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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 기묘한 괴담하우스 (사와무라 이치)

사와무라 이치는 단편을 훨씬 더 잘 쓰는 작가인가 보다. 수록작 일곱 편 중 처음 세 편은 그야말로 박수를 치며 읽었다. 특히 어린이의 시선에서 집단 괴롭힘 가해자의 가담 경위와 죄의식을 다룬 「아이들의 세계」가 탁월했다. 「인간이 제일 무섭다는 사람」을 읽고 나면 “귀신 따위는 무섭지 않고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을 쉽사리 할 수 없게 되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다.

기묘한 괴담하우스
기묘한 괴담하우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목차만 보고 또 조셉 캠벨 사골 우려먹는 책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괜찮다. 사골 국물이긴 한데 일단 건더기도 많고 재료도 신선한 걸 쓰고 다대기 양념도 너무 짜거나 싱겁지 않게 밸런스가 잡혀있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공지] 그믐이 새롭게 단장했어요.

오늘 그믐에 접속해서 깜짝 놀라신 분들 있으시죠?


[홈] 에서 보여지는 모임 이미지가 확 달라졌어요!


기존에는 모임지기의 모임 설명이 제목 아래 보였는데요, 이제는 회색 말풍선으로 모임의 가장 최근 대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모바일 화면도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기존엔 PC 화면과 동일한 디자인이었지만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서 책 이미지를 가운데 배치하였어요. 책 이미지 하단에 i 를 누르시면 모임에 대한 상세 정보도 바로 확인하실 수 있어요.


그믐은 회원들이 사이트를 더욱더 편하게 즐겁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기능 뿐 아니라 디자인 측면에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번 업데이트도 그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앞으로 더욱 멋지고 깔끔해진 그믐에서 의미있고 즐거운 대화 나누시길 바랄게요. 여러분의 다양한 아이디어는 1:1 문의를 통해 상시 받고 있습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그믐이에요.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책 읽는 우리들이 더욱더 많아지는 그날까지,


감사합니다.



기존 화면으로 보이는 분들은 현재 페이지에서 '새로고침'을 하시면, 업데이트가 바로 적용됩니다.
23-059 | 에드거 앨런 포, 유레카

읻다 넘나리 1기 (231115~231121)


❝ 별점: ★★★☆

❝ 한줄평: 놀라운 우주적 상상력으로 써내려 간 ‘진리의 책’

❝ 키워드: 우주 | 비밀 | 합일 | 상상 | 공리 | 직관 | 무한 | 끌어당김과 밀어냄 | 확산 | 복사 | 응축 | 순환 | 상대성 | 작용과 반작용

❝ 추천: 에드거 앨런 포의 놀라운 우주적 상상력이 궁금한 사람


❝ 우주적 상상력 안에서 합일하는 진리와 아름다움 ❞

/ 출판사 소개글


❝ 지금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면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라. 우주적 순환의 거룩한 심장이 뛰고 있는 소리인지도 모르니까. (p.184) ❞

/ 옮긴이의 말 | 우주라는 사건


📝 (23/11/22)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이름과 표지에 끌려 고른 책. 사전까지 찾아가며 열심히 읽다가 책의 1/3 정도를 읽은 후에 도저히 혼자 이 글을 읽을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에 출판사 서평을 먼저 찾아보았다. 다른 넘나리 분들의 후기를 보니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으신 분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유레카』는 에드거 앨런 포가 1848년에 했던 강연 〈우주의 구조에 대하여〉의 내용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네 가지는 공리, 끌어당김과 밀어냄, 유한과 무한, 그리고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 이 글에서 언급된 공리는 공리(公理,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진리나 도리.)와 공리(空理, (1) 사실과 동떨어지거나 실제로 소용되지 않는 이론. (2) 만유(萬有)에 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이치.)였는데 나는 公理의 뜻만 알고 있었던 걸 이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 ‘끌어당김’과 ‘밀어냄’이 곧 물질이라(p.50)고 말하며 모든 현상을 ‘끌어당김’과 ‘밀어냄’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나중에 물질과 에너지의 등가성으로 설명되었다는 게 신기했다.


✦ 인간은 무한이라는 개념의 ‘허깨비’를 애지중지하지만 사실 우주에도 유한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에 놀랐다. 그리고 포의 설명을 읽으면서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숫자로 저렇게 설명해도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아 정말 이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참으로 사소하고 우주의 입장에서는 ‘무’로 느껴지겠단 생각이 들었다.


✦ 옮긴이의 말에서 ‘우주가 태초의 입자에서 무수한 많음으로 나뉘고, 그 같음이 무수한 다름으로 나뉨으로써 관계가 생기고, 무연의 옳음이 무수한 관계들의 그름으로 나뉨으로써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되었’으나 ‘만물이 하나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은 개개인의 고통과 행복이 언젠가 하나로 뭉뚱그려져 상쇄되리라는 것을 의미’(p.182-183)한다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현대 과학의 9가지 발견을 시적 직관으로 예견했다고 평가받는 이 글을 에드거 앨런 포 자신은 <머리말>에서 ‘이 글을 오로지 예술 작품으로서 바치는 바다’라고 말하며 ‘나의 사후에 이 작품이 오로지 시로서 평가되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글을 읽으면서는 ‘도대체 왜 포는 이 글을 시로 읽어달라고 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니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가 다시 무로 돌아가는 순환이 ‘우주라는 완벽한 신의 플롯’(p.146)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우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글이 포에게는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포 자신이 써내려 간 아름다운 시일 수 있겠다는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다시 읽으면 정말 시처럼 느껴질까? 미래의 내가 할 독서가 문득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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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물질적이면서 정신적인 우주의 — 물리적, 형이상학적, 수학적 측면에 대해 — 그 본질, 기원, 창조, 현재 상태, 운명에 대해 — 이야기할 작정이다. (p.11)


| (...) 나무는 나무이거나 나무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 즉, 나무이면서 동시에 나무가 아닐 수는 없다는거예요 (...) 이제 그에게 묻겠어요. 왜냐고 말이에요.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뿐이에요 — 그 누구도 두 번째 답을 내놓진 못할 거예요. 유일한 답은 이거예요 — '그것은 나무가 나무이거나 나무 아닌 다른 어떤 것일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시 말하지만 밀 씨의 유일한 답이에요 (p.24)


| 옳음은 긍정적이고, 그름은 부정적이며 — 옳은 것의 부정에 불과하다. 이것은 차가움이 뜨거움의 부정이고 — 어둠이 빛의 부정인 것과 같다. 어떤 것이 그르려면, 무언가가 있어서 그것과의 관계에서 글러야 한다 — 그것이 충족하지 못하는 어떤 조건, 그것이 위반하는 어떤 법칙, 그것이 괴롭히는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그르게 하는 존재나 법칙, 조건이 없다면 —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존재나 법칙, 조건이 아예 없다면 — 그것은 그를 수 없으며 따라서 옳아야 한다. (p.74-75)


| 그리하여 끌어당김과 밀어냄 —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 이라는 두 참원리는 가장 엄격한 동료애를 발휘하며 영원히 동행한다. 그리하여 육체와 영혼은 손을 맞잡고 걷는다. (p.88)


| 인간의 뇌는 분명히 '무한'에 기울어 있으며, 무한 개념이라는 허깨비를 애지중지한다. 이 불가능한 관념을 상상해내자 이것을 지적으로 믿으려는 희망에서 열정적으로 갈망하는 게 아닌가 싶다. (p.125)


| (...) 지구상에서의 모든 거리가 실은 사소하여 — 거대한 우주적 양에 비하면 절대적 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p.139)


| 대칭성이야말로 우주의 — 그 대칭성의 숭고함 면에서 시들 중 가장 숭고한 시에 불과한 우주의 — 시적 본질이다. 대칭성과 정합성은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용어이므로 — 시와 진리는 하나다. 사물은 진리에 비례하여 정합하며 — 정합성에 비례하여 참되다. 다시 말하지만, 완벽한 정합성은 절대적 진리일 수밖에 없다. (p.157)


| 이 견해에서, 또한 이 견해에서만 우리는 거룩한 불의의 — 무정한 운명의 — 수수께끼를 이해할 수 있다. 이 견해에서 만악의 존재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이 되는데, 하지만 이 견해에서는 그 이상이 — 견딜 수 있는 것이 — 된다. 우리의 영혼은 더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한 슬픔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기쁨을 확대하려는 바람으로 — 그것이 헛된 바람일지라도— 스스로의 목적을 증진하고자 한다.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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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유레카
[원북성북] 2023 성북구 한 책이 최종 선포되었습니다.

지난 10월 초, 2023 성북구 올해의 한 책 최종 투표 모임 소식을 전했었는데요. 11월 17일, 올해의 한 책이 최종 선포되었습니다.

 

2011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성북구 한 책 읽기’에서는 문학과 어린이 분야에서 올해의 한 권의 책을 선정하는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선정했습니다.

 

올해에는 그 과정에서 그믐과의 협업으로 비문학 한 책을 최초로 선정해 그 영역을 넓혔습니다. 또한 그믐에서 최종후보도서를 함께 읽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성북구 한 책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경험의 장을 제공했습니다.

 

성북구 올해의 한 책은 문학, 어린이, 비문학 세 분야에서 선정되었으며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문학), 은경 작가의 <애니캔>(어린이), 김희경 작가의 <에이징 솔로>(비문학)입니다.

 

올해 한 책을 선포하는 선포식 현장에는 300여 명의 관객 그리고 성북구 한책추진단과 올해의 한 책 작가, 편집자, 출판 관계자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했습니다.

 

다음은 올해 성북구 한 책 비문학 후보 도서 함께 읽기 모임입니다. 최종 선정도서를 비롯 나머지 3권의 책들도 여럿이 함께 모여 치열하게 나눈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 [비문학 부문] 2023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최종후보도서

2023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
같이 가면 길이 된다 (이상헌 | 생각의힘 | 2023) 
동물권력 (남종영 | 북트리거 | 2022)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이인규 | 마티 | 2023)
에이징 솔로 (김희경 | 동아시아 | 2023)


2023 성북구 한 책 ‘비문학’ 선정 관련해 함께 해주신 출판사 관계자분들, 작가님들, 성북문화재단 담당자분들, 서포터즈분들 그리고 열심히 읽고 생각 나눠주신 그믐의 회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808. 시시리바의 집 (사와무라 이치)

히가 자매 시리즈 3편. 나는 이 시리즈 1편 『보기왕이 온다』보다 2편 『즈우노메 인형』이 더 좋았고, 2편보다 이 소설이 더 좋다. 프롤로그가 진짜 무서웠고,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필력도 인상적이다. 결말은 깔끔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한데, 깔끔해서 좋고 또 찜찜해서 좋다.

시시리바의 집
시시리바의 집
807. 즈우노메 인형 (사와무라 이치)

히가 자매 시리즈 2편. 주인공은 히가 마코토. 과거 장면에서 히가 미하루가 나오며, 히가 고토코는 언급만 되다가 결말에 잠시 등장한다. 핵심 아이디어는 『링』에서 가져왔고, 작품도 스스로 『링』의 오마주임을 숨기지 않는다. 이야기는 무서웠고, 진상은 상당히 슬펐다.

즈우노메 인형
즈우노메 인형
57. 쥬시후레쉬맥주와 노매드랜드

부모님이 1박 2일 여행을 떠났고, 그 이틀 동안 내가 부모님 댁을 지키며 개를 돌봤다. 그 첫째 날 낮에는 HJ가 와서 새롱이와 함께 공원을 산책했고, 저녁도 부모님 댁에서 같이 먹었다. HJ는 내 부모님 댁에 두 번째로 온 것이었다. 명절에도 집안 대소사에도 부모님 댁에는 나 혼자 간다.

저녁을 먹으면서 물론 맥주도 마셨다. 이즈음에는 거의 매일 맥주를 마셨다. 술에 얼큰히 취해 마루에 누워 새롱이와 놀았다. 내게 달려드는 강아지를 팔로 밀쳐 냈더니 녀석은 그게 새로운 놀이인 줄 알고 신이 났다. 밀쳐내고 달려들고 밀쳐내고 달려들고……. 개가 잔뜩 흥분하자 털 아래 가려져 있던 붉은 성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이고, 저걸 잘라내야 한다는 건가.

다음날은 무척 바빴다. 이날 저녁에 구로구청에서 작은도서관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원고를 오전에야 겨우 다 썼다. 낮에는 어느 기업 강연 담당자와 만났다. 디자이너들을 위한 5회짜리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제안 받은 금액이 크지는 않았는데, 처음에는 그냥 글쓰기 강연인 줄 알고 수락했다. 여태까지 대학이나 글쓰기 센터에서 써먹은 강연 원고와 프로그램을 재활용하면 되니까. 그런데 회사의 요구사항이 의외로 까다로웠다. 담당자와 이야기하면서 강연 원고를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강연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약간은 분위기에 휩쓸려서이기도 했고 약간은 기업 강연 시장을 개척한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동안 대학과 도서관에서 강연을 많이 해봤지만 기업 강연은 한 번 밖에 못해봤다. 인세로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안 되면 인문학 전도사의 길이라도 걸어야 하니.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기업 강연업계는 담당자들끼리 네트워크가 있어서 정보를 교환할 것 같다. 이번 강연 섭외 요청의 배경에도 누군가의 추천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강사 평가는 꼼꼼하게 할 테고, 내 강연이 만족스러우면 다음해에도 부르겠지. 그리고 나도 이제껏 늘어놓던 소박한 얘기보다 더 거창한 내용을 떠들어도 될 것 같다.

이 회사는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을 강조한 뒤로 디자이너 직군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한다. 농담 같은 얘긴데 농담이 아니었다. 담당자로부터 지난 5년 간 그 인문학을 강연했던 강사와 강연 주제 명단을 받았다. 다들 열심히 인문학을 팔아 돈을 벌고 있었구나.

강연 담당자와 헤어지고 바로 구로구청으로 갔다. 구청 청사 주변이 낯익다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7년 전에 여기서 여권을 발급받았다. 그 얘기를 『5년 만에 신혼여행』에 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책을 읽은 구로구의 작은도서관 대표들이 내가 여전히 구로구민일 거라고 생각해서 초청했다고 한다.

구로구청 강연은 화상 앱으로 했다. 작은도서관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도서관이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해, 그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런 게 인문학이지. 강연 원고를 준비하면서 내가 펼치는 주장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청중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몇몇 사람들은 감동한 기색이 역력했다.

실은 나 역시 내 강연 내용에 감동했다.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펼치는 비전은 멋졌다. 독서 토론으로 사람들이 친해지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사회. 그 대화 내용을 모두 기록해서 그것이 거대한 책 추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플랫폼. 전국의 작은도서관을 씨줄로, 큰 도서관을 날줄로 삼아 그런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다음날에는 동물병원에 새롱이를 데리고 가서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생체 칩을 이식했다. 불쌍한 강아지가 서글픈 수술을 받는 동안 HJ와 나는 근처 식당에서 닭갈비를 먹고 공원에 갔다. HJ는 책을 읽었고, 나는 공원 선베드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러다가 전화 영어 수업을 들었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꽈배기를 사 먹었다.

고환을 제거당한 개는 병원에서 목에 깔대기 모양의 보호대를 달고 우리를 기다렸다. 혼이 나간 모습이었다. 나는 HJ와 헤어져 개를 꼭 껴안고 부모님 댁으로 갔다. 개는 부모님 댁에서도 한동안은 풀이 죽어 있었고, 넥카라를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맛있는 간식을 주며 달래려 애써 보았다.

다음날에는 집 근처 팬케이크 가게에 가서 브런치로 팬케이크와 해시브라운, 샐러드를 먹었다. 저녁에는 극장에 가서 얼마 전에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노매드랜드》를 보았다. 올해는 예년보다 영화를 꽤 자주 본다. 그래도 개봉관에서 본 영화는 올해 이게 첫 작품이다.

영화는 지루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감동이라는 말이 맞는 표현일까? 크고 낯설고 복잡한 감상이 들었다. 그 감상에는 애잔함과 아름다움도 있었고 스산함과 두려움도 있었다. ‘뭔가 아주 중요한 얘기다’라고 느꼈지만, 그 뭔가가 뭔지 선명하게 잡히지는 않았다.

물론 삶과 소유와 자유에 대해 색다른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그러나 그보다 나는 이 영화가 우연찮게, 마치 예언자처럼, 인류의 미래에 대해 크고 우울한 비전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거대 기업이 세상을 장악하고, 지식 노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이 무가치해지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 세계는 이런 모습 아닐까.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잠들 때까지 영화에 대해 HJ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가 은근히 유랑민들의 현실을 미화했을 것 같다고 우리는 짐작했다. 실제 그들의 삶은 저보다 훨씬 더 물리적 위협 속에 있을 것 같다. 특히 여성 유랑민은 더욱. 그리고 미국이니까 유랑을 하면서 저렇게 자연을 체험할 수 있지 한국 노숙자한테는 그런 것도 없다.

우리는 빈털터리가 되는 일에 대해서도 대화했다. 어쩌면 그게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절망스러운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그런데 차에서 살아야 한다면 적어도 발을 쭉 뻗고 잘 수 있는 크기의 SUV나 밴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내내 다리를 구부리고 자는 모습이 너무 불편해 보였다.

이날 저녁에는 나 혼자서 500밀리리터짜리 맥주를 다섯 캔 마셨다. 첫 번째로 마신 맥주는 더쎄를라잇브루잉 양조장에서 만든 쥬시후레쉬맥주였다. 세븐일레븐이 기획해 롯데제과와 손잡고 내놓은 제품이다. CU가 곰표 밀맥주, 말표 흑맥주를 내놔서 짭짤하게 재미를 본 것을 보고 따라 한 기획인 듯하다.

캔 꼭지를 딸 때만 해도 과연 껌 향이 맥주로 제대로 구현될지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쥬시후레쉬 맛과 향이 그대로 났다. 그리고 그게 정말 역겨웠다. 단순히 맛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이 먹는 음료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끝까지 마셔야 하는지 여러 번 고민했다. 껌 원액을 그대로 맥주에 담았다고 한다.

 

어이구 이건 아니다

재미로 소비하는 시대

난 못 따라가요

 


23-058 | 정대건 외 5명,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읻다 넘나리 1기 (231118~231120)


❝ 별점: ★★★★

❝ 한줄평: 나 MBTI 많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네

❝ 키워드: #MBTI : INTJ, INTP, ENTP, ENFP, INFJ, INFP | 연애, 외로움 | 일반적, 생각 | 제도, 사랑 | 이별, 다름 | 유형, 비정상 | 이해, 감각

❝ 추천: 다른 사람들의 MBTI 추측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MBTI 과몰입러, 작가님의 MBTI가 궁금한 사람


❝ 그래도 나는 MBTI가 좋아, 누군가를 알고 싶은 마음이라니 기특하고 귀엽잖아. ❞

/ 이서수, 「알고 싶은 마음」


📝 (23/11/21) 우주 최초 MBTI 테마 소설집이라니! 읻다 넘나리 세 번째 도서를 고를 때 망설임 없이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를 택한 이유는 좋아하는 이유리 작가님이 ENFP로 소설을 쓰셨기 때문❤️ 나도 ENFP라 운명처럼 느껴져 더욱 신이 났다. ㅋㅋㅋㅋ 


  이 책에는 여섯 분의 작가님이 각각 INTJ, INTP, ENTP, ENFP, INFJ, INFP 유형의 인물을 다룬 작품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고, 작가님들의 Q&A도 담겨 있어 책을 덮는 순간까지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가득했다. 


  내가 F가 거의 80% 가까이 나오는 극 F고, 친한 친구들이 INFJ, INFP인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이유리, 이서수, 김화진 작가님이 쓰신 후반부의 세 작품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나 이유리 작가님의 「그때는 그때 가서」가 이 책의 내 최애 작품❤️ 이유리 작가님이 그린 

ENFP 주인공 수진과 거의 한 몸이 된 것처럼 몰입해서 읽었다. 이유리 작가님의 Q&A를 읽으니 정말 작가님과 나는 같은 엔프피구나 느껴져서 신기했다 ㅋㅋ 작가님은 ‘머릿속이 꽃밭’(p.111)이라고 점잖게 표현하셨지만, 종종 친구들에게 ENFP 유형이 ‘대가리 꽃밭’이라는 말이 있다더라고 말하며 깔깔 웃곤 했던 나라서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 읽은 후에는 정말 대책 없으나 사랑스러운 수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고.


  2권이 T 유형, 3권이 F 유형 특집인 것과 달리 이 책에서는 T 유형과 F 유형의 인물들을 골고루 만날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MBTI 유형에 맞는 소설집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MBTI 과몰입러라면 이 소설 강추! 작가님들의 진짜 MBTI가 궁금한 사람에게도 강추! MBTI 테마 소설집 시리즈 기획하신 읻다 선생님들 완전 감사합니다💗💗


(*읻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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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건, 「디나이얼 인티제」

: MBTI 과몰입러와 MBTI 극구거부자 그 사이일 순 없는 걸까?


|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사람? 만나면 당연히 좋지. 누가 모르나? 그러나 자신부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걸 바라는 건 파렴치했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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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석, 「주말에는 보통 사람」

: ‘일반적’이라는 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에 관해 생각해 보는 것


| 그러니까 윤아는 어떤 이야기를 듣더라도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단 듣는 편이었다. 비과학, 비과학 하면서 투덜대는 나와는 달리 윤아는 세상살이에 필요한 적당한 타협과 균형 감각도 있는 편이었다. 내가 틀린 건 아니지만, 윤아가 틀린 것도 아니라는 건 안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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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운, 「도도의 단추」

: 사람도, 동물도,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다


| 예전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는 일정한 자격 없이는 화를 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따위 자격이 필요한 세상 자체를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이따금씩 끓어올랐으나 영지는 손도 시리고 너무 피곤하기도 해서 자꾸만 누워버렸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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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그때는 그때 가서」 ⛤⛤

: 대책 없음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ENFP의 매력


| 아랫배에 힘을 딱 주고 부르는 김선자 씨의 노래를 들으며 눈앞에서 꿈결처럼 흘러 다니는 보름달물해파리 떼를 보는 이 순간은 글쎄, 정우의 말대로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나쁜 건 아니었다. 세상에는 나쁜 이상함, 유해한 이상함이 있고 좀 바보 같지만 무해한 이상함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함, 그건 아무래도 잘못은 아니다. 이런 순간이라도 있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간담, 이 풍진세상을. (p.12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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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알고 싶은 마음」 ⛤

: 알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알고 있는 마음


| 어떤 사람의 상황을 자세히 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상태라는 걸 이젠 안다. 알고 있다고 하여 뭔가를 해줄 수는 없더라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동되는 마음이 있다. 염려하는 마음, 간간이 떠올리며 기도하는 마음. 누군가 그렇게 해주면 상대는 무심결에 힘을 얻는다. 기운이 전해진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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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나 여기 있어」 ⛤

: 말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 그 감각을 알았다. 나는 가고, 너는 여기 남겠구나. 누가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가고 내가 남겨진 것이기도 하겠지. 그러나 그런 건 의미가 없고 그저 우리가 함께가 아닌 순간에 대한 예감만이 또렷했다. 나는 언제나 그 감각을 알았다. 그런 감각이 스미는 순간을 알았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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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딱 한 달만 다른 MBTI 유형으로 살 수 있다면, 어떤 유형으로 살고 싶으세요? 이유는요?

A. 글쎄요, 깊이 생각해 봤는데 저는 ENFP가 제일 좋습니다. 다른 것은 되고 싶지 않네요.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그런데 이렇게 답하고 보니 이 역시 자기애 넘치는, 굉장히 ENFP적인 답변이네요······.


Q. ENFP의 이런 점은 진짜 최고다, 이 점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부끄럽다, 하는 게 있다면?

A. 낙천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것! 저는 인류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고 내일 하루는 어김없이 밝고 아름답게 시작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점이라면 남의 칭찬(대부분 립서비스인)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거, 끈기와 집중력이 정말 부족하다는 거······? 그리고 현실감각의 부재.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매력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죄송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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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 - 박웅현의 조직 문화 담론

조직 문화 연구소로 포지션을 이동한 박웅현의 조직문화 담론서. 그의 전작을 읽었다면 동어반복이라 느낄 부분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피라이터 출신답게 적확한 단어 선택과 개념 정의가 돋보인다. 

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 - 박웅현의 조직 문화 담론
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 - 박웅현의 조직 문화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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