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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래 좋아하던 영사기사의 딸이 세계적인 프리마돈나가 되고 그 여정의 동반자들을 만나고 마침내 음악과 하나되기까지 그려낸 감동적 이야기.

나나 무스꾸리 자서전 - 박쥐의 딸
나나 무스꾸리 자서전 - 박쥐의 딸
20240313 빠져있는 것들

은유 작가님 칼럼 <은유의 다가오는 것들>


은유 작가님의 칼럼들이 미치게 좋다. 그냥 다 주옥 같다.


하찮은 만남들에 대한 예의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청첩장을 여러 번 받게 되면서 결혼에 대한 꺼림칙한 마음이 자꾸 들었는데 이 글이 가렵던 내 의문을 긁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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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축복한다. 결국 여기에는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진 일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상 일반에 행복한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전제로 깔려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 어법, 축복의 방식은 동시에 좋아하는 이성과 맺어지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하다든가, 아니면 적어도 이 두 사람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띠고 만다.”(111쪽)

 

저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는 것 자체가 독신이나 동성애자에게는 저주가 된다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는 규범을 모조리 갖다 버려야 한다. 규범이란 반드시 그것에 의해 배제 당하는 사람들을 산출하기 때문이다”(112쪽)라고 일갈한다. 뭔가 후련했다. 좋음과 나쁨의 전복이 아닌 규범의 용도 폐기.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니 배려도 필요치 않은 상태. 누가 결혼했든 이혼했든 합격했든 실직했든 발병했든 서툰 연극 배우처럼 구는 짓은 이제 그만이다.'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는 것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회사에서 점심 회식 후 오늘(3월 8일) 여성의 날이라고 내가 언급했고, 그 상황에서 여성전용주차장 폐지되었다고 차장님(남성)이 말했다. 그 말이 화두가 되어서 여성들의 의견이 분분해졌다. 이렇게 흘러간 대화 맥락에 이후에도 계속 기분이 나빴는데, 이 글을 읽고 겨우 다잡는다. 지독하고 지겹게 익숙한 흐름이다.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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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낯설고 익숙한 상황, 이야기의 전후 맥락을 살피기보다 자신을 불쑥 내세우는 남성성의 노출에 난 또 찔렸다. 이번엔 정신을 집중해 말했다. 내 몸을 통과한 폭력의 기억에 대한 가치 폄훼를 바로 잡아야 했다. 당신의 발언은 내가 폭력의 당사자여도 문제, 아니어도 문제다. 용기 내어 자기 아픔을 터놓고 그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감응한 사람들에 대한 결례이자 업신여김이다. 폭력의 피해를 개인의 박복과 불운으로 취급하는 것, 수치심을 심어주어 침묵을 강요하고 사적인 문제로 돌리는 관습이 얼마나 많은 폭력을 양산하고 방치하는지가 오늘 강의 주제라고 정리해주었다.

 

물론 냉정하고 초연하지 못했다. 맥없이 터진 눈물을 꾹꾹 누르며 말했고 그는 주저 없이 사과했다. 자신이 강의 중간에 들어와서 앞의 이야기를 못 들었고 인문학을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라서 그렇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량한 눈매를 가진 그의 사과를 의심하진 않지만 그럴수록 그의 언행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의 내용 파악이 어렵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기면서도 스스로 말하도록 허락했고 기어코 한 수 가르치려 들었으므로.'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분명 해야할 공부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슬픔을 거세하도록 종용하는 사회가 자주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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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간 아이가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 다음 날, 빨래를 개키다가 멈칫했다. 아이가 입던 양말이랑 팬티가 손에 잡혔다. 사람은 가고 없는데 옷가지만 남아 있는 게 영 이상했다. 당분간이겠지만 임자 없는 옷들.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는 ‘최초의 빨래’를 생각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처음 돌아간 세탁기에서 나왔을 옷들. 아이가 수학여행 가기 전 벗어놓은 허물들. 그것을 빨고 말리고 개켜도 입을 사람이 더는 없음을 알았을 때, 참사 이전의 일상을 완강하게 간직한 그 옷들은 다시 젖어가지 않았을까.'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평범한 사람들의 각성과 저항의 서사로 빛난다. “아이랑 함께 했던 공간과 시간을 아이 없이 모두 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213쪽)는 사실에 인생 초보가 된 사람들.'



우리는 왜 살수록 빚쟁이가 되는가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가난은 상대적이나, 한 존재에게 중요한 것들을 뺏어간다. 밥부터 포기시키고 밥이 매개하는 관계와 건강을 무너뜨린다. 가난은 말을 가로챈다. 감추고 싶은 것은 강제로 노출시키고, 말하고 싶은 것은 들어주지 않는다. 먹고살기 바빠 일일이 사정을 말할 기회가 없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아마 그건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에게만 발언권이 주어졌기 때문일 거다. “성실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실했다가 개죽음을 당한”(189쪽)이들은 말이 없다. 특정 지역이 사교육 시키기 좋다는 말. 사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득권층이 된 이들의 언어일 것이다. 사교육에 실패했거나 애초에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말은 배제됐다. 재개발이 지역 발전에 좋다는 말도 마찬가지. 매매차익으로 부를 축적한 중산층과 그것을 조장한 토건재벌의 말이다. 쫓겨난 원주민의 말은 무음 처리다.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생산ㆍ유통 된다.'



글쓰기는 나와 친해지는 일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지금까지 제 글이 이상하고 못났던 것은 배움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어요. 필사를 하지 않아서, 단어를 많이 몰라서, 독서량이 부족해서. 그게 아니더라고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서였어요.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고독과 외로움이 괴로워서. 그럴 때 늘 찾았던 친구들, 드라마, 영화, 책이 문제였어요. 나 자신과 생각보다 서먹한 사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알려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좀 합리적이 되라고 말하는 변호사, 네 병은 내가 안다고 말하는 의사. 그걸 꼭 알려주지 않으면 하나도 모르고, 알려주어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은 이 시대의 전문가들이다.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기 위해 진득한 노력을 기울이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자기 지식으로 성급히 단순화해버리는 재주에만 능하다.'


'합리성으로 포획되지 않는 삶, 실패로서만 확인되는 앎이 있다. 그것은 나를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아내의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남편이 정작 아내의 말을 듣지 못하듯이, 어떤 목표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성실함의 중단, 합리성의 거부를 실천한 바틀비처럼 나도 성실함과 합리성의 스위치를 몸에서 꺼두어야 할까 보다. 그래야 사람이 보일 것 같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 예스24 채널예스 (yes24.com)

'용서는 신이 지급하는 쿠폰이 아니고 인간의 용기를 거름 삼아 자라는 나무라는 것.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용기 내어 정성스럽게 가꾸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살아있음 자체가 용기다. “삶은 계속된다. 한껏 이용하라. 네가 가진 게 별로 없다 해도 삶만은 네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 김승섭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 자주 가는 도서관에 없어서 상호대차를 해서 읽었다.

한 번 책을 빌리면 서너 권을 같이 빌리는 터라 읽기까지 꽤 묵혀두었던 책이다. 사실 책장을 펼치고 목차를 보았을 땐, 아차 싶었다. 내가 상상했던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어떤 인상을 가졌기 때문에 이 책을 고르게 됐을텐데 이상하게도 기억이 없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는 싶지만 딱히 약자, 소수자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들에 대해서 콕 집어 얘기하겠다고 하니... '읽지 말고 반납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왕 빌린 책이니 한 번 읽어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반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거의 다 읽었다.


이 책은 책 곳곳에서 공동체가 소수자들을 혐오로부터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소수자들에는 장애인,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노동자 등이 포함된다.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해지면 결국에는 공동체가 무너지게 된다는 거다.


저자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편견을 갖고 있는다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인의 삶에 대해 판단할 때 조심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걱정스럽다고 지적한다.


안전보건학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 결과를 수치로, 통계로 소수자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의 고통의 크기를 숫자로 보여준다.


보고싶지 않다고 외면하던 현실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편치 않은 주제임에도 술술 읽히던 건 저자의 조심스럽고도 단단했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연구 보고서가 아니라 책이기 때문에 더욱 더 신경써서 글을 쓴다던 저자의 말이 떠오른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나라는 사람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자들뿐만 아니라 타인을 대할 때 편견으로 쉽게 재단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상대방의 삶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는 것, 이해가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을 것.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나아가보기로 한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최근에 받은 선물 자랑

남편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신과 진료를 갈 때 동반한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같이 가자고 해서 그때부터 거의 매번 함께 가고 있다. 의사 선생님이 내 상담은 옆에서 공짜로(?) ㅎㅎ 조금 해 주기도 하시고 우리 부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다. 그제는 의사 선생님이 "자랑할 일이 있으면 자랑 많이 하세요. 좋은 거에요." 라고 하셨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워 뭔가 자랑하는 것이 낯 뜨겁고 어색하다. 실제로 자랑할 일이 별로 없기도 하고.

하지만! 요 며칠 우연치 않게 선물을 받게 되어 본격적인 자랑 타임을 가져본다. (사족이 길구먼)


1.조영주 작가님이 주신 도장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대부분 모름) 그믐을 시작하고 나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이 네임 이즈 김새섬. 유 노?

작가님이 도장을 선물로 주셨다. 옛날 이름으로는 도장이 몇 개나 있지만 새로운 이름이 새겨진 도장은 처음이다.

선물 상자에 붙은 테이프 문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겸손 1번에 자랑 10번. 네.자랑할게요!!

파란 천으로 만든 고운 도장집에 바깥에 '그믐'이라 쓰여있는 까만 도장은 손에 쥐어보니 그립감도 좋다. 테스트로 흰 종이에 찍어보고 소리 질렀다. 이건 정말 너무 예쁘잖아! 선물이라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밖에 모르는 나는 이런 센스쟁이들이 너무 부럽고 고맙다.


2.하정 작가님이 주신 레몬 갈갈이

처음 받고 이것은 다진 마늘인가 싶었는데 아니고 제주 유기농 레몬이다. 씨앗과 꼭지만 제거하고, 진공블랜더로 레몬을 통째로 갈아 만든 이름도 재미있는 레몬 갈갈이. (레몬 외 아무것도 안 넣었다고 하심.)

먹기도 전에 눈과 혀가 먼저 반응한다. 상큼한 봄의 기운이 물씬. 궁금증에 일단 한 스푼을 살짝 맛 보았는데 쓰지도 않고 상콤하니 너무 맛있어서 정신줄 놓고 숟가락으로 막 퍼먹었다. 투게더도 아니고 이러다 한 통 다 먹을 것 같아 일단 멈추고 집에 있는 꿀을 함께 넣어 따뜻한 레몬차를 만들었는데 너무 향기롭다. 맛도 맛이지만 그 정성이 너무 고맙다.


3.수북강녕 책방지기님이 주신 에코백과 책 

그렇다. 나는 서점 주인에게 염치없이 책을 선물로 받는 사람이다. 책을 수십 권을 사도 모자란 판국에 책방지기에게 책을 선물로 받다니. 그믐에서 고전읽기 모임을 하고 싶어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에 선뜻 옆에 있는 덴마크 큐레이션 서가에서 '햄릿'을 선물로 주셨다. 노린 거 아니고 그냥 말씀드린 건데! 마침 그 옆에 햄릿이 있었을 뿐이고! (믿어주세요T.T)

에코백은 붉은 컬러도 쨍하니 예쁘지만 거기에 쓰인 글귀가 너무 좋다. Arbeidsglaede '일터의 행복'이란 덴마크 단어라고 한다. '일터의 행복'이라니 이 무슨 '뜨끈한 팥빙수' 같은 소리요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일이 괴롭기만 할 이유는 없다.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장소에서 작은 기쁨과 소소한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멋진 단어가 새겨진 넉넉한 사이즈의 에코백. 감사합니다!

이런걸 합니다

작가님들 이따금씩 일일 책방지기 하시는 모습을 못내 부러워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해봅니다^^ 이번 주 설교에 행동해야 할 때, 기도만 하고 있지 말라셔서 ㅎㅎ 근처에 계시면 오세요~!


ㅡ 을지로에 위치한 그래서 책방 일일지기 씀.

952. 플린 이펙트 (제임스 R. 플린)

주요 선진국에서 평균 지능지수가 점점 상승하는 현상을 ‘플린 이펙트’라고 부르며, 이 책의 저자가 발견자다. 우리 뇌가 조상들보다 생물학적으로 달라졌다기보다는 현대인들이 받은 교육이나 그들이 처한 환경이 추상적 문제 해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그렇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며 저자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읽을거리로서는 다소 딱딱한 편.

플린 이펙트 - 지능에 관한 가장 지혜로운 대답
플린 이펙트 - 지능에 관한 가장 지혜로운 대답
951. 책을 불태우다 (리처드 오벤든)

도서관 관장이 쓴 분서의 역사. 어떤 의미에서는 책을 불태우는 인간들이야말로 책의 힘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자들이다. 마무리에서는 현대의 디지털 환경을 비판한다. 인터넷을 도서관이라고 치면 마치 이곳저곳에서 불이 타오르는 상황과 같다는 것. 디지털 기록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책을 불태우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책을 불태우다 -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산문집 『미세 좌절의 시대』를 냈습니다.

산문집 『미세 좌절의 시대』를 냈습니다. 몇 년간 신문들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책입니다. 작가의 말을 제일 앞에 썼는데 책 홍보 삼아 이 자리에 올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몇 가지 원칙들에 대해 적어봤어요. 서점 링크는 아래 달았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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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에 대하여

 

2016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매일경제, 그리고 몇몇 잡지에 칼럼을 백삼십 편 가량 썼습니다. 그 중 구십여 편을 추려 책으로 묶습니다.

칼럼들을 쓸 때 언젠가 책으로 엮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큰 주제를 염두에 두고 명확한 계획 하에 글을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청탁받은 원고 분량은 대개 한 편에 200자 원고지 10매 안팎이었는데, 마감일이 닥쳐오면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자로 풀었습니다.

경제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친 미국 언론인 주드 와니스키가 젊은 시절 《월스트리트저널》에 스카우트될 때의 일입니다. 논설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며 주저하는 와니스키에게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이 이렇게 말했다지요. “주드, 오만함만 있으면 된다네.”

저는 칼럼도 조금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200자 원고지 10매는 복잡한 사유를 풀거나 논증을 치밀하게 펼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말하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풍성하게 들기조차 어렵습니다. 거친 일반화를 하면서 의견을 제시해야 하고(인간에 대해서든 사회에 대해서든, 분석과 진단은 모두 일반화 과정을 거쳐 나옵니다), 정밀한 근거를 충분히 들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는 남들이 다 옳다고 인정하는 주장을 보충하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거나 토론 거리를 제안하고픈 욕심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칼럼 작업에 그 이상의 대단한 야심은 없어서, 마감일 즈음에 떠오른 단상을 정리한다는 기분으로 원고를 썼습니다. 관심사가 그리 넓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여 느슨한 일관성이 저절로 생긴 것 같기도 합니다. 한 줄로 정리해보라고 한다면(또 일반화를 하자면) ‘매사에 회의적인 사람이 점점 불확실해지는 시대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막연한 질문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이런 질문들이었습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016년에서 2024년 사이에 저는 세상이 퇴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고, 새로운 미디어 기술과 선정적인 구호들(구호와 일반화는 다릅니다)을 퇴행의 배후로 의심합니다. 새로운 기술과 구호들은 서로 대단히 잘 결합하는 듯 보였고 저는 그 단단한 결합을 보며 무력감을 삼키거나 우울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가 의심하지 않는 몇 가지 삶의 원칙들이 있는데, 막 용기를 주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어서 소박한 궁리의 기반은 되어줍니다. 제 원칙들은 개인은 존엄하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실은 믿음보다 중요하다 등입니다.

칼럼을 쓰는 일이 저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를 얻어 좋았지만 저의 본업이 아니라는 고민도 했습니다. 고민이 커져 칼럼 연재를 모두 그만두었는데, 아쉬움도 밀려오더라고요. 아주 나중에, 여유가 생기고 적당한 지면을 얻으면 또 짧은 산문들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다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희망찬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늘 지켜주는 아내와, 원고를 다듬어주시고 조언해주신 문학동네 정민교, 정은진 편집자님께 감사드립니다.

 

2024년 봄,

장강명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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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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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좌절의 시대
미세 좌절의 시대
지적 호기심을 위한 뇌과학 만화

학습 만화의 관건은 프레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의 이슈인데 균형 잡힌 선택과 집중으로 주제를 제대로 분류하고 요약 발췌한다. 잘 쓴 학습 만화.

지적 호기심을 위한 뇌과학 만화
지적 호기심을 위한 뇌과학 만화
사기 본기

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한 사마천의 이 史記(사기)는 신동준 선생이 번역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역사서는 서술 방법에 있어서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紀傳體(기전체)와 사건과 인물 등을 연대기 순으로 적은 編年體(편년체)의 형식으로 크게 나뉜다. 사마천의 사기는 기전체 史書(사서)의 古典(고전)이고 典型(전형)이 된다. 기전체 사서는 크게 제왕을 기록한 本紀(본기), 封(봉)국들에 대해 기록한 貰家(세가), 연대기로서의 十表(십표), 제도에 관한 八書(팔서), 인물들에 관한 기록인 列傳(열전)으로 구성된다. 오늘은 그 본기에 대한 내용이다. 이후의 사서는 사마천의 기술 방법을 절대 뛰어 넘지 못하고 이것을 답습한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여전히 신박한 편제처럼 보인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에 태어났고 고조선을 침략한 한무제와 거의 동시대 사람이다.


신동준 선생은 사마천이 유가적 사관에 가장 덜 오염된 역사가였다고 평한다. 그리고 사서오경 중의 하나였던 書經(서경)이 僞書(위서)라는 사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당대에도 유학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史實(사실)에 입각해 기술한 이 사기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2세기 朱子(주자)가 등장 명분론, 정통론적 역사관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이 조선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역사관으로 고착화되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마천은 전통적인 사농공상의 사회 질서에 반해 누구나 힘써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자가 되면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고 하는 실사구시의 세계관을 2000년도 훨씬 전에 표출하고 있다. 유방의 본기에 앞서 항우의 본기를 먼저 편제한 것 그리고 유방의 아내 여태후의 섭정을 열전이 아니라 여태후본기로 기술한 점 등이 현실주의자로서의 사마천의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본기는 오제부터 한나라의 한무제까지의 시기의 제왕들에 대해 기록했다. 夏(하)나라에 관해 신동준 선생은 그 역사적 실체를 부정하고 중국의 역사 시대는 殷(은)나라 즉 商(상)왕조부터 시작되었다고 단정한다. 은나라는 홍산 문화와의 연관성 때문에 더욱 관심이 깊다. 은나라는 청동기 문명이었고 그 청동기 문명의 난숙함 때문에 철기 문화를 수용하는 데 늦어져 주나라와의 경쟁에서 패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승자의 저주가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은나라를 멸망시킨 周(주)나라 그리고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는 秦(진)나라 모두 서쪽으로부터 출현한 세력들이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문화적 일원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중국의 고대사는 서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뒤늦게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설에 심증을 굳히게 한다. 


중앙집권적 관료제로서 帝王制(제왕제)라고 하는 정치 체제는 시황제가 만들고 한무제가 완성했다. 조선 역시 이와 같은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강고하게 구축한 사회였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1911년 신해혁명에 의해서 이 체제가 해체될 때까지 2000년간 뿌리 깊게 존속해 왔다. 현재 중국 공산당 체제도 전통적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연장 선상에 있다고 파악해도 무방할 것이다. 중앙집권적 관료제로서 제왕적 정치 체제라는 역사적 각인은 중국 인민의 의식, 무의식에도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1911년에서 신해혁명에서 1949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기까지의 시간은 중국의 유구한 역사에서 볼 때 정말 찰나의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의 의식 속에 자유주의 이념이 들어가 숨쉴 수 있는 공간과 여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서구식 자본주의 발전 모델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독자적 역사적 발전 경로를 밀고 나가기로 한 것 같다. 하지만, 명나라처럼 시장 경제를 포기하거나 쇄국 정책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 자본주의와 같은 공산당 일당 독재를 강화한 것이고 제왕제의 새로운 변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세계 경제는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문명이 획일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일론 머스크도 그와 비슷한 주장을 했다. 예를 들어 이슬람 문명이라고 하는 서구와의 이질적인 문명이 없었다면 중세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 고대의 지식이 서구 기독교 문명권에 전달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트윗을 날렸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공자도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 그렇게 천대를 받고 무시를 당하다 중국의 개혁 개방이 성공하고 난 뒤 공자학원 등의 이름으로 재창조 중국적 가치라는 소프트 파워를 세계에 선전한다. 또, 한자도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자기 멸시의 상징이었지만 그 한자가 있었기에 한나라와 같은 통일제국의 역사가 수 천년 유지되고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문화와 교양의 중요한 원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사마천의 사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각종 고사 및 그 성어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 중의 한 가지인 것 같다. 한국은 서구 해양 문명과 중국 대륙 문명을 적절히 조합할 수 있는 최적의 반도 국가의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에 제3의 문명 창조도 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동양사에 대한 관심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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