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터 섬, 마야 문명, 아나사지 문명, 노르웨이령 그린란드 등 몰락한 사회를 찾아 원인을 분석한다. 책에 따르면 위의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세계 역시 고립된 단일 문명이며 인류는 환경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는 중이다.
세 이야기가 마침내 만난다. 전작 주인공들의 비중은 꽤 달라진다. 결말은 살짝 타협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감동 받았다. 어쩌면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화끈한 답안을 내는 소설 아닐까.
신화와 SF의 결합, 지식 과시, 마초스러운 분위기 가 젤라즈니를 연상케 한다. 그보다 덜 우아할지는 몰라도 야심과 박력은 엄청나다. 끝을 보려면 『올림포스』를 읽어야 한다.
☾그믐이 생각하는 '인생책'은?
-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깊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을 의미합니다.
- 독자의 자아성찰과 자기계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 각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나 고민에 대한 대답을 찾는데 도움을 줍니다.
-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독자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그의 삶을 개선하는데 역할을 합니다.
인생책은 누구나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 책의 내용이나 저자도 모두 다를 거에요. 예를 들어, 자기계발서나 철학서, 만화나 웹소설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이 모두 누군가의 인생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믐은 한 사람이 한 권씩 자신의 인생책을 소개하는 ‘인생책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자, 이제 당신의 인생책을 알려주세요.
어떻게?
아래 링크를 클릭하여 인생책에 대한 5가지 질문에 답을 기재해 주세요.
인생책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며 전 국민이 모두 인생책 한 권씩 가슴에 품는 그 날까지! 이 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참여에 어려움을 겪으셨다면 contact@gmeum.com 으로 메일 주세요.
악령, 김춘수 _
김춘수 시인의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이미 절판된 시집인데 중고로 상태 좋은 놈을 구했다. 도스토옙스키 작품들로 쓴 시들을 묶었다.
제주 여행 세 번째 숙소는 여러 면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숙소와 달랐다. 이 숙소는 산방산 아래 있는 펜션이었는데 바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커다란 종처럼 볼록 솟은 산방산이 방 정면으로 보였다. 두 번째 펜션보다 더 고급스러운 자재를 썼고 디자인도 세련되었다. 방에 들어설 때 HJ는 “아, 편백나무 냄새”라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복층 객실에 묵었는데 첫 숙소였던 호텔 객실과 달리 창문이 벽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통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고 위 아래로 따로 떨어져 있었다. 산방산은 아래 창문을 가득 채웠는데 그 전망도 훌륭했다. 억수처럼 비가 쏟아지던 날 우리는 오후 내내 음악을 틀어놓고 멍하니 산방산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 두 번째 숙소는 건물 앞에 근사한 올레길이 있었고, 동으로든 서로든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보행자 전용 산책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주변에 걸어 갈 수 있는 식당과 카페도 많았다. 길이 편해서 꽤 오래 걸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숙소는 그렇지 않았다. 앞에는 차도였는데, 한 쪽에 보행자들이 걸으라고 만든 공간이 있었지만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제 거리는 멀지 않은 식당이나 카페에 가는 일이 불편했다. 조금 멀리 나갔다 돌아오려면 그때마다 택시를 불러야 했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카카오택시로도 차를 부르기 어려웠다.
16년 전인지 17년 전인지에 HJ와 제주도에 처음 같이 놀러왔을 때에는 빨간색 스포츠카를 빌렸다. 11년 전에는 자동차 담당 기자를 하며 제주도에 와서 신차 시승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그때도 운전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이가 들면서 더욱 더 싫어하게 됐다. 내가 인명 사고를 낼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다. 차로 사람을 치는 것과 내가 차에 치이는 것 중 굳이 선택하라면 후자를 택하련다.
그러나 40대 남자가 대한민국에서 자가용 없이 살면 자신이 퍽 비루하고 궁상맞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 숙소에서도 그랬는데, 편의점이라도 가려고 차도 옆을 걷다가 달려오는 차를 피할 때면 조금 어이없지만 서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펜션 주인은 왜 렌트카를 이용하지 않느냐며 우리를 이상하게 여겼다.
세 번째 숙소의 주인 부부는 골든 리트리버를 두 마리 키웠다. 골든 리트리버 치고도 아주 큰 녀석들이었다. 처음에 우리를 보고 한 번 짖은 뒤로는 내내 온순하게 굴었고, 나는 세 번째 숙소에 머무는 동안 이 개들과 자주 놀았다. 놀았다고 해봐야 쓰다듬거나 안거나 곁에 붙어 커피를 마시는 정도였지만.
큰 개들과 그렇게 가까이 있어 본 건 처음이었다. 두 마리 개 중 어느 한쪽만 쓰다듬으면 다른 한 마리가 자신도 만져달라고 머리를 거칠게 들이밀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들이 나에게 완전히 경계심을 푸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주인 부부와 있을 때와 비교해 보면 긴장해 있음이 분명히 느껴졌다.
개들과 놀다 보면 갑자기 무서워지는 순간도 있었는데, 유튜브에서 보던 셀럽 골든 리트리버들과 달리 이 녀석들이 무표정한 편이어서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개들이 나와는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고, 눈동자를 통해서 어떤 생각도 읽을 수 없을 때, 이 녀석들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거나 나를 물어뜯으면 꼼짝없이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개 등에 한 팔을 올려놓고 앉아서 먼 곳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주인 부부는 이 개들을 거의 묶어두지 않아서, 두 녀석들은 마당을 자유롭게 뛰어 다니고 옆집의 밭이나 멀리 차도까지 나갔다. 밖에서 택시를 잡다가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가로지르는 이 골든 리트리버들을 마주친 적도 있었다.
손님 중에도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개가 차에 치일 수도 있는데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런 걱정보다 매이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는 대형견의 모습을 보는 데서 오는 흐뭇함이 더 컸다. 두 번째 숙소의 진돗개 잡종견과는 아주 딴판인 삶을 살고 있었다.
혹시 이 동네에서는 주민들이 개들을 그렇게 풀어 키우는 데 관대한 건가? 펜션의 골든 리트리버 외에도 목줄 없이 활보하는 개들을 두 마리나 더 봤다. 마당 계단에 궁둥이를 깔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광욕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웰시 코기 한 마리가 멀리서 내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나는 난리법석을 피우는 골든 리트리버 두 마리와 웰시 코기 한 마리 사이에 몸이 끼었다. 식당 근처에서도 황구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걸 봤다.
세 번째 숙소에서 머무는 동안 송악산 둘레길을 걷고 근처의 탄산수 온천에 갔고, 배를 타고 가파도에 가서 청보리밭 사이 길을 걸었다. 송악산은 커다란 분화구 안에 작은 분화구가 있는 구조의 오름이다. 산책로는 바깥쪽 분화구 벽 위를 한 바퀴 도는데, 바다 쪽으로는 해안 절벽이 이어지고 산 정상 쪽으로는 나무 없는 초지가 펼쳐졌다.
우리가 하늘에 구름이 많고 바람이 제법 불던 날 올라서인지 평화로우면서 쓸쓸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처음에는 3분의 1 정도만 걷고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경치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한 바퀴를 다 돌았다. HJ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걸었고, 나는 새 소설을 구상했다.
송악산 둘레길을 걸은 날 저녁에 편의점에서 산 금성맥주와 다른 맥주들을 마셨다. 금성맥주는 얼마 전 GS25에서 GS리테일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이벤트 맥주다. GS그룹의 전신인 옛 골드스타 브랜드 로고를 라벨에 그렸고,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당시 광고 문구를 ‘순간의 선택이 오늘을 좌우합니다’라고 바꿔 넣었다. 그런 복고 감성이 MZ 세대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해서 출시 이틀 만에 10만 캔이 팔렸다고 한다.
GS25와 손잡고 실제로 맥주를 만든 업체가 제주맥주이고, 제주산 황금향이 첨가되어 있다고 하니 제주도와도 그럭저럭 관련이 있다. 그냥 포장을 재미있게 했을 뿐 내용물은 특징 없는 보통 라거겠거니 하고 한 모금 마셨는데 꽤 괜찮았다. 바디가 가벼운 골든 에일이었다. 하긴, 골드스타라는 이름에는 골든 에일이 어울릴 것 같기는 하다.
순간의 선택에
몇 년이 좌우된다면
무섭지 않은가
탄산수 온천에는 거대한 실내 목욕탕과 혼탕인 노천 온천이 있었다. 노천 온천에는 너무 추워서 우리가 들어가지 못한 작은 수영장 크기의 냉탕을 제외하고도 크고 작은 탕이 다섯 개 있었다. 밤이 되자 손님들도 거의 다 빠져나가서 느긋하게 여러 탕을 돌아다니며 몸을 물에 불렸다.
한쪽 벽에는 보름달 모양의 커다란 조명 기구가 한쪽에 설치돼 있었다. 그 조명 기구는 은은한 노란 빛을 내고 있었는데 달의 바다와 분화구도 제대로 묘사되어 있었다. 뜨끈한 탕에 수영복을 입고 앉아 조명 기구 앞으로 수증기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바람에 쓸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최면에 빠지는 듯했다.
온천탕 대표가 온천수를 발견하게 된 경위가 한쪽에 비석으로 적혀 있었는데 약간 과장이 있는 듯했지만 재미있었다. 옛날 옛적 제주도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책임감 강한 사또가 약을 찾아 헤매다 산신령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산신령은 ‘붉은 박쥐 깃털’을 찾으라고 했다. 아, 신령들은 왜 매번 그렇게 애매하게 힌트를 주는 거냐.
그러던 어느 날 사또는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단산 아래에 이르렀다. 세 봉우리가 거대한 박쥐가 날개를 편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바굼지 오름이라고도 부르는 곳이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고, 산은 석양에 붉게 물들었다. 사또는 산신령이 말하던 ‘붉은 박쥐 깃털’이 바로 이 산을 가리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거기 있는 우물의 물을 길어다 사람들이 마시고 몸을 씻게 했더니 역병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온천탕 대표는 이 전설을 믿고 첨단 지질탐사 장비를 동원해 이 부근을 탐색하다가 지하 600미터에 있는 섭씨 31도의 탄산 온천수를 발견했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