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함께 읽어요

D-29
한동안은 헤어밴드를 쓰고 문장들을 쏟아놓은 뒤 헤어밴드를 벗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 시시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영혼이 침식되는 것 같았다. (중략) 그렇게 팔 개월 동안 꾸역꾸역 썼다가 지웠다가 하며 원고를 단행본 한 권 분량만큼 채웠다. 전에는 '글이 안 써진다'며 자기혐오에 빠졌는데, 이제는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글'이라는 생각에 자기혐오에 휩싸였다. 설원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똑바로 걸어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실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조금씩 틀어지게 걷는 바람에 커다랗게 원을 그리다가 끝내는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사이보그의 글쓰기> / 53~54%, 장강명 지음
<놀이터는 24시>에 수록된 이번 단편을 처음 접했을 당시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고, 제 생각을 대변하는 듯한 문장들이 정말 반가웠습니다. 하나하나 필사해서 손글씨로 꾹꾹 눌러 담고 싶을 만큼이요. 이번에 재독하면서도 그랬어요. '살아갈 것인가, 살아질 것인가.' 저에게도 종종 슬럼프(번아웃)가 찾아오는데, 그걸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항상성을 위해서라도 억지로 유지하는 것이 맞는가, 잠시 놓았다가 다시 일어나는 게 맞는가(근데 영원히 놔버리면 어쩌죠). 저는 아직 미혼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연애도 그렇더라고요. 어느 순간 상대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는거죠. 그 관계를 놓기 싫어서 의무감이 되어버린 여러 가지 행동들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순간 그 관계 자체에 회의감이 생기면서 다 놔버리고 싶더라고요.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관계의 지속성에 집착하는 것인지를 계속 곱씹으면서요. 아니 근데, 한참을 쓰다 보니 이건 뭐 온통 제 상념투성이네요. 죄송합니다(머쓱).
'살아갈 것인가, 살아질 것인가' 와 닿는 문장입니다 살아가려고 다짐하며 나아가다가도 그냥 살아지고 싶다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많이 느껴지더라구요(힘들어요)~^^ 전 이 공간이 장작가님의 생각하게 하는 글들과 연해님의 상념들이 있어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서 좋네요~ 저도 그런 고민들을 했었는데 신기하네요~ 순간순간 내 위치나 방향성에 의문을 품게 되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인지는 설혹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한번씩 인지하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오, 저도요. 가끔은 멱살 잡혀 끌려가는 듯한 느낌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거북별85 님 말씀처럼 제 위치나 방향성에 의문을 품으면서 다시 길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길잡이별이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는 그냥 제 스스로가 그 별이 되야겠다는 다소 오만한(?) 결심을 하면서요. 저의 상념과 같은 글에도 이토록 따뜻한 답글이라니, 저야말로 @거북별85 님의 댓글 덕분에 생각도 넓어지고, 책의 내용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해요:)
근데 아마도 결단의 순간은, '남들은 다 쓰고 있는데 나는 과연 안쓸수 있을까' 인것 같아요. 다들 효과 보고 있는것 같은데 나는 과연 안쓸수 있을지-.-a 저는 이런 기술도 상용화되면 정도에따라 가격도 다르겠군 싶었어요. 조금이라도 부작용 없는 버전과 일반 버전등 역시 경제력따라 접근정도도 다르겠다 싶은. 어릴 때 그 비싼 엠씨스퀘어 쓰는 언니오빠들도 꽤나 있어보였거든요ㅎ
<사이보그의 글쓰기> 도 정말 재미있죠?^^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저는 엠씨스퀘어 나오는 부분에서 일단 한번 뿜었습니다.ㅎㅎ90년대 초반에 진짜 전국적인 광풍으로 느낄만큼 흥행했거든요. 저는 강원도 소도시에서 살았는데 거기에서까지 많이들 사서 썼던 기억이에요. 그당시 물가로 30만원도 넘었는데;; 언제였더라 궁금해서 검색하다 발견했는데 맙소사.. 아직도 팔고 있어요!!
<사이보그의 글쓰기>너무 재미있죠?? 정말 저도 순간순간 뿜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엠씨스퀘어가 있다니 신기하네요(마케팅을 어떻게 하시는지 매출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 단편읽을 때는 정말 그 엠씨스퀘어 쓰고 장작가님께서 쓰신게 아닐까 싶을정도 였습니다^^(너무 현실감있었어요) 더구나 연해님 말대로 그 때 발표한 단편이 무엇일까도 궁금해지구요~ 그렇게 하나씩 힌트를 따라 추리해 나가다 보면 장작가님 서랍 한켠에서 왠지 꽁꽁 숨겨진 헤어밴드 찾을 수 있을거 같은 기분이(왠지 유명한 작가님의 글 속에서 힌트를 찾아가며 보물을 찾는 느낌입니다~ 뭐 헤어밴드는 보물까지는 아닐 수 있지만요)~~^^;; 마지막에 그 헤어밴드가 점점 효과가 떨어지고 거기에 매달리는 작가님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음~타자에 기대는건 역쉬!! 아닌거 같아요~ 저에게도 그런 헤어밴드가 필요하다면 글쓰기는 크게 필요없을거 같구 자신감과 체력과 업무대응에 필요할 듯 합니다~^^
맙소사, 검색해 보니 진짜 아직도 있네요! 신기해라. 근데 여기 이제 방향성을 바꿨나 봐요. 수면용으로(이 댓글 쓰면서도 웃음이 자꾸 삐져나와요). 때아닌 엠씨스퀘어의 등장에 빵 터졌던 게 저뿐만은 아니었군요. 저는 그게 한참 유행할 당시에 서울에 살고 있기는 했는데(많이 어릴 때기는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열의와 달리 저와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약간 뭐랄까, 멀미가 난다고 해야 할까요? 말하면서도 또 웃기네요. 아니 근데, 갑자기 추억 소환되는 느낌이라 너무 좋은데요. 지난번 학창 시절 수다떠는 느낌도 그렇고, 뭔가 그때의 몽글몽글한 감각들이 떠올라 설레기도 합니다(저 너무 주책인가요).
안녕하세용🙂잘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남은 기간 동안 이 공간에서 다양한 이야기 마음껏 나눠보아요:)
아, 오늘도 모두 감사합니다. 오늘은 「나무가 됩시다」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이 작품도 저의 개인적인 고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쓸 때 한창 채식주의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아주 느슨하게, 설렁설렁 준채식을 실천하는 중입니다. 사실 20대 중반에 준채식을 잠깐 시도했던 적이 있는데 얼마 가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동아일보 입사할 때 합숙면접 전형 중에 “저는 고기를 안 먹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채용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거 같습니다. 면접관들이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던지. 나중에 입사하고 보니 사진기자 동기 한 명이 정말 엄격한 채식주의자더라고요. 20대에 준채식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의지력 부족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 논리적인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준채식을 시도했던 진짜 이유는 그저 동물들이 불쌍해서였는데, 그런 ‘불쌍함’이라는 감정이 윤리의 기준이 되어도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 감정은 북극곰이나 판다 앞에서는 잘 생기지만, 킹코브라 같은 동물 앞에서는 좀처럼 발휘되지 않지요. 20대 중후반에는 그래서 ‘고기보다 곡물을 먹는 게 빈곤 문제에 좋다’는 식의 논리에 끌렸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도 딱히 맞는 거 같지는 않더라고요.
특히 동물에 대한 연민을 어디서 멈춰야 할지, 이른바 ‘동물권’을 어느 선부터 인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고민이었습니다. ‘돼지가 불쌍하면 닭은 안 불쌍하냐? 닭이 불쌍하면 생선은 안 불쌍하냐? 모기랑 바퀴벌레는 안 불쌍하냐? 세균은 안 불쌍하냐?’ 하는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고기를 먹는 건 안 괜찮고 당신의 고양이가 고기를 먹는 건 괜찮은가?’ 같은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질문을 밀어붙여서 쓴 게 「나무가 됩시다」입니다. 지금은 아주 희미한 답안의 단초 같은 것이 있는데 나중에 이 고민 과정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게 될 거 같습니다. p. s. 제가 ‘이건 내 얘기’라고 의식하면서 쓰는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상하게 SF 소설집인 이번 책에 제 얘기라 할 만한 게 두 편이나 있네요.
작가님을 아는 한국 독자들이 그 두편을 읽을때와 해외 독자들이 읽을때, 전혀 다른 작품처럼 읽히겠다 싶어서 새롭게도 느껴지네요. 작가의 모습이 아주 많이 반영된 글인걸 모른채 읽으면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요 ^^ 저는 일부 문장들에선 작가님의 특정한 말투까지 떠올라서 혼자 풉하고 웃었습니다 ㅎㅎ
작가님의 첫 인사가 마치 인자한 선생님 같아 웃음이 났습니다. "자 여러분, 지난번에는 우리 여기까지 배웠죠? 오늘은 이 부분을 공부할 겁니다."같은? 저는 <나무가 됩시다>를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이 "내가 어떤 도덕적 명령을 지키고자 할 때 그 대상이 고통을 느끼느냐의 여부가 과연 중요한가?"였어요. 뒤이어 나오는 "살생하지 말라"도 그렇고요. 그래서 불쌍함이라는 감정이 윤리의 기준이 되어도 좋은지 잘 모르겠다는 작가님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살생하지 말라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명제처럼 다뤄왔는데, 유독 여름에만 만나는 징그러운 친구들이 있잖아요. 다리가 다섯 개 이상인 애들... 그 애들을 죽이는 것에서는 다들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농담처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게 참 그래요. 물론 저 또한 모기를 많이 죽여왔더랬지만,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내 피를 먹었으니 죽어마땅한? 오래전 템플스테이에 갔을 때도 벽면에 '살생하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는데, 그 덕분에 산 속에 있는 온갖 벌레들과 강제로 밤을 보내는 일도 겪었더랬죠. 그래서 이런 식의 꼬리물기를 이어가다 보면 어디까지가 적당하고, 타당한 것인지 모호하더라고요. 그리고 저 또한 이 부분에 대한 제 입장을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아직도 어렵습니다. '동물권'을 어느 선부터 인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작가님 말씀에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지고요. 각자가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를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노력은 저마다의 지향점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너무 무책임한 말 같지만 적어도 위선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그리고 솔직히 저는 환경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제 입맛에 채식이 좋아 채식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채식주의자라고 말하면 오히려 불편하더라고요. 자칫 잘못하면 괜한 도덕적 우월감처럼 비춰질까봐. 저는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한 것뿐인데...(이 드라마 혹시 아시나요? 모르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마도 그동안 접해온 동물권이나 채식주의에 대한 논의들이 대부분 불쌍함이나 동물에 대한 연민에 초점을 많이 두어서 그런것도 같아요. 물론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을 시작하는 포인트로는 좋지만, 어느 순간 연해님이나 작가님이 하신다는 질문을 스스로 만나게 되더라고요. '오케이. 소, 돼지, 닭은 알겠는데 그 다음엔 그럼 대체 어디까지??' 라는 질문이요.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어떤 생명이든 존재자체가 환경에 도움이 안되는거로 되어버리는;;; <나무가 됩시다> 읽다가 동물권 개념이 생각나서 남종영 작가님의 <동물권력> 읽고 있는데, 이것도 아주 새롭습니다. ㅎㅎ 물론 책한권으로 인생의 질문이 단번에 나오진 않겠지만, 관심 없던 다른 분야에 요렇게 눈 돌려보는것만도 어딘가 싶어요.
크... 저는 이 공간에서 이어달리기 하듯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들이 왜 이렇게 신나는지 모르겠어요. 평소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이 퍼즐 맞춰지듯 다양한 관점으로 재해석되는 느낌입니다. 동물권이나 채식에 대해 "도대체 어디까지?"라는 질문을 하다 보니 이 주제와는 많이 달라 다소 뜬금없지만, 조금 민감한 주제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제 경우에는 종교도 그랬던 것 같거든요. 결론적으로 지금은 무신론자가 되었지만, 종교가 있었던(신실했던) 시절에 저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 제 머릿속에 늘 따라다녔어요. 교파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 다르고,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그 공동체가 집중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보니 진정한 믿음이란 대체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 계속 혼란스러웠거든요. 그래서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이라는 표제작의 결론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긴 한데, 결국은 자신이 옳다고(혹은 괜찮다고) 믿는 방향대로 살아가는 게 좋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리고 @Jonas 님이 말씀해주신 <동물권력>이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책을 찾아보니 목차도 굉장히 흥미롭고, "‘동물이 인간 지배의 결과물’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동물의 삶을 지구사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결과물이다."라는 책 소개도 인상 깊네요. 이 모임 책 다 읽고 차분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제가 여름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첫 번째 이유는 더워서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 다리 많은 친구들 때문이에요. ㅎㅎㅎ (다리 많은 친구들에게 도저히 정을 붙일 수가 없어서 오히려 이번에 나온 신간 『모기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나중에 읽어보려고요.
모기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모기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은 환경 선진국 독일의 여성 생물학자와 경제학자가 공동 집필한 생물 다양성 보고서이다. 생물학과 경제학의 만남이라고 할 때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두 저자는 바로 그러한 인식의 허점을 파고든다. 생물이 더 이상 멸종되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 것은, ‘생명의 평등함’이라는 근본적인 도덕률 외에도 우리가 그토록 추구해 마지않는 경제적 필요 때문임을 증명해 보인다. 모기를 비롯해 해충이나 하찮은 존재로
깊게 고민할수록 답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만 확인하게 되는 거 같아요. 답이 있기는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저는 ‘각자 나름대로 윤리적 지향을 갖고 살자’는 말에도 아주 흔쾌히 동의하기는 어렵거든요. 분명히 ‘옳은 일’에도 위계가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옳은 일의 위계 목록은 파시즘으로 이어질 것 같아요.
옳은 일 사이에는 위계가 있는가? 사람과 동물의 생명이 같은가? 아니라면 북한인권 문제가 동물권 이슈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가? 개와 모기의 생명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나? 아니라면 아닌 이유는 개가 지능이 더 높기 때문인가? 그러면 지능이 높은 인간은 지능이 낮은 사람보다 더 존엄한가? 전자모기향을 피워 놓고 이런 질문들을 잠시 던져 봅니다. 그런데 저는 다리 많은 친구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를 보면서도 생래적 혐오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p. s. 아... 홍시... 무슨 까마득한 옛날 영화나 드라마 대사인가 보지요...? 저언혀 모르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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