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나온지 꼭 10년이 되는 올해 여름에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인류세’가 공인될 전망이라고 한다. 시인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인류세 곳곳의 풍경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전한다. 읽는 이의 죄책감을 과하게 자극하지 않는다. 의외로 희망적인 대목도 많다.
아주 재미있게 잘 쓴 과학 논픽션이다. 주제는 고양이. 고양이 애호가에게는 매우 추천하고 고양이가 싫은 사람에게는 더 추천한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데 대한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과학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추천한다. 톡소플라즈마 곤디에 대해 알게 되었고 단편 「사이보그의 글쓰기」에서 써먹었다.
위즈덤하우스 (240110~240110)
❝ 별점: ★★★★
❝ 한줄평: ‘잠이 오나요’라는 말에 담긴 여러 의미들
❝ 키워드: 잠 | 불면 | 밤 | 베개 | 목소리 | 미움 | 복수 | 망설임 | 후회
❝ 추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품어본 적 있는 사람
❝ 눅눅한 냄새가 섞인 복숭아 향. 그래, 복수가 풍기는 냄새가 있다면 꼭 이럴 것 같았다. ❞ (p.38)
🛌 첫 문장: 베개를 사 온 건 오늘 가게를 닫은 후의 일이었다.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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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위즈덤하우스 홈페이지에 공개되었을 때 읽었던 이유리 작가님의 단편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후 작가의 말이 궁금하기도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 위픽 시리즈는 단편을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드는 것이니 분량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항상 있다.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은 소장하고 싶을 만큼 책이 특색 있고 예쁘다고 생각한다.
✦ 처음에 읽을 땐 ‘잠이 오나요’라는 제목을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었는데, 이번에 읽을 때는 이 말을 여러 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 베개를 베면 잠이 오나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왕방울 당신은 그렇게 행동하고도 잠이 오나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양양미와 박세희 씨는 복수를 하고 나니 잠이 오나요?’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왕방울 당신은 자신이 했던 행동을 돌려받으니 잠이 오나요?’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 몇 번이고 샤워를 하고도 자신에게 미약한 페인트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수시로 냄새를 맡고, 복수를 성공적으로 해내고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양양미의 모습에서 어쩐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떠올랐다. 후회와 불안으로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왕방울 씨에게 잠을 빼앗았음에도 그 복수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동네 사람들을 예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양양미는 왕방울 한 사람으로 인해 그 기쁨을 박탈당하고 모두를 의심하게 된다. 사실 이건 양양미와 왕방울 개인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소설 자체가 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미움과 두려움 없는 포근하고 편안한 곳이 당신에게 있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 이유리 작가님이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좋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읽고 싶다. [📝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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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면 지는 거라면 펑펑 울어본 우리는 이미 펑펑 진 거였으니까. 울다뿐인가, 이렇게 불면증까지 얻어 뒤척거리며 밤마다 타들어가는 속에다 소화기를 뿌려대고 있으니 이건 그야말로 완벽한 패배였다. (p.14)
| 그러고 보니 이런 신기한 물건을 두고서도 베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복수할 생각에만 눈이 뒤집혔구나, 우리. 나는 베개 밑에 팔을 집어넣고 웅크렸다. 차갑고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한을 품은 사람의 마음에 손이 닿은 것 같았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도 복수는 해야만 한다고. (p.41-42)
| 하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마음 한복판에 뾰족 튀어나온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얇디얇은 잠의 천은 내 지친 몸을 쓸다 말고 거기에 걸려서 자꾸 찢어지고 이지러졌다. 비몽사몽, 잠에 빠져들락 말락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금세 뭔가 잊은 사람처럼 나는 훅 하고 현실로 도로 불려오곤 했다. (p.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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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독서 팟캐스트를 엄청 많이 들었다. ‘눈동자를 굴릴 수 있고 주의력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 시간에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라고 생각한다. (눈은 있지만 정신이 없는 경우가 요즘 좀 많긴 하다. 😭) 그런데 귀를 이용하면 되는 팟캐스트 청취는 독서의 좋은 보완재다. 20분 정도 되는 구경거리 없는 길거리를 걸을 때, 설거지, 청소 등 싫지만 해치워야 하는 일이 쌓였을 때, 사람들로 가득 찬 울렁울렁 버스 안에서, 무언가를 보는 것은 어렵지만 듣는 것은 문제없다. 이럴 때 독서 팟캐스트를 듣는다. 읽은 책은 맞아맞아 하면서 듣고 안 읽은 책 소개가 흥미롭게 들리면 좋은 추천을 받아서 신이 난다.
한때는 들어야 할 팟캐스트가 너무 많았는데 어느새 점점 그 수가 줄더니 이제는 몇 개 남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와중에도 <YG와 JYP의 책걸상>은 2017년 시작한 이래 그 명맥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시즌6 펀딩에도 성공, 올해에도 방송을 계속 들을 수 있다.
그믐에서도 함께 하자고 협업을 간곡히 요청드려 작년 한 해 동안 함께 읽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무려 50개가 넘는 독서모임!!)
내가 생각하는 책걸상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 큐레이션이 너무 좋다. 신/구간의 적당한 소개 비율, 문학/비문학의 절묘한 배치, 국내/해외 작가의 적절한 안배.
방송 안 듣고 이들이 무슨 책 읽었나만 살펴본 뒤 그냥 개인적으로 그 책 따로 읽어도 이득이다. (라고 쓰면 매우 싫어하시겠지만 😂)
둘째, 소개하려는 책이 무조건 좋다고 하지 않는다. 출판 시장이 워낙 작아지다 보니 책의 단점을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책걸상은 담백하게 이 점은 이래서 좋고 저 부분은 저래서 조금 아쉽다고, 유머있게 풀어주니 듣는 맛이 있다. 자극적으로 방송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고 적당하게 아쉬운 점을 이야기한다. 덕담만 오가지 않으니 책 안 좋아하는 사람이 그냥 예능처럼 들어도 재밌다.
그 밖에도 하고 싶은 칭찬거리는 많지만, 너무 길어지니 오늘은 1절만.
실은 오늘 방영분에 내가 출연했다. (본론 등장😂)
* YG, JYP님과 찍은 송년회 사진 (혼비 작가님은 아쉽게도 먼저 가셨다)
*팟캐스트 책걸상 다시듣기 링크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342/episodes/24857515
장르를 농촌코믹엽기미스터리라고 불러야 할까? 범죄 없는 마을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군더더기 없이 진행하고 유쾌하게 잘 마무리한다. 소를 판 사람 이름은 소팔희, 양식장 주인 이름은 양식연. 신한국, 왕주영, 우태우 같은 이름도 범상치 않음.
조선시대의 별별 희한한 직업들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장례식장에서 대신 울어주는 직업, 매 잡는 직업이 있었는가 하면 변호사와 신문 발행인도 있었다. 아무래도 내 눈길을 가는 직업은 책 읽어주는 전기수, 책 유통하는 책쾌. 법적 책임을 피하려고 고용하는 바지사장은 현대판 매품팔이 아니냐고 따끔하게 비판한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콩트 60편. 재미있다. 추리 잡지의 ‘2000자 미스터리’라는 코너 연재물이었다고 한다. 간혹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야기도 있었는데 옮긴이도 그랬다고 고백한다. 2000자라는 분량에 맞추려다 설명을 생략해서 그렇게 됐나 보다.
원숭이 신이 다스리는 황금 도시가 온두라스 정글에 있다고 하고, 원정대가 출범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특파원이 그 원정대에 합류해서 책을 썼다. 탐사팀이 정말 그 도시를 발견하는 건지 아닌지 너무 궁금해서 중간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본 게 후회될 정도로 재미있었다. ‘저주’도 아주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