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쉬운 해결책> 혼자 읽기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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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쉬운 해결책>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심리학 상식의 저변에 묻힌 문제를 파헤치는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자존감, 그릿, 넛지, 마인드셋 등의 개념을 담은 책들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자기계발서는 보다 과학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확실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과학은 쉽게 변하지 않고, 합리적이니까 믿고 따를 수 있다고 그 책들은 주장하고, 우리는 언론이, 같은 학계의 관계자가, 전문가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것을 과학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심리학 지식들이 사실은 허술한 연구를 기반에 두고 있었다면? 그것이 우리가 아는 만큼 그렇게 '과학적' 이지 않다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회적 자원과 관심을 부당하게 활용하고 있었다면? 저자는 이러한 의심을 받는 심리학의 아이디어들을 '설익은' 행동과학이라고 말하며, 왜 이러한 아이디어가 대중에게 이토록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대중이 이러한 아이디어를 분별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책을 통해서 설명한다. 우리가 설익은 행동과학을 분별해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개인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디어들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정책에 반영된다. '깨진 유리창'이 있는 지역에 범죄율이 더 많이 발생한다면, 정치인들은 '깨진 유리창'을 수선하기 위해 사회적 자원을 투입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세금이 사용된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사실이 아니고, 깨진 유리창과 범죄율 사이에 큰 상관이 없다면 세금이 잘못된 방향에 투입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동안 정말로 관심을 요구하는 사안들은 등한시되고 만다.
건전한 지식만이 우리가 원하는 개선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면서 성공적인 환경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마련할 수 없고 (...) 잘해봐야 반쪽자리 진실밖에 되지 않는 인간 행동과 교정법에 관한 주장들에 의지한 채 인종주의와 불평등, 교육 격차를 비롯한 오늘날의 수많은 긴박한 사회적 현안들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손쉬운 해결책 -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p.13, 제시 싱걸 지음, 신해경 옮김
행동과학이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을 일컫는 말이다. 책에서 지적하는 '설익은 행동과학'은 이러한 행동과학 분야의 이론 중에서 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통되고 있는 지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예 연구 결과가 왜곡되고 과장되어 있을 수도 있고, 초기 연구에서는 유의미한 것처럼 보였으나 동일한 조건 하에서 실험을 반복했을 때(이를 재현 연구라고 한다. "영화의 장면을 재현한다"라고 할 때의 재현)에는 유의미하지 않은 결과를 나타내는 연구들이 해당된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아이디어들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는 수십년째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고, 제도를 유지하게 해준 정당성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기업과 정부는 자신들의 리스크를 개인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소용돌이같은 구조보다는 개개인의 행동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점차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이유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더 잘 어울리고, 사회 규범을 준수하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한다. 자존감을 기르는 것만으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존감을 기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세계관은 사람들의 행동이 대체로 미세한 힘들에 의해 추동되고 또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천착한다. (...) 그들의 주장에는 세 가지 주요 특징이 있다. 하나, 크고 위압적인 사회구조와 체계 들은 보이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거나, 아니면 상당히 쉽게 개선될 수 있다. 둘, 프라임과 선입견은 사회적 결과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셋, 현명한 행동과학자들이 내놓는 개입 프로그램을 통해 프라임과 선입견은 교정될 수 있으며, 이로써 엄청나게 유익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손쉬운 해결책 -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p.15, 제시 싱걸 지음, 신해경 옮김
1장의 제목은 <자존감 장사>.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하지만 아무도 ‘자존감이란 무엇무엇이다’라고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작가는 미국에서 자존감 개념이 널리 확산된 과정을 통해서 이 개념이 지닌 문제점을 밝히고 있다. * 자존감은 어떻게 확산되었는가? 자존감 개념의 기원은 너새니얼 브랜든이라는 심리학자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인물은, 그의 책에 영향을 크게 받은, 존 바스콘셀러스라는 미국의 주지사이다. 그가 처음 주장한 자존감 교육은 여야 모두에게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올바른 마음가짐이 있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오래된 미국식 믿음에 부합하는 개념이기 때문일까, 곧 이 개념은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바스콘셀러스는 곧 자존감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리고 자존감의 운명을 결정지은 연구 결과 발표회에서 ‘공식적으로는’ 자존감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결론이 지어졌으나, 연구의 책임자였던 스멜서는 이것이 과대광고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못했고 자존감 교육은 공교육 과정에 정착했다. 그렇다면 왜 스멜서는 소극적이었을까? 그것은 바스콘셀러스가 캘리포니아 대학의 지원금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바스콘셀러스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자존감이 교육과정에 정착된 후 변화들 미국의 공교육 과정에서 자존감을 기른다는 목적으로 학습 파트너, 방과 후 자습실 등의 커리큘럼이 개설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학습 지원책일 뿐이었다. 이처럼 자존감과 관련 없는 활동들이 자존감 교육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포되었고, 자존감과 관련된 사업 기회가 확산되었다. * 자존감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시작 비판적 연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바우마이스터이다. 처음에 그는 자존감 개념을 지지했으나, 점차 연구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존감이 높으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낮다는 통념과 달리, 그의 조사는 범죄자들이 자존감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미국 사회의 문제가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는 인식과 달리 미국인의 평균 자존감은 높은 편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바우마이스터 팀은 그동안의 자존감 연구를 살펴서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자존감이 학습을 돕는다는 이론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존감이 높은 학생들이 ‘실제’ 학업 성적도 높다는 데이터를 찾으면 된다. 그러나 ‘실제’ 학업 성적을 찾지 못한 자존감 연구 팀은 학생들에게 학업 성적을 물어보았다. 그러니 그 연구는 자존감과 학업 성적의 관계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과를 종합해보았을 때 자존감은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다’ 였다. 바우마이스터 팀은 자존감과 학교 성적 사이에 약하거나 중간 정도의 상관관계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으나, 자존감이 높은 학교 성적을 이끌어낸다는 결과는 찾아낼 수 없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NBA에서 뛰는 선수들은 키가 쑥 커진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NBA에서 뛰는 선수들의 평균 키와 미국 남성의 평균 키를 비교하는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존감이 높은 성적의 원인이 아니라, 높은 성적이 자존감의 원인일 수도 있다. 또한 자존감 관련 연구들은 ‘누락된 변수 편향’ 이라는 문제에 노출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가족 배경, 가정 형편, 초기 학업 성취도 등의 원인이 자존감과 이후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라는 연구가 있다고 하자. 이러한 연구에서 가족 배경 등의 변수를 빼면 자존감과 학업 성취도 간의 인과를 발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개입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존감 관련 조치들은 자존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학습 성취도, 시민권, 갈등 감소 등의 목표까지 함께 겨냥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자존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자존감은 단순 유사과학인가? 자존감을 단순한 유사과학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자존감의 문제는 과대광고에 있었다. 자존감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자존감과 결부하여, 자존감이 높다면 이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과장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한 과장만 없다면 자존감은 개개인의 삶에 도움을 주는 요소이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지나치게 비판적이면 좋은 성과를 내거나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방해가 된다. 캐럴 드웩의 <마인드셋> 이론이나 아론 벡의 ‘인지행동치료’ 같은 개념은 이러한 자존감의 핵심을 겨냥한다. 그들은 보다 적응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상황에 유연하게 반응하여 성과를 내거나(마인드셋) 우울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인지행동치료)고 주장한다. 이렇게 개인의 정신건강 차원에서 자존감 개념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자존감이 정신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과, 온갖 사회적 문제의 뿌리가 자존감이고, 자존감이 높다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때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는 깊은 심리적 상처들이 있으며, 그 상처들이 완전히 행동으로 드러나기 전에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아임 오케이 유어 오케이』(1967)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존감 광풍이 불기 시작할 즈음, 그런 책들을 읽은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 개념 문제가 자신의 성공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마음속 깊이 내면화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존감 광풍은 미국적 문화의 강력한 두 흐름, 즉 긍정적 사고의 힘에 대한 오랜 믿음과 각자가 안고 있는 깊은 정신적 상처를 해결해야 한다는, 보다 최근에 생긴 믿음이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손쉬운 해결책 -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제시 싱걸 지음, 신해경 옮김
녹음된 발언의 끝에 스멜서는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명한다. 캘리포니아 주 의회에 캘리포니아대의 연구가 분명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자존감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향의 답을 내놓았다고 말하는 건 “과대광고의 죄”가 될 것이라고. (…) 스멜서는 왜 그런 식으로 이용당하고도 가만히 있었을까? 스토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매우 치밀한 정치 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것”[24]으로 드러났다. 2017년 10월에 사망한 스멜서는 스토에게 자신은 캘리포니아대가 건전한 과학서를 출간했으면 하는 바람과 새크라멘토시라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기계에서 극도로 중요하면서도 걸핏하면 성을 내는 부품 같은 바스콘셀로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손쉬운 해결책 -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제시 싱걸 지음, 신해경 옮김
사심 없는 객관성이라는 과학의 이상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 있는지,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생각해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세상이 지금의 현실보다 더 순수했다면, 스멜서는 분명 바스콘셀로스의 그릇된 설명에 반대하고 나섰을 테고, 과학은 특별위원회가 주장하는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소리 높여 거듭 설명했을 것이다.
손쉬운 해결책 - 자기계발 심리학은 왜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 제시 싱걸 지음, 신해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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