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 북클럽 1기] 『올리브 키터리지』 함께 읽기

D-29
"상태와 특성의 차이지." 골드스타인 박사가 말했다. "특성은 변하지 않아. 정신의 상태는 변하지만."
올리브 키터리지 「밀물」, 63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케빈과 올리브는 모두 가족, 친구, 지인 등 사회적 관계 내에서 자살을 경험한 자살생존자(suicide suvivors)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면 그 트라우마는 크겠죠. 케빈이 어머니의 죽음을 회상하는 장면은 끔찍하면서도 가슴이 아픕니다. 관련하여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생각나서 여기에 옮깁니다.
심리부검 - 사람은 왜 자살하는가서종한의 <심리부검>. 이 책은 자살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자살이 왜 일어나는지, 자살 사망자가 어떤 아픔을 지니고 있는지 근거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심리부검 -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심리부검은 자료 조사와 면담을 통해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1950년대 미국 수사 기관에서 자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절차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자살 예방을 위한 국가적 노력의 첫 단계로 인식되어 선진국 각국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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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밀물」의 주인공 케빈은 사랑받지 못해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자살한 사건이 큰 트라우마로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정신의학을 전공했지만 스스로의 마음은 치유하지 못했는데, 오지랖 넓은 키터리지 선생 덕분에 비로소 상처를 마주하게 되죠. 그런 케빈이 고향에 돌아와 차 안에서 나가지 못한 채 옛집을 떠올리는 장면은 고통스러우면서도 뭉클한 느낌을 줍니다. 그는 집에서 나던 냄새를 이렇게 회상합니다.(후각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렬한 감각이라고도 하죠) "그 집에서는 두꺼운 운동복과 모직 외투가 젖은 소금과 흙내 나는 나무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 케빈은 이 나라에서 장작불이 타는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81쪽) 여러분에게 특정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냄새는 어떤 것인가요? 또는 케빈의 경우처럼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데 나만 싫어하는 무언가가 있나요?
새벽에서 아침 사이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공기의 냄새. 그건 왜 서울이든 천안이든 아니면 다른 어디든 다 비슷한지 모르겠다. 기후와 문화가 아예 다른 타지의 아침은 조금 다를지도. 아무튼 그 냄새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어릴 적 일 년에 서너 번 갔던 할머니의 시골집을 떠올리게 한다. 잠에서 깨어 사방이 논인 동네를 산책하던 기억이다. 집 앞의 대추나무, 자기 집 차고 옆을 지나면 어김없이 짓는 흰 개, 녹색 페인트를 칠한 낮은 옥상. 지금은 갈 수 없고 갈 일도 없는 곳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떠올리게 된다. 생각해보니 이상하고 신기하다. 한편으로는 내 의식 속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기신 부분이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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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피아노 연주자」를 읽으며 좋았던 문장과 그에 대한 감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가장 무서운 순간은 사람들이 정말로 귀를 기울이는 처음 몇 소절이었다. 피아노 선율로 실내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 책임감 때문에 두려웠다.
올리브 키터리지 「피아노 연주자」, 91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뭐든 처음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연주 뿐만 아니라, 발표나 글쓰기 같은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소설 초반에 인물이 가진 두려움이 느껴지면 더 잘 몰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공된 인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어쩌면 두려움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유한 특성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AI나 로봇은 두려움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앤지는 그후 몇 년 동안 음악학교를 머릿속에 그렸다. … 어머니 방에서 들려오던 소리, 밤이면 앤지의 귀를 틀어막게 만들고 집을 뛰쳐나가 교회로 가서 피아노를 치게 만들던 소리도 없을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 「피아노 연주자」, 101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대학교 1, 2학년 때 유독 학교 가기 싫은 날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도망치듯 들어가던 서점이 생각납니다. 서점이 버스 타고 통학하던 길에 위치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버스에서 내려 곧바로 서점으로 가서 책을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앤지만큼 견디기 힘들 정도였는가 하면… 그건 아니지만요.
다른 감정이 찾아오면서 그 감정은 결국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조그맣게 찌그러들어 크리스마스트리의 은색 술 장식처럼 마음 한구석에 매달려 있었다.
올리브 키터리지 「피아노 연주자」, 102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어떤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작게나마 자리 잡는 것 같습니다. 아주 가끔 긍정적인 것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부정적이라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그녀는 곡조를 잊어버렸으면서도 <O Come All Ye Faithful>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곡에 깊이 가 닿는 듯했다. 때로 그녀는 연주를 하다보면 자신이 조각가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랑스럽고 두꺼운 찰흙을 만지작거리는 것 같았다.
올리브 키터리지 「피아노 연주자」, 104쪽,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피아노 연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감각적으로 드러나는 대목. 이런 묘사는 소설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녀는 <We Shall Overcome>을 연주했다. 천천히, 두 번이나 웅장하게 연주하고, 월터가 그녀를 향해 미소 짓던 바를 건너다 보았다. 그가 주먹을 쥐고 허공에 올려 보았다.
올리브 키터리지 P. 106,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피아노 연주자’에는 종종 노래 이름이 등장한다. 다양하게 바뀌는 노래 제목들을 보는 것도 이 이야기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We shall overcome>이라는 노래는 두 번 등장하기도 하고 이야기에서 마지막으로 연주되는 곡이다. 이 노래는 승리는 우리에게라는 노래로 인권과 인종의 평등, 참된 자유를 구하는 공민권 운동의 테마 송이라고 한다. 노래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뭔가 극복하고 싶어하는 앤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녀가 표현하는 방법은 피아노뿐이기 때문에 자신의 갈망을 곡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다.
오! 이 노래가 두 번 등장하는 건 몰랐네요. 듣기에도 좋고... 앤지가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져서 이 소설이 좋았습니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진정한 예술가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1-6. 「피아노 연주자」의 앤지에게 피아노 연주는 생계 수단이자 어린 시절로부터의 도피처입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피아노를 칠 때 떠올리는 기억과 감각을 보면 피아노 연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지는데요, 여러분에게 도피처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도망치고 싶을 때, 힐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있나요?
내 삶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도피한다. 다른 사람 특히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일수록 더 좋다. 다른 사람의 삶으로 도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책을 읽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타인의 삶에 몰입할 수 있다. 특히 책은 보다 심도있게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는 방법이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고3 때 처음으로 해리포터를 읽었다. 어렸을 때 남들이 추천하고 읽으라고 할 때는 죽어도 읽지 않았다. 판타지 장르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런데 1권 마법사의 돌을 읽었는데 너무 재밌었다. 자습 시간에 자이스토리 사이에 껴서 감독 선생님 몰래 읽었다. 그렇게 시리즈 전권을 모두 읽었다. 반복되는 모의고사를 풀고 있는 나와 마법학교에 다니며 주문을 외우는 해리포터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해리포터의 삶에 몰입함으로써 지겨운 수험 생활로부터 도망쳤다.
연주를 마쳤을 때, 앤지는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을 저질렀다. 나중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새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일을 계획했던가 생각했다. 맬컴이 "나는 항상 당신 생각뿐이야"라는 말을 언제부터 하지 않게 되었는지 결코 돌이켜보지 않았던 것처럼.
올리브 키터리지 p.96,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그녀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색색의 전구들이 몹시도 밝았다. 잠시 그녀는 사람들이 나무에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나무를 그렇게 번쩍거리도록 장식한다는 게 당혹스러웠다.
올리브 키터리지 p.98,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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