 않았을까. 따뜻해지지 않은 손으로 장난스레 닿았던 그 목덜미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성껏 양 손을 마주잡아 따뜻하게 데워놓아도 이내 돌아서면 차갑게 식어버리고 마는 내 손을 다시 바라보면서 절망을 느낀 적은 없었을까. 아니, 차가운 손의 문제였을까, 시린 마음의 문제였을까. 비뚤어진 마음이었다. 20대 초반, 나의 사랑은, 나의 온도는 그런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도 끝까지 내 곁에 남아있을 수 있겠냐는 일종의 테스트. 사랑한다는 네 고백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라는 차가운 시험대. 참 못된 사랑이었다. 당근 마켓에는 거래하는 행태에 따라 사용자의 온도를 매겨주는 시스템을 적용시켰다. 그 때의 나를 사랑의 온도로 매긴다면 아마 끝 없는 영하에 수렴하리라. 몸이 차가운 건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손이 차가운 건 마음이 따뜻해서, 라는 말은 그 때의 내게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설명이었다. 손이 차가운 것보다 마음이 더 차가운 여자였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의 시린 폭주는 끝이 없었다.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 코 끝을 매만져본다. 얼굴 끝에 매달린 내 코 끝은 여전히 얼음 같다. 책상 밑, 발을 서로 마주 비벼 본다. 발등에 닿는 내 발가락은 코 끝보다 더 차갑다. 오늘도 내 심장은 가열차게 펌프질을 하는데, 그 노력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내 몸의 끝자락은 언제나처럼 얼음 조각에 가깝다. 가슴팍을 내려다보며 쉬지 않고 크게 움켜쥐었다 펴길 반복하는 심장의 노력을 기억한다. 몸의 온도보다 더 차가웠을 그 때의 비뚤어진 내 마음의 온도를 후회한다. 30대 후반, 이제 나는 손이 차가운 건 마음이 따뜻해서, 라는 그 말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용암 같은 남편을 만나 비로소 멈출 수 있었던 시린 폭주였다. 차가운 손 끝 말고, 열심히 뛰는 심장을 내려다 볼 여유가 생겼다. 그래, 차가운 손을 가졌으니 그 끝까지 혈액 한 번 보내 보겠다고 태어나 지금껏 뜨겁게 노력하는 심장을 가졌지 않은가. 나는 그 누구보다 차가운 몸을 가졌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나의 온도는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고, 따라서 더없이 차갑지만 뜨겁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더쓰다: 001. 정리


사람이 좋고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 마음이 가장 어렵다. 그리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내 마음인 듯하다.


내 마음 속에서 엄마는 늘 정리정돈되지 않은 짐 같았다. 굉장히 무겁거나 부피가 큰 것도 아닌데, 생각지도 못한 깊은 곳까지 번잡하게 흐트러져 있어 일상 곳곳에서 눈길을 마주하게 되는, 그런 사소하지만 꽤 신경쓰이는 짐 말이다.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에는 '엄마가 만약에 내 또래였으면 우리는 절대로 친해질 수 없었을거야. 상극이야.' 같은 말도 서슴없이 했고, 아이를 가졌을 때는 '절대로 내 아이는 엄마에게 맡기지 않겠다.'고 말도 안되는 선언을 했으며, 늘 나의 새로운 다짐 목록에는 '죽어도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거야.'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 뿐일까. 몹시도 미성숙하고 마음이 위태로웠던 시절, '내가 이대로 죽어버리면 엄마가 슬퍼할까. 그러면 조금은 후회할까.'같은 밉살스러운 생각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 속에 쌓인 엄마라는 짐은 더 정신없이 흩어질 뿐, 조금도 정리되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결혼하기 전, '엄마를 엄마로 바라보지 말고, 한 여자로써 한 번 바라보는 건 어떻겠느냐'던 아빠의 말씀 덕분이었다. 오랜 시간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아빠는 엄마가 되기 이전의 엄마의 삶에 대해 본인이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내게 설명했다. 살아오는 내내 불편했던 엄마의 모습들 중 극히 일부가 조금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심리학을 전공하면서였다. 딸의 마음 말고, 심리학자의 마음으로 엄마라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들만큼은 풀 수 없이 꼬여 있는 것만 같았던 문제들이 조금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은 짐이 되었다.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본 엄마가, 엄마의 삶이, 엄마의 마음이 몹시 애처롭기도 했다.


세 번째는, 내가 엄마가 되고 난 후였다. 2016년 12월, 아이를 낳았다. 엄마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새로운 역할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고 지치던 순간, 나는 왜 그토록 밉던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 내 아이만큼은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으니 절대로 엄마에게는 맡기는 일이 없을 거라던, 엄마의 숨결이 아이에게 닿는 걸 상상하는 것조차 소스라치게 싫었던 내가, 그때, 그 순간 왜 그토록 엄마가 그리웠을까. 엄마가 된 그 순간부터 나는 매일매일 엄마를 생각했다. 정리정돈되지 않던 그 짐을, 보고 싶지 않아 구석에 쳐박아두어도 이상하게 불쑥불쑥 눈에 보이는 게 못내 힘들었던 그 짐을 내 스스로 끄집어내는 날이 많아졌다. 적극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 속에 떠오르는 엄마를, 자연스레 그려지는 지난 날의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된 엄마를, 그 당시에는 미처 나에게 해 주지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내 아이에게 넘치듯 쏟아내는 엄마를 그저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엄마가 온전히 이해되는 날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채 백일도 되지 않았던 때, 아이를 하루종일 맡겨도 아무런 근심 없고, 마음이 편한 유일한 대상이 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된 이후로, 아이가 커가는 순간마다 나는 과거의 엄마를, 그 때의 나를 만나는 날이 잦아졌다.






방학을 시작하고 아이는 태권도장에 혼자 가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 표현에 따르면 '엄마와 같이 가면 우당탕탕 걸어가는데' 혼자 가면 그렇지 않아 좋다고 했다. 태권도장은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데다 집에서 보면 가는 길이 다 보일만큼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저 혼자 나서서 여유롭게 주변을 즐기고 홀가분한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는 것이 얼마나 신명날까 싶어 웃어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늘상 출발하기 전에 묻는 것이 있었다. '엄마, 오늘도 나 가는거 봐 줄거야?' 아이도 안다. 거실 베란다에서 내려보면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다 보인다는 것을. '그래, 이제는 날씨가 많이 추워서 가는 내내 창문 열어 손은 못 흔들어 주지만, 계속 보고 있을거니까 걱정마' 처음에는 아무리 자유가 좋다 한들 혼자 움직이는 것이 불안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래서 걱정을 덜어주려 늘 엄마가 보고 있으니 괜찮다는 말도 항상 덧붙였다. 그러다가 오늘, 내가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항상 엄마가 가는 길을 봐 주면 좋겠어?' 아이가 눈을 도록, 굴리더니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응! 엄마가 보고 있으면 너무 좋아! 오늘도 보고 있어, 알았지?' 순간 말문이 막혀 가만 아이를 바라보는 동안, 아이는 저만치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며 손을 흔들었다.



바닥을 짚고 일어나 베란다 창가로 향했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1층 현관을 빠져나간 아이가 총총총 인도를 따라 걷는 게 보였다. 내가 창을 열지 않으면 저 멀리서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텐데, 저만치 걷던 아이는 몸을 돌려 내 쪽으로 크게 손을 한 번 흔들고는 쿨하게 다시 태권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눈물이 흘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가 살던 집에서도 베란다 창을 통해 엄마가 나의 동선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나의 동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숨이 막혔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내 아이의 길을 눈길로 따라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관심이자 사랑인 동시에 걱정이었는데, 그 때의 어린 나는 엄마의 그 눈길이 부자연스러운 관심이자 간섭인 동시에 불필요한 불안이라고 받아들였다. 오롯이 나의 눈길을 관심과 사랑으로 받아주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때의 내가, 그 때의 엄마가 불현듯 떠올라 내내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남들과 조금 다른 형태로 사랑을 쏟아내는 엄마가 불편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왜 내 엄마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어쩌면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베베 꼬여있었던 것은 어린 날의 내가 아니었을까.






오늘,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또 한 번 엄마라는 마음의 짐이 1만큼 정리되었다. 아니, 실은 무작정 엄마를 미워하기만 했던 내 마음의 짐이 1만큼 정리되었다. 그 동안 엄마가 내 마음 속에서 자꾸만 번잡하게 흐트러지고 내 마음 속에서 정리정돈 되지 않는 짐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그 짐에 이름표를 잘못 붙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가장 어려운 것은 내 마음이었다. 엄마에게서 답을 찾으면 안 되는 문제였다. 흩어진 짐들에 이름표를 다시 붙인다. 앞으로 조금은 정리가 쉬워질 것도 같다.


구디노가리호프 @구로디지털단지역

그믐북클럽 <셔터를 올리며> 모임에 올라온 글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고 있는데 오늘 올라온 질문 (나에게 특별한 가게) 에 대한 답으로 요즈음 꼽는 가게가 바로 이 곳이다.


특히 건어물 안주가 맛있는 곳인데 가게의 주된 안주거리를 담당하고 있는 노가리는 한 마리에 2천원, 내가 좋아하는 땅콩은 한 접시 1천원이다. 단 돈 몇 천원 안주거리에 맥주 한 두 잔으로 마음이 아주 풍성해지는 곳.

연탄불에 정성껏 구운 촉촉한 노가리는 양도 그리 적지 않다.


'구디노가리호프' 라는 그닥 센스가 느껴지지 않는 이름에 비해 소박한 실내 인테리어나 선곡 센스는 제법 괜찮다. 제일 멋진 건 사장님의 마인드인데 언제 가도 한결같이 정중하고 신사다운 매너에서 자신의 가게와 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단점은 안주가 워낙 싸고 맛도 괜찮다 보니 작은 가게 사이즈에 비해 손님이 매번 많아서 자리가 없을 때도 있고 자리가 있어도 꽤나 시끄러울 때가 많다는 것.


위치는 관악구 조원로 13.


슬램덩크 리소스

애니메이션 감독을 경험하면서 얻은 가치가 '그림 실력이 좋아졌다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인터뷰를 읽으니 더는 할 말이 없어짐.

슬램덩크 리소스(THE FIRST SLAM DUNK re:SOURCE)
슬램덩크 리소스(THE FIRST SLAM DUNK re:SOURCE)
전 국민 프로젝트 [인생책 5문5답]

☾그믐이 생각하는 '인생책'은?

-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깊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을 의미합니다.

- 독자의 자아성찰과 자기계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나 고민에 대한 대답을 찾는데 도움을 줍니다.

-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독자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그의 삶을 개선하는데 역할을 합니다.


인생책은 누구나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책의 내용이나 저자도 모두 다를 거에요. 예를 들어, 자기계발서나 철학서, 만화나 웹소설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이 모두 누군가의 인생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믐은 한 사람이 한 권씩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하는 ‘인생책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자, 이제 당신의 인생책을 알려주세요.


어떻게?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인생책에 대한 5가지 질문에 답을 기재해 주세요.


[인생책 5문5답] 참여하기


인생책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며 전 국민이 모두 인생책 한 권씩 가슴에 품는 그 날까지! 이 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참여에 어려움을 겪으셨다면 contact@gmeum.com 으로 메일 주세요.

2.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로버트 M. 피어시그)

난해한 제목이고, 사실 내용도 어렵다. 번역본 기준 꼭 800쪽인 분량도, 세계를 이해하고 진리를 발견하겠다는 전투적 주제의식도 만만치 않다. 로버트 M. 피어시그의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줄거리 요약이 큰 의미가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이 책의 메시지를 배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이자 화자가 마지막에 깨닫는 바에 따르면, 주체와 객체는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주체와 객체를 나누는 이원론에서 현대 문명의 비극들이 시작된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현실은 주체와 객체가 만나는 사건뿐이다. 주체의 자리에 ‘독자’를, 객체에 ‘책’을, 사건에 ‘독서’를 넣어도 성립하는 말일 것 같다. 즉, 나의 내용 요약은 절대 당신의 독서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니 내용 소개는 포기하고, 차라리 이 책이 내게 일으킨 사건을 이야기해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 사람이 서양 철학 전체에 맞서도 된다는 사실을, 한 사람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칸트를 비웃고 인도철학에 작별을 고하고 노자를 재해석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해도 된다. 세계와 진리에 대한 독자적인 사상을 펼쳐도 된다. 피어시그의 작업에 비하면 계몽주의를 비판하는 일 정도는 수월해 보였고, 나중에 나는 그런 철학을 설파하는 살인범이 나오는 소설을 썼다.

‘질(質)의 철학’은 동의하든 거부하든 격렬하게 응답할 수밖에 없는 거대하고 도발적인 주장이다. 솔직히 나는 크게 감명 받았다. 출간 40년이 지난 지금도 해외 인터넷에서는 재야 철학자들이 사이트를 만들어 이 책을 토론 중이다. 그 철학과는 관계없지만 문장은 내내 유려함을 넘어 아름답고, 책 출간 뒤 저자와 아들에게 벌어진 사건을 담담히 적은 후기는 무척 기묘하고 슬펐다.

장경렬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원문을 정확하게 한국어로 옮기기 위해 정비소에서 실제로 모터사이클을 분해해가며 기술용어를 배웠다고 한다(그는 “이 책을 사볼 여력이 안 되면 훔쳐서라도 읽어라”고 한다). 그렇게 번역을 마치는데 10년이 걸렸단다. 계약을 두 번이나 갱신하면서 더딘 번역 작업을 기다려준 문학과지성사도 대단하다. 번역가에게나 출판사에게나 ‘나는 10년쯤 지나도 여전히 위력적일 걸’ 하고 믿음을 주는 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448. 64 육사 (요코야마 히데오)

경찰 출입기자가 나오는 소설 중에 이보다 사실적인 작품은 보지 못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기자 초년병 시절 지방 경찰서 기자실에 가면 딱 이런 분위기였다. 한창 『재수사』를 쓰는 동안 읽은 소설인데 재미있었고, 감동 받았고, 응원과 위로도 얻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자세하게 현실적인 경찰의 모습을 그려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 집필 기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작품을 잘 써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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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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