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은 헤어밴드를 쓰고 문장들을 쏟아놓은 뒤 헤어밴드를 벗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 시시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영혼이 침식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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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팔 개월 동안 꾸역꾸역 썼다가 지웠다가 하며 원고를 단행본 한 권 분량만큼 채웠다. 전에는 '글이 안 써진다'며 자기혐오에 빠졌는데, 이제는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글'이라는 생각에 자기혐오에 휩싸였다. 설원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똑바로 걸어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실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조금씩 틀어지게 걷는 바람에 커다랗게 원을 그리다가 끝내는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사이보그의 글쓰기> / 53~54%, 장강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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