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는, 중세 초기에 도처에 만연했던 빈곤과 폭력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전반적으로 사회가 안정되고 발전 단계에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종교의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면서 사회와 영향력을 주고받을 때 어떤 결과로 드러나는 지를 보여준 세기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함의와 후대의 영향을 생각하자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 ‘마그나카르타의 세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왜 마그나카르타는 4장이나 (혹은 남아있지 않은 것까지 여러 장) 만들어져서 여기저기 보관되었을까란 의문에 막연히 조선실록이 여러 곳에 보관된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고 넘겼는데, 이 책에서 좀 더 정확한 답변을 찾았습니다.
[책걸상 함께 읽기] #번외. <변화의 세기>
D-29
소피아
소피아
“ 대헌장에는 많은 판본이 있지만 그 핵심은 항상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어떤 자유인도 체포되거나 투옥되거나, 권리나 재산을 박탈당하거나, 범죄자로 선언되거나, 추방당하거나, 지위를 박탈당하지 않는다. (••) 동등한 자유인들에 의한 적법한 판결이나 이 땅의 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둘째, "권리나 정의는 팔거나, 부정되거나, 지연될 수 없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123,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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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 1297년 에드워드 1세가 이후로는 '반드시'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러한 특별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 것은 입헌 분야에서 이루어진 엄청나게 중요한 발전이었다. 이는 의회가 전쟁에 필요한 재정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국왕이 전쟁을 벌이는 것 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125,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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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
대헌장은 군주권을 강제하는 데 그친 사건이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서 왕국 운영에 관한 발언권을 갖고자 하는 열망이 커졌음을 시사하는 사건이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125,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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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
“ 아퀴나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탁발 수도회의 자원과 연결망의 도움을 받아 학식을 쌓았으며, 탁발 수도회의 지적 호기심이 이들에게 더 큰 성취를 이루도록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132,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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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
13세기는 뭔가 12세기에 태동한 것들이 보다 확장되어가는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도원
p.101에 '미제리코드'가 짧게 언급되는데, 미술사학자 이지은님의 '기억의 의자'라는 책에서 미제리코드에 대해 자세히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지은님의 의자 시리즈. 기억의 의자, 오늘의 의자 추천합니다. 두 책 모두 '의자'를 기반으로 중세~현대의 풍경과 시대상을 그려낸 책입니다. 이지은님이 쓰신 여러 미술 미시사 책들 좋아합니다 :)
기억의 의자 - 중세부터 매뉴팩처까지 장인의 시대사물들의 미술사 2권. 중세 시대부터 19세기 산업혁명 이전까지의 ‘의자’가 당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가 유럽의 성당과 궁전에서 보는 유서 깊은 의자들이 어떻게 어떤 이유로 태어나 소멸했는지를 추적한다.
오늘의 의자 - 토네트부터 임스까지 디자인의 시대MZ 세대가 주목하는 욕망의 소비재,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소비재로 떠오른 ‘디자인 아이콘 의자’ 다섯 개의 탄생 과정을 샅샅이 파헤친다. 명품 디자인 의자들이 탄생한 시대의 풍경과 의자 제작자들의 오리지널 창작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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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6일)까지 13세기 마저 읽기로 해요. 늦게 시작한 분들도 있으니 천천히 따라오시라고요. 이번 주는 14세기 화(7일) 수(8일) 15세기 목(9일) 금(10일) 16세기 토(11일) 일(12일) 월(13일) 읽는 일정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주말에 사흘을 두는 건 주 중에 시간이 없어서 못 따라오시는 분들 천천히 따라오시라고요.
YG
1,000년을 조망하면서 이렇게 책을 읽는 것도 재미있지 않나요? 저는 색다른 독서 경험이었어요.
goodboy
“ 전체적으로 보면 유럽의 도시 수는 10세기 100여개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절반 이상이 이탈리아에 있었는데, 1300년에는 그 수가 무려 5,000여 개로 늘어났다. 12세기 유럽 영주들은 영적인 이득을 위해 수도원을 설립한 반면, 13세기 영주들은 지갑을 채우기 위해 시장을 설립했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07 ch.13세기,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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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 상인들은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매번 금화나 은화를 주고받는 대신에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빚졌는지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기시가 끝나면 자리에 앉아 쉬면서 금액을 정산하고 빚을 갚았다. 바로 그때 상인들은 모든 거래를 주화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정한 회사가 특정한 일자에 특정한 금액을 지급하기로 약조하는 증서인 환어음을 발행하고, 이 환어음을 거래 수단으로 쓰면 거래당사자들이 직접 돈을 주고받지 않고도 거래를 할 수 있으며, 환어음을 받은 상인은 환전상을 통해 환어음을 돈으로 바꾸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행업의 기원이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13,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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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 1200년경은 역사 기록의 분수령이 된 시기였다. ...... 12세기부터 도시의 기록을 관리하기 시작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역사를 제외하고, 1200년 이전의 유럽 역사를 쓰려면 왕실 편지나 허가서 같은 종잇조각들, 사적으로 쓴 연대기, 수도원 공문서 기록보관실에 사본으로 남은 증서 따위에 의존해야 한다. 1190년대 이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갑자기 기록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14,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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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13세기 걸쳐 각국의 중앙 정부가 '기억 대신 기록'에 의지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16,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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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 교육 열풍을 주도한 진정한 힘은 바로 읽고 쓸 줄 아는 남성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었다. 이 시기 유럽 전역에서 인구와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영주와 지주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권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꼈다. 무언가를 적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훗날 법정에서 토지 소유권과 자산 향유권을 뒷받침해줄 정보를 보존하는 수단이었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17,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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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 문해력은 13세기 교육 혁명의 한 측면에 불과했다. 또 다른 측면은 지난 세기의 지적 발전을 토대로 대학들이 설립된 것이었다. 가령 볼로냐 대학교의 기원은 이르네리우스의 법학 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18,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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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교육은 표준화되어 유럽의 모든 궁정에 도입되었으며, 수많은 교사들이 다음 세대의 서기와 학자들을 교육할 권한을 얻었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19,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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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한마디로 기록을 남기는 주된 이유는 주의와 불신, 확실성에 대한 욕구였다. 사람들이 기록을 남긴 이유는 서로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자 함이었다.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20,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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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 1190년, 존엄왕 필리프는 전통적인 작위였던 '프랑크인의 왕' 대신 자신을 '프랑스 왕'이라 칭했다. 같은 시기, 이와 유사하게 리처드 1세 역시 자신을 '잉글랜드인의 왕' 대신 '잉글랜드 왕'이라 칭했다. 이 미묘한 변화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왕이 외국인을 포함한 왕국의 모든 사람을 다스린다는 점과 왕이 자신의 추종자들만이 아니라 영토 안의 모든 사람을 위해 법을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또한 왕에게는 침입자로부터 왕국의 국경을 지킬 의무가 있으며, 왕이 왕국 안에 있는 교회와 외국인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21,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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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 대헌장은 군주권을 강제하는 데 그친 사건이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서 왕국 운영에 관한 발언권을 갖고자 하는 열망이 커졌음을 시사하는 사건이다. ...... 왕들은 대개 군사 행동을 벌이여 할 때 특별세를 부과하려 했는데, 이때 이들 '평민'들의 대표가 왕과 직접 대면해 특별세의 조건을 협상했다. ...... 1297년 에드워드 1세가 이후로는 '반드시'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만 이러한 특별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 것은 입헌 분야에서 이루어진 엄청나게 중요한 발전이었다. 이는 의회가 전쟁에 필요한 재정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사실상 국왕이 전쟁을 벌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25,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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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oy
“ 탁발 수도사의 등장이 왜 중요한 것일까? 탁발 수도회는 종교와 세속으로 엄격학 나누던 사회를 뛰어넘어 종교적 덕목과 세속적 유연성을 모두 갖춘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수도사와 똑같이 교육받았기에 읽고 쓸 줄 알았고, 국제어인 라틴어에 정통했다. ...... 이들은 도시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았고, 십일조나 봉급을 받지 않고도 기도를 해주고 성사를 주었다. ...... 탁발 수도사들은 세속적인 통치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교관이 되었다. ...... 또한 이들은 훌륭한 이단 심문관이기도 했다. 교황과 주교들은 점차 도미니코회에 의존하여 이단자들을 심문했으며, 심지어 1252년 이후에는 이단자를 고문하기까지 했다. 탁발 수도사들은 교회가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마지막으로 우리는 탁발 수도사 개개인이 지적 영향을 주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탁발 수도회는 사적인 부는 도외시했으나 학문을 소중히 여겼으므로, 그 시대의 중요한 논쟁에 지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비세속적인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
『변화의 세기 - 서양 천 년을 바꾼 결정적 사건들』 p. 130-131, 이언 모티머 지음, 김부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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