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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계보학 (권혁웅 시인)

마징가 계보학

                                                                                                      권혁웅 

 

1. 마징가 Z

  기운 센 천하장사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 밤만 되면 갈지자로 걸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이었지만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았다 아내가 밤마다 우리 집에 도망을 왔는데, 새벽이 되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돌아가곤 했다 그는 무쇠로 만든 사람,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졌다 계란 한 판이 금세 없어졌다 

 

 

  2. 그레이트 마징가

  어느 날 천하장사가 흠씬 얻어맞았다 아내와 가재를 번갈아 두들겨 패는 소란을 참다못해 옆집 남자가 나섰던 것이다 오방떡을 만들어 파는 사내였는데, 오방떡 만드는 무쇠 틀로 천하장사의 얼굴에 타원형 무늬를 여럿 새겨 넣었다고 한다 오방떡 기계로 계란빵도 만든다 그가 옆집의 계란 사용법을 유감스러워 했음에 틀림이 없다 

 

 

  3. 짱가

  위대한 그 이름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가 오후에 나가서 한밤에 돌아오는 동안, 그의 아내는 한밤에 나가서 오후에 돌아오더니 마침내 집을 나와 먼 산을 넘어 날아갔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그 일이 사내의 집에서가 아니라 먼 산 너머에서 생겼다는 게 문제였다 사내는 오방떡 장사를 때려치우고, 엄청난 기운으로, 여자를 찾아다녔다 계란으로 먼 산 치기였다 

 

 

  4. 그랜다이저

  여자는 날아서 어디로 갔을까? 내가 아는 4대 명산은 낙산, 성북산, 개운산 그리고 미아리 고개, 그 너머가 외계였다 수많은 버스가 UFO 군단처럼 고개를 넘어왔다가 고개를 넘어갔다 사내에게 역마(驛馬)가 있었다면 여자에게는 도화(桃花)가 있었다 말 타고 찾아간 계곡, 복숭아꽃 시냇물에 떠내려 오니…… 그들이 거기서 세월과 계란을 잊은 채…… 초록빛 자연과 푸른 하늘과……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 

밥이나 한 번 먹자고 할 때 (문성해 시인)

밥이나 한 번 먹자고 할 때

                      - 문성해 

 

서너 달이나 되어 전화한 내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밥 앞에서 보란 듯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그래서 정말 밥이나 한번 먹자고 만났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무얼 먹을 것인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결국에는 보리밥 같은 것이나 앞에 두고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넣을 때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밥을 혀 속에 숨기고 웃어 보이는 것인데

그건 죽어도 밥에게 밀리기 싫어서기 때문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인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우연히 밥을 먹고 만난 우리는

먼산바라기로 자꾸만 헛기침하고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너와 나 사이 더운 밥 냄새가 후광처럼 드리워져야

왜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가

으깨지고 바숴진 음식 냄새가 공중에서 섞여야

그제야 후끈 달아오르는가

왜 단도직입이 없고 워밍업이 필요한가

오늘은 내가 밥공기를 박박 긁으며

네게 말한다

언제 한번 또 밥이나 먹자고 

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춘수 시인)

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危險)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 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꽃의 소묘(素描), 백자사, 1959> 

바람의 냄새 (윤의섭 시인)

바람의 냄새

                          윤의섭


이 바람의 냄새를 맡아 봐라

어느 성소를 지나오며 품었던 곰팡내와

오랜 세월 거듭 부활하며 얻은 무덤 냄새를

달콤한 장미 향에서 누군가 마지막 숨에 머금었던 아직 따뜻한 미련까지

바람에게선 사라져 간 냄새도 있다

막다른 골목을 돌아서다 미처 챙기지 못한 그녀의 머리 내음

숲을 빠져 나오다 문득 햇살에 잘려 나간 벤치의 추억

연붉은 노을 휩싸인 저녁

내 옆에 앉아 함께 먼 산을 바라보며 말없이 어깨를 안아주던 바람이

망각의 강에 침몰해 있던 깨진 냄새 한 조각을 끄집어낸다

이게 무언지 알겠냐는 듯이

바람이 안고 다니던 멸망한 도시의 축축한 정원과

꽃잎처럼 수없이 박혀 있는, 이제는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전혀 가 본 적 없는 마을에서 피어나는 밥 짓는 냄새가

그런 알지도 못하는 기억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에도

도무지 이 바람이 전해 준 한 조각 내음의 발원지를 알 수 없다

먼 혹성에 천년 전 피었던 풀꽃 향이거나

다 잊은 줄 알았던 누군가의 살내거나

길을 나서는 바람의 뒷자락에선 말라붙은 낙엽 냄새가 흩날렸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이제 봄이 오기 전까지

저 바람은 빙벽 속에 자신만의 제국을 묻은 채 다시 죽을 것이다 

사랑의 물리학 (김인욱 시인)

사랑의 물리학

                                                  김인욱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 없이 그녀에게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 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펭귄 연인 (정끝별 시인)

펭귄 연인 

정끝별

 

팔이 없어 껴안을 수 없어

다리가 짧아 도망갈 수도 없어 

 

배도 입술도 너무 불러

너에게 깃들 수도 없어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껴안고 서 있는

여름 펭귄 한 쌍 

 

밀어내며 끌어안은 채

오랜 세월 그렇게 

 

서로를 녹이며

서로가 녹아내리며 

 

-정끝별 시집 <은는이가>(문학동네, 2014)

진정한 여행(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너무 아픈 사랑 (류근 시인)

너무 아픈 사랑

                           류근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

다만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사랑에 어찌 앞뒤로 집을 지을 세간이 있겠느냐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결별의 은유로 유행가 가사나 단속 스티커처럼 붙여오면서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 시집『상처적 체질』(문학과지성사, 2010) 

밥그릇 (정호승 시인)

밥그릇

                    정호승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새벽밥 (김승희 시인)

새벽밥

                 - 김승희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 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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