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혼자 읽기

D-29
그러나 나는 이와 동시에 동물이 사람보다 이런 능력들을 적게(또는 낮은 수준)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므로 동물이 사람보다 덜 헤아려진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개체들은 각각 도덕적 지위에서 차이가 있으며, 사람은 동물보다 더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덧붙여 동물들끼리도 그들이 갖고 있는 도덕적 지위와 관련한 능력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도덕적 지위가 더 높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철학에서는 때때로 추상적 주장이 일견 설득력이 있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함의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주장과 그것이 담고 있는 개념을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설득력 있어 보였던 전제를 포기함으로써 그 주장에 저항(또는 회피)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더욱이 이성적으로는 이해되는데 감성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감성적으로는 납득이 되는데 이성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계층주의에 대한 논의에서는 이 같은 딜레마에 봉착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우리가 꽤 오랫동안 살펴본 것처럼 이런 개념들은 그 자체로서도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계층적 접근방식을 통하면 행여 우리가 짊어졌을지도 모를 흥미롭지 않고 불합리한 수많은 잘못된 결론을 모두 피할 수 있다. 계층적 관점은 다분히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접근방식이므로 우리의 이성에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나는 사실상 동물윤리를 둘러싼 문제에서 우리가 채택할 수 있는 입장 중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제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온전한 학문으로서 정립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현재로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견해들의 장단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우선 매력적이라고 판단되는 입장을 시험적으로 받아들인 다음, 다른 관점들과 비교를 통해 최선의 견해를 수용한 뒤, 그것이 문제를 일으킬 만한 여지가 있는지 계속해서 따져봐야 한다. 모든 이론은 이런 과정 속에서 발전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앞에서 나는 계층적 접근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합리적 우려 가운데 세 가지를 주목한 바 있다. 이 중에는 약속 어음을 발행한 것도 있다. 다시 한번 논점을 정리해보기로 하자. 첫 번째 우려는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에 관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인간 성인이 동물보다 더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계층주의 관점을 수용하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우리보다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갖는 우월한 존재의 실재 가능성에 대해 사고를 개방해야 한다. 합리적 우려라고 소개했듯이 우월한 존재는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앞에서 자세히 논증한 것처럼 이 같은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계층주의를 견지하는 데 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계층주의가 사물을 바라보는 겸손한 태도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받아들이지 못할 까닭은 논리적으로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두 번째 우려는 ‘가장자리 상황’에 처해 있는 존재를 계층적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심각한 정신 장애를 가진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계층적 관점에서 이들의 결여된 정신적 능력을 감안하면 도덕적 지위가 일반적인 사람보다 낮다는 결론이 불가피해 보인다. 나는 ‘양식적 인격’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들의 정신적 동류인 동물보다는 높은 도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이 같은 우려의 날카로움을 어느 정도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결국 이들이 우리보다 덜 헤아려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다른 대안적 관점인 ‘단일주의’ 등이 오히려 계층주의보다 설득력 떨어지는 견해임을 논증함으로써, 그래도 계층주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임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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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우려는, 이것이 바로 내가 여러분에게 약속 어음을 발행했고 아마도 여러분이 무척 기다리고 있을 논증인데, 다름 아닌 ‘정상적 편차’ 문제다. 우리를 한참 능가하는 능력을 가진 ‘우월한 존재’, 우리보다 한참 낮은 능력을 가진 ‘가장자리 상황의 인간’처럼 일반적인 사람과 도덕적 지위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는 존재를 인정하는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와 같은 보통의 인간 성인들 사이에서도 도덕적 지위에 차이가 있다는 개념으로, 결국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높거나 낮은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는 결론을 인정해야 하는 매우 골치 아픈 문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셸리 케이건
‘정상적 편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논리적·이성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아직 확실한 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문제에서 논리적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계층주의를 수용케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동물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관련 능력들의 무시하지 못할 수준의 격차, 이를테면 파리가 가진 최소한의 행동 능력과 지각 능력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사람의 월등한 정신적 능력을 가진 보통의 인간 성인들 사이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해봐야 무척 사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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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정상적 편차’다. 이 차이는 그저 신경 쓰지 않음으로써 넘어갈 수도 있다. 사람 개개인마다 갖고 있는 능력들의 작은 차이가 도덕적 지위에서의 미세한 차이를 만들지만, 우리의 통상적인 도덕적 사고에서 이런 차이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상적 편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방금 언급했듯이 계층적 관점을 정립하기 위해 불식시켜야 할 가장 큰 우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셸리 케이건
물론 어떤 이들은 이 정도 설명으로도 충분히 이해하고 별로 괘념치 않게 넘겨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나도 그렇다. 나는 정상적 편차를 인정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설령 미미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도덕적 지위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 상당히 불편해한다는(최소한으로 표현했을 때)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은 정상적 편차 문제에 대한 보다 ‘탄탄한(robust)’ 답변을 기대한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셸리 케이건
우리와 같은 일반적인 인간 성인들에게 동일한 도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 답변을 하려면, 도덕적 입장의 기반이 되는 능력의 차이가 도덕적 지위에서의 차이를 유발한다는 가정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통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미세한 정신적 능력의 차이가 실질적으로는 도덕적 지위에 어떤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돼야 한다. 도덕적 지위가 관련 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함께 꾸준히 부드럽게 증가하는 게 아니라, 이보다 덜 부드럽고 느리게 올라가든지 아니면 보통의 인간 성인들 사이의 정상적 편차 범위 내에서는 ‘평평하고 일정하게’ 유지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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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적 관점을 토대로 내가 생각한 또 다른 대안적 견해는 관련 능력들이 증가할수록 도덕적 지위가 따라서 상승하되(동물 왕국의 진화계통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인간 성인 사이의 정상적 편차 범위에 도달하면 그 지점에서 평평하게 유지된다. 이른바 ‘인간 예외주의(human exceptionalism)’로, 다른 개체들은 모두 도덕적 지위에서 차이가 있지만 오직 인간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영한 관점이다. 그리고 아마도 사람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우월한 존재의 경우) 다시 능력이 증가해 도덕적 지위가 상승할 것이다. 다만 이 견해에도 문제가 있는데, 일반적인 인간 성인의 보유한 능력의 범위가 도덕적 지위에서의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다른 수준에서는 그렇지 않을 정도로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욱 설득력이 있는 입장은 관련 능력의 정상적 편차가 도덕적 지위의 차이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통상적인 인간 능력의 범위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관점일 것이다. 아마도 도덕적 지위는 능력의 특정 범위 안에서 평평하게 유지돼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관련 능력의 모든 수준에 걸쳐 똑같은 도덕적 지위를 이끌어낸다는 단일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개체마다 일정한 도덕적 지위를 생성하는 범위가 여러 개 있고 각각의 구간마다 각기 다르지만 일정한 지위를 이끌어낸다고 가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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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또 다른 논점이 있다. 실천적 현실주의에 따라 제한된 몇 개의 범주만 인식하는 도덕 규칙이 설정됐으며, 각 범주 내 개체들의 사소한 정신적 능력 차이가 도덕적 지위에서 차이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채 다음 질문을 던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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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계단 함수의 형태를 취하는 바로 이것이 도덕적 지위의 진실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아니면 근본적 진실에 완전히 부합하는 규칙 체계를 우리가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정당화하려는 ‘편리한 허구(convenient fiction)’에 불과할까? 예를 들어 독수리 두 마리가 있을 때 각각 정신적 능력에서 차이가 있는데도 이들이 같은 도덕적 지위를 가진다는 게 도덕적 진실일까? 아니면 그저 실용적 목적에 따라 대략적인 ‘근사치(approximation)’를 통틀어 일반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도록 우리 모두에게 일종의 합의를 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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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계단 함수에 대한 접근방식이 실제로 편리한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유일하게 설득력 있는 답변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쨌든 이 함수는 강요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같은 계단에서는 능력의 차이가 아무런 도덕적 지위의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다가, 어떤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차이가 지위에서의 큰 격차를 초래해 각각 다른 계단에 배치되게 할 수 있을까? 왜 정신적 능력의 차이가 어떤 때는 도덕적 지위의 차이를 만들고 어떤 때는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쪽이 옳을까? 제한적 계층주의는 진실의 구성 요소일까 아니면 근사치일까? 그것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며 여기에서 우리가 확정할 수 있는 질문도 아니다. 어쩌면 끝까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질문은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도덕 규칙들의 의미에 관한 도덕적 숙고와 더불어 규범윤리학에서 계속되고 있는 거대한 토론의 일부다. 도덕 규칙을 실제적 진실로 보는 관점도 있고 개념적 근사치로 여기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비록 양측이 도덕 규칙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고 해도, 우리의 능력과 한계 속에 공들여 설정된 도덕 규칙들은 양측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우리의 목적에 걸맞은 충분한 합의다. 어느 쪽이든 내가 강조하는 핵심 논점은 이것이다. 우리는 동물과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에서 제한적 계층주의 접근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제11장_제한적 계층주의라는 대안, 셸리 케이건
마침내 우리가 도달한 최종 관점은 사실상 ‘상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내용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을 도덕적으로 헤아려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헤아림의 정도는 사람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여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물을 헤아려야 하는 것은 맞지만 모든 동물을 똑같이 헤아리지는 못한다는 관점도 상식과 다름없는데,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헤아림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나오며, 셸리 케이건
또한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록 지금에서야 이론적 토대가 마련됐지만 이미 ‘제한적 계층주의’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에 이와 같은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었거나, 이제부터라도 이를 받아들이고자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한적 계층주의에 따르면 사람을 포함한 동물계 안에는 기껏해야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수의 도덕적 지위 범주만 있다. 우선 사람이 있고, 그 아래 다른 계단에는 정신적 능력이 높은 침팬지·돌고래 등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보다 능력이 낮은 개·고양이 등이, 또 그 아래에는 토끼·다람쥐, 마지막 계단에는 어류·곤충류 등이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분류로 인해 내가 논의를 시작하면서 우려를 표했던 부분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내가 행여 현재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고 있는 태도나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동물보다 사람이 우선이고 더 많은 헤아림을 받는 게 사실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런 해석이 내 실제 견해에 대한 총체적 몰이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실히 밝히고 싶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나오며, 셸리 케이건
동물은 비록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지금껏 가져온 생각보다는 훨씬 더 많은 헤아림을 받아야 한다. 여러분이 나와 함께 꽤 긴 논의를 진행해오는 동안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들을 점검해볼 수 있었다면 나는 만족한다. 내가 제안한 여러 견해에 여러분이 동의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온전한 ‘사람’인 여러분이 사람의 삶을 살면서 경험했거나 경험하게 될 다양한 윤리적 문제들을 동물의 삶에 투영하는 것이 유의미한 작업임을 깨닫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든 것을 가졌다. 이제 동물의 몫을 생각할 때다. 무엇을 줄 수 있느냐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동물을 학대해온 인류의 기나긴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그 같은 행위가 불명예스럽고 치욕스럽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인식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 날은 오지 않았다. 우리가 오게 하지 않으면 오지 않을 날이다.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 나오며, 셸리 케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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