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를 진료하는 반딧불 의원>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병원과 의사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전,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병원을 간 적이 있다. 6시쯤 퇴근을 한 이후에, 접수가 가능한 곳이 집 근처 ‘가정의학과’였다. 뛰어가서 접수를 하고 의사 진료를 받는데 어디가 아파서 오셨냐, 콧물은, 목은, 기침은 어떤지 물은 다음 약 3일치 처방해줄게요, 가 끝이었다. “독감은 아닌가요?” 라고 내가 물으니 “독감 증상은 아니에요.”가 끝. 제대로 눈 마주치지도 않은 채 그곳을 나왔다. 그렇게 처방받은 약을 먹었는데 그다음날은 더 심각한 오한이 왔다. 처방받은 약을 먹었는데 병 증세가 더 나빠지다니... 결국 다른 병원을 또 가야했다.
환자 입장에서 소소한 감기일지라도, 병원을 가는 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쓰는 일이다. 그러나 병원에 가서 자신의 질병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나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자세하게 듣는 게 쉽지는 않단 걸 새삼 느꼈다. 감기에서도. 예를 들어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커피는 되도록 드시지 마세요. 푹 주무세요’라는 다소 뻔한 말이라도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책에 나온 반딧불 의원처럼 동네 의원이었고, 가정의학과였고, 심지어 의사 이름이 주인공과 동일해서 신기하기도 했었는데, 실제 현실은 역시나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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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부터 10년 가까이, 보호자의 역할을 해왔다. 특히나 엄마가 유방암을 판정을 받고 선항암, 후수술 그리고 방사선까지 이어지는 10개월 동안 매일매일이 질병에 대한 지식에 허덕인 것 같다. 당시 엄마의 주치의였던 종양내과 의사는 본인도 유방암을 앓았었기에 그런지 다른 의사들과는 달리 친절한 편이었다. 그러나 수술을 집도한 외과 의사는 정말 최악의 의사였다. 공짜로 수술을 받은 사람에게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언행들을 그냥 서슴없이 하는 의사였다. 회진을 돌 때도, 정기검진을 할 때도 마치 환자들이 무슨 벌칙을 받는 것 같았고, 20대 중반이던 나로서는 그런 의사에게 준비해간 질문을 많이 하는 걸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러면 의사는 그런 환자나 보호자를 굉장히 더 귀찮아하고 하대했다. 생각할수록 분하지만, 이런 일은 여전히 많이 일어나고 있단 걸 안다. 몇 년 전 내가 자궁근종으로 수술을 해야했을 때도 이런 의사들을 만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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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환자들은 모여서 환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네이버 카페. 각 질병으로 모인 카페에서는 서로 진단서도 공유하고, 병원 정보도 초성으로 적어서 공유하고, 병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방향으로 가도 되는지 묻고 또 묻는다.
병원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해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궁금할 때 물어볼 수 있는 가까운 동네 의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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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까지 경험했던 병원 중 '반딧불 의원' 같았던 병원은 어디였을까? 떠올려보면 그곳은 한의원이다. 특히 올해에 처음 간 동네 한의원에서는 내가 작성한 건강 관련 설문 답변을 바탕으로 1시간 동안 상담을 했다. 한의학에서는 그걸 바탕으로 약을 짓거나 치료를 결정하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모든 한의원에서 그러진 않기에 새로웠다.
하루에 밥을 얼마나 먹는지, 소화는 잘 되는지, 기존에 받은 수술은 무엇인지, 건강 측면에서 어떤 점이 가장 걱정인지, 가족력은 없는지 등등 세세히 이야기 나누고 공감받는 경험이 참 좋았다. 특별히 아프지 않아도 이곳에 꾸준히 다니면 내 건강도 체크되고 좋을 것 같은 그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반딧불 의원'과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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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여러가지 질병에 대해서 한 에피소드씩 페이크 다큐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편안하게 읽히고, 그 질병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아픔도 아픔이지만 질병으로 인한 차별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잘 적혀 있어서 좋았다. (암환자, HIV 감염인에 대한 에피소드 등)
그래서 읽다보면 '반딧불 의원'이 현실에 존재하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이수현 원장님 같은 의사도 있었으면 좋겠고, 보통의 직장인들이 저녁에 퇴근하고 가도 언제나 불이 켜져있는 병원이 있으면 좋겠다. 다 바람이다. 현실에서는 아무래도 존재하기가 어렵다보니, 판타지같이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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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렇게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를, 현직 의사가 적은 책은 현실에 존재한다. (글이 갑자기 마무리되는 것 같지만!)
병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이해하기 쉽도록 적어둔 책이 이 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바른 건강을 선물하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는 윤대현 교수의 추천사처럼 나또한 건강을 선물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선물할 것이다.
역사시대의 몇몇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삽화처럼 조금 소개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동물들이 인류가 생활하는 방식이나 상징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무게를 둔다. 로아사상충에 대한 장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저자는 자연을 마냥 아름답게만 보는 견해의 한계를 보여주고 싶어서 로아사상충을 책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결말에 이르러 한 등장인물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데, 책을 읽는 내 기분이 내내 그랬다. HBO에서 드라마로 개발 중이라고 하는데 제작된다 해도 설정만 가져다 쓰지 않을까 싶다. 젤라즈니는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19세기스러운 풍경이 펼쳐지는 걸 보고 이 소설을 구상했고, 이 작품의 아이디어가 앰버 연대기의 헬라이드로 발전했다고 한다.
청년들이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비슷한 요청을 받다 보니 답도 비슷하게 하게 되는데, 개중에 요청한 측에서 놀라며 되묻는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그레고리 맨큐의 『맨큐의 경제학』, 다른 책은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다. 『맨큐의 경제학』도 두툼한 벽돌책이니 언젠가 다뤄 보기로 하고, 오늘은 후자 이야기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대해서는 특히 이 책을 실제로 학생들에게 독서토론 과제로 내주려 하는 분들이 “정말 이걸로요?” 하는 반응을 보인다. 1406쪽이라는 페이지가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테고, 책값도 만만치 않다. 상대가 곤란하다고 하면 다른 책을 고르기는 하지만 나는 속으로 아쉬워한다. 두꺼워서 그렇지 전혀 어렵지 않고, 매우 재미있는 데다 청년기에 읽으면 특히 좋을 책이라서 그렇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류 역사에서 폭력은 꾸준히 감소했고, 여기에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 ‘우리는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주장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펄쩍 뛸 분들이 많을 것이다. 세계대전이 두 번이나 벌어진 20세기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기였다는 주장에도. 심리학자인 저자는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에서부터 사회학, 경제학, 생물학, 신경과학, 때로 문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방대한 영역을 누비며 설득력 있는 증거와 이론을 제시한다.
제목만 보고 내용을 잘못 짐작하면 안 된다. 인간이 모두 천사이며, 우리 본성을 믿으면 폭력이 저절로 줄어들 거라는 내용이 절대 아니다. 핑커의 견해는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그는 계몽주의와 상업, 기술 발달이 폭력 감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논증하면서 ‘측은지심’의 한계를 지적한다. 우리 본성의 악마와 그 악마를 부추기는 힘도 섬뜩하게 설명한다. 우리 안의 악마를 억누르고 천사를 북돋우려면 정교한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주 냉철하지만 보기 드물게 희망적인 책이기에 특히 청춘에게 권한다. 인간 존재에 염증이 생기고 진보를 더 믿을 수 없을 때 이 책은 해독제와 같다. 더디긴 해도 역사는 발전하며, 우리의 이성이 해답이라고 외친다. 내게는 이런 방대한 지적 프로젝트를 한 사람이 수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희망으로 느껴진다. 물론 다른 세대 독자에게도 강력히 추천한다.
낮의 세계이자 과학의 세계인 데이사이드, 밤의 세계이자 마법의 세계인 다크사이드. 그림자가 있는 곳에서 힘을 발휘하는 도둑 주인공과 숙적 박쥐 군주. 거의 동화나 우화 같은 설정의 소품이다. 결말은 멋있다면 멋있고 귀엽다면 귀엽다.
젤라즈니는 휴고상을 여섯 번, 네뷸러상을 세 번 수상했는데, 한 작품으로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모두 받은 적이 있다. 그게 바로 이 중편. 정작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읽었는데 이게 연작의 일부라서, 전체 이야기를 읽으면 감상이 바뀔지 궁금하다. 앰버 연대기는 기이하게도 휴고상도, 네뷸러상도, 로커스 상도 받지 못했다.
자음과모음 (e-book, 231203~231204)
❝ 별점: ★★★★
❝ 한줄평: 너와 나, 우리가 아닌 ‘누’
❝ 키워드: 너와 나 | 우리 | 언어 | 애도 | 사랑 | 구원
❝ 추천: 너와 나, ‘누’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 이주혜의 소설들은 여성성에 근거해 여성에 부여된 자리들에 대한 고발이자 자리 없는 여자들에 대한 구원의 이야기이다. ❞
/ 해설 | 소영현, 자리 없는 여자들
📝 (23/12/05) 이주혜 작가님은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 가을(2023)』에 실린 「이소 중입니다」로 처음 만나게 된 작가님이다. 소설도 좋았지만 인터뷰가 특히나 인상적이어서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전자책이 있길래 읽어 보았다.
「누의 자리」와 「골목의 근태」가 ‘제비 뜨개방’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처음과 끝에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면, 「소금의 맛」은 하얗고 빛이 나는 소금 기둥처럼 반짝거리는 두 연인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 이야기가 아름답다. 작가의 에세이도 참 좋았다. 사실과 거짓말, 그리고 그 사이의 ‘이야기’.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그들의 얼굴. 이주혜라는 작가와 그의 세계를 더 알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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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의 자리」
: ‘오직 너와 나, 단 두 사람만을 위한 무대’인 ‘누’를 만들어준 이를 위한 자리
| 내게 ‘누’는 ‘누구’가 아니야. ‘누’는 ‘너와 나’야. (…) ‘누’라는 무대에 오직 너와 나, 단 두 사람만 올리고 싶어. 이제 ‘누’는 너와 나만을 위한 단어야. 내가 그렇게 언명했어.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함께 아름다운 춤을 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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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의 맛」 ⛤
: 소금의 값과 소금의 맛, 그리고 사랑의 값과 사랑의 맛
| 하이스미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를 떠올렸다면 그것은 소설 속 캐롤과 테레즈의 고통에 집중했기 때문이겠지요. 만약 「마태복음」 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거라면 고통보다는 사랑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금은 짜야한다. 그게 소금의 값이고 소금의 대가이다. 캐롤과 테레즈의 입을 빌리면 이런 말이 되겠지요. 이 사랑은 고통이다. 그게이 사랑의 값이고 대가이다. 소금은 짜서 소금이고 이 사랑은 고통이지만 끝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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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근태」
: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되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
| 누구도 내가 아이를 버린 게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누구도 내가 지은 죄에 비해 너무나 과도한 벌을 받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나를 낳고 키워준 친정 엄마마저도 이혼 직후 친정에 와 누워 있는 내게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그러게, 어미가 되어서는 왜 그렇게 일 욕심을 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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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나바호 원주민 신화와 SF의 결합. 젤라즈니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설정들도 있지만, 그 전형성에서 벗어난 면들도 있다. 2부의 관념적인 전개도 그렇고, 마초이기는 하지만 패배감 속에서 구원을 찾는 주인공의 모습도 그렇고. 나는 그런 차이점들이 좋았다. 저자 역시 1부보다 2부에 더 무게를 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