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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울리히 슈나벨)

현대인은 모두 정보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있어야 두뇌가 회복할 수 있다는 얘기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막상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니 그게 잘 안 된다. 어렸을 때는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가만히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마음이 괴롭다. 명상도 못하겠고 안식년도 못 갖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 독일 최고의 과학 저널리스트가 밝혀낸 휴식의 놀라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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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 속에 빛나는 진주: 하나의 밀알, 한 사람에게 행한 작은 실천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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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가끔은 감당하기 버거운 감동에 노출되고는 무얼 어떡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그저 넋을 놓고 가만히 멈춰있을 때가 있다. 나 역시 자극에 반응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임에도,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그 앞에서 얼어붙는 것밖엔 없다. 감히 헤아릴 수 없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이 경외감마저 드는 순간. 느닷없이 찾아온 전율의 순간. 묵직한 펀치에 제대로 한 방 맞은 것처럼 나의 이성도 감성도 모두 숨을 죽인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고요 앞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순간을 맞이한다.  


얼마쯤 지났을까. 세밀하게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다시 내 숨은 샘물처럼 터지고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마치 처음 태어나는 것처럼, 마치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모든 감각이 하나씩 깨어난다. 다시 눈을 뜨고 맞이하는 세상. 처음 보는 듯한 이 낯선 세상. 온기로 충만해진 가슴으로 보는 세상은 모든 게 새롭다. 모든 게 경이롭다. 텅빈 대기조차 온통 의미로 가득 차있는 것만 같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압도적인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건 실로 기적 같은 선물이다. 마지막 장을 뒤로 하고, 총 2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도로 책장에 꽂은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나는 그 무언의 기운에 압도되어 있다. 읽기 전과 후, 책이 꽂혀있던 자리는 동일한데,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달라졌다. 여전히 동일하나, 결코 동일하지 않은 나. 나의 영점은 또 한 번 미세하게 재조정된다. 그렇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약 140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내게 무언의 말을 건넨 것이다. 마치 ‘대심문관’에서 예수가 대심문관의 조롱과 파격적인 논리로 일관했던 일장연설을 잠잠히 다 듣고난 이후,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다가가 입을 맞춘 것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은 그림이라기보단 문자로 가득하지만, 그 특유의 장황한 문자들도 그를 가둘 순 없었다. 그의 글은 여전히 살아 역사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그 역사의 숱한 증인 중 하나가 되었다. 


감상문을 끝으로 독서를 마감하는 나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이어 두 번째로, 아니 한층 더 농밀하게, 압도적인 아우라를 선사한 문학작품이다. 두 작품은 공통점을 가진다. 모두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이전 작품들은 하나의 악기가 되어 마지막 작품에서 조화로운 오케스트라의 향연을 펼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 그의 전작,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의 특성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반복, 심화, 압축되어 나타나며, 각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의 근본적인 질문들, 이를테면 신의 존재와 인간의 본성, 죄와 벌의 의미, 선과 악, 개인과 사회, 자본과 권력, 군림과 억압, 허무와 혼돈, 그리고 구원과 소망과 사랑 등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심리학적, 사회정치학적인 굵직굵직한 질문들이 모두 등장하여 한층 더 복합적이고 심층적으로 이 작품에서 다뤄진다. 그의 전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읽고나서 아마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한 마디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수가 녹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작품만 읽어서는 결코 그 정수를 제대로 맛볼 수 없다.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이 맞춰지는 광경은 완성된 그림만 보는 사람들로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경이로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내 인생으로 들어와 내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예프스카야에게 바친다.” 


이 작품을 펼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다. 이 방대한 작품은 단 2년 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달 뒤 그는 운명을 달리했다. 속기사로 고용되었다가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된 안나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작품은 영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말년에 병약해진 그를 대신해 펜을 쥐었던 그녀를 통하지 않고는 이 작품은 그저 글이 아닌 말로만 남아 끝내 공중분해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총 2부 중 1부에 해당한다. 저자가 원래 계획했던 작품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 즉 2부는 영원히 그의 계획으로만 남아 그와 함께 묻혔다. 다시 말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완성도 높은 미완성의 작품인 것이다. 이는 또 한 번 안나의 존재감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1부조차도 완성되지 못했을 가능성까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헌사는 합당하다. 마땅히 그녀에게 돌려야 한다. 그리고 모든 독자들은 마땅히 그녀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실로 도스토예프스키의 펜과 잉크였고,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며 그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헌사에 이어 등장하는 두 번째 문장이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이다. 그의 세 번째 장편소설 ‘악령’에서도 성경 구절 (누가복음 8장 32-36절)이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내겐 그 성경구절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 열쇠였고, 나는 그 방식이 방대한 문자와 사상의 총합 저변에 깔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의도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근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요한복음 12장 24절의 의미, 즉 하나의 밀알과 죽음과 열매의 의미를 중심으로 해서 써보려 한다.  


하나의 밀알과 죽음과 열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라는 제목을 들어봤거나, 이 작품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이라는 사실, 나아가 줄거리까지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많아도 이 작품을 완독한 사람, 그리고 완독하고 나서 작품의 의도와 의미를 고찰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워낙 물리적으로나 사상적인 면에서 방대한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선경험이 부재한 사람이라면 그의 장황한 필체에 혀를 내두르며 십중팔구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는 중도에서 하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 문학작품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 등장인물의 낯설고도 긴 이름, 누가 누군지 도무지 헷갈리게 하는 애칭 등으로 거부감과 짜증이 밀려와 신경질적으로 책장을 확 덮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고백하건데 나 역시 동일한 이유로 중학생 시절 이 작품을 중도포기했었다. 


하지만 러시아 문학 맛을 본 사람의 경우, 그나마 진도를 뺄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권으로 나눠진 이 작품을 다 읽어낸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두 가지 대표적인 이야기, 즉 ‘대심문관’이라는 서사시와 ‘양파 한 뿌리’라는 우화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1권 끝에 ‘대심문관’이 등장하고, 2권 앞부분에 ‘양파 한 뿌리’가 등장한다. 이 작품을 추천 받고 마치 거대한 미션을 수행하기라도 하듯 큰 맘먹고 읽기 시작했으나 결국 중도포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1권 끝이나 2권 앞부분에서 손을 떼게 된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양파 한 뿌리’ 이야기를 알고 의미까지 곱씹은 사람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내겐  ‘대심문관’이 이 책의 핵심 사상을 대변하는 것처럼 함부로 떠들어대는 사람들보단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더 큰 그림을 이루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 의도에 조금은 더 근접한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대심문관’만 읽으면 마치 이 작품을 다 읽은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입장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라는 거대한 숲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 없이, 마치 그 숲의 절반만을 본 뒤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부풀리거나, 나아가 그 절반의 숲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나무 한 그루만을 가지고 세상의 빛도 보지 못한 나머지 절반의 숲까지도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이 작품을 간략하게나마 대변하는 이야기를 둘 중에 선택하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할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을 띠는 ‘대심문관’이 아닌, 비록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인 하나의 우화에 불과하지만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 ‘양파 한 뿌리’를 고를 것이다. 언제나 진리와 행복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지 않고, 소탈하고 사소한 일상에 광택 없는 모습으로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마치 '도둑맞은 편지'처럼. 


그렇다. 눈치 챘겠지만, 나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결국엔 무신론을 논리적으로 당당히 주장하던 자들까지도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추잡하고 더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유일하게 작게나마 빛을 발하는 희망과 구원은 뛰어난 머리로 떠드는 인류 전체에 대한 보편적이고 이론적인 사랑이 아닌, 이웃 한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개별적이고 실천적인 작은 사랑에 깃들어 있다고 해석한다. 이렇게 해석할 때, 즉 ‘대심문관’이 아닌 ‘양파 한 뿌리’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의도를 더 잘 대변해준다고 해석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세 가지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을 여는 성경구절인 요한복음 12장 24절의 존재와 의미가 명료하게 드러난다.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맺는 많은 열매는 거창한 사랑이 아닌 한 사람에게 행한 작은 사랑의 힘이다. 둘째, 전체를 여는 서문 격인 ‘작가로부터’에서 이 작품의 화자가 선택한 주인공이 이반이 아닌 알료샤라는 점을 별 의문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작가로부터’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의 주인공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 (알료샤)의 전기를 시작함에 있어…..”. 셋째, 알료샤가 수도원을 나와 활동가로 활약한다는 내용을 담은 저자의 (비록 땅에 묻혔지만) 2부에 대한 간략한 시놉시스 (이 역시 ‘작가로부터’에 묘사되어 있다)를 1부와 연결지으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며 2부를 포함한 작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비록 우리가 아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완성도 높은 하나의 방대한 작품이지만, 아무리 완성도가 높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2부를 위한 전주곡 역할을 하고 있음을, 그래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마침표가 찍혀지지 않은 작품임을, 나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모든 독자들이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 속엔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중심된 이야기의 정점에는 아무래도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아버지, 즉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죽음이 위치한다고 봐야 한다. 그는 살해당했다. 그것도 끔찍한 친부 살해다. 어찌 보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이 살인사건 이전과 이후로 구성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그의 죽음이 작품의 초반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할 수 있는데, 만약 이런 관점을 취한다면, ‘과연 누가 아버지를 죽일 것인가’ 내지는 ‘과연 어떤 사상이 피를 묻히고 어떤 사상이 궁극적 승리를 거둘 것인가’와 같은 내밀한 질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책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도 좋을 것이다. 참고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전개구도를 크게 나누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간략한 줄거리도 곁들인다. 


세 권 중 1권은 등장인물 소개 (굳이 비중을 따지자면, 표도르 카라마조프가 어떤 사람인지 윤곽을 잡을 수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설정한 표도르는 추잡하고 방탕하고 탐욕스러운 졸부요 여자와 돈에 눈이 먼 호색한이다)와 그들의 관계도,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소개함으로써 시작한다. 그리고 이반으로 대표되는 무신론 사상 및 그의 놀랍도록 매력적인 이성/논리가 압축된 ‘대심문관’으로 마무리된다.  


‘대심문관’은 세 형제 중에서 가장 학구적으로 뛰어났고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이반이 지어낸 서사시다. 그 내용은 그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이뤄지는데, 이단들을 잡아 가두고 처형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던 16세기 스페인 세비야에 예수가 조용히 재림하게 되고, 대심문관에 의해 감옥에 가둬진 예수에게 대심문관이 밤에 홀로 조용히 찾아와 조롱과 비난이 낭자한, 그러나 논리적으로 반박하기엔 거의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그의 섬뜩할 정도로 논리적인 추궁과 나무람으로 일관된 궤변을 내뱉은 독백이다. 악마와 손을 잡은 존재, 혹은 악마가 현현한 존재라고도 볼 수 있는 무리들 (교회와 종교지도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예수의 정신과 정반대로 돌아선 그들의 거침없는 타락을 꼬집는 메시지로도 해석 가능할 것이다)을 대표하는 대심문관의 독백이 주요 타겟으로 삼은 성경 본문은 마태복음 4장, 즉 예수가 사십 일 금식 이후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 받는 장면이다. 예수는 기적과 신비와 권위라는 키워드로 각각 해석할 수 있는 사탄의 세 가지 유혹에 대하여 하나님 말씀 (신명기)으로 대처하셨다. 그러나 대심문관은 그때 예수의 선택과 대응이 부적절했고 심지어 지혜롭지 못했다고 일갈하게 되는데, 그 주된 일갈의 저변에는 예수의 인간에 대한 기대가 과장되었고 인간이란 존재에 비해 너무나도 고결해서 허무맹랑하기까지 했던 존중과 사랑을 인간에게 준 나머지 그들에게 주었던 자유 (의지)는 그들이 감당하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이며, 감당할 만한 인간이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극소수에 불과할 테고, 그렇다면 결국 예수는 인간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논리가 흐른다. 한 마디로, 예수는 인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되었다는 것이고, 예수가 인간에게 주었던 자유 (의지)는 결국 그들을 옭아맸을 뿐이며, 그들에게 준 평화는 그들을 불안과 초조에 떨게 만든 나머지 구속하는 효과를 냈을 뿐이라는 논리다. 이 치명적인 논리는 ‘대심문관’을 정직하게 읽은 모든 독자들의 할 말을 잃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음 발췌하는 문장은 대심문관의 핵심 논리를 잘 대변해준다. 


“맹세코, 인간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고 저급하게 창조되었단 말이다! 인간이 네가 행한 것을 행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을 너무도 존중한 나머지 너는 마치 그를 더 이상 동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 꼴이 되어 버렸고, 이는 인간으로부터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인간을 자기 자신보다 더 많이 사랑했던 그자, 바로 그자가 말이다!” (민음사 번역본, 539페이지 하단) 


어떤가. 기가 막히지 않는가. 논리적으로 예수의 편에 서서 대심문관에게 반박을 해볼 텐가? 그러나 ‘대심문관’에서 예수는 끝까지 침묵을 고수하다가 대심문관에게 조용히 다가가 입을 맞춘다. 그리고 대심문관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감옥 문을 열고 다음과 같이 말하며 예수를 몰래 놓아준다. 


“어서 가라.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라. 두 번 다시 오지 말란 말이다. 절대로. 절대로!”  


이는 이성과 논리의 치밀함도 결국은 작은 실천적 사랑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해석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 서사시 속의 대심문관이 이반을 상징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 실제로 2권을 지나 3권에서 이반은 처절하게 무너진다. 이반의 무너짐은 대심문관의 굴복의 변주인 셈이다.  


2권은 내가 생각할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큰 그림 (써지지 않았던 2부를 포함한)을 이루는 숨은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보이는 부분이다. 마치 1권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독자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반의 사상에 대응하기라도 하듯, 신의 존재와 구원과 사랑을 대변하는 조시마 장로의 일대기로 시작한다 (굳이 ‘대심문관’에서 예수는 이 작품 속에서 누구를 대변하냐고 묻는다면, 조시마 장로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어서 ‘양파 한 뿌리’ 우화와 함께 알료샤의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지다가, 돈과 여자 문제로 이미 아버지와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고 조만간 무언가 큰 사고를 칠 것처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호색한, 첫째 아들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소설이 주는 긴장과 위기는 극에 달한다. 그리고 마침내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살인사건이 터지면서 소설은 절정에 이르고, 억울하게 살인혐의를 뒤집어쓰고 드미트리가 호송되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양파 한 뿌리’라는 우화는 단 한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이며, 재미있게도 아버지 표도르, 그리고 첫째 아들 드미트리와 삼각관계에 놓였던 그루셴카가 알료샤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평생 착한 일이라곤 하나 하지 않았던 한 여인이 죽어 지옥 불바다에 떨어졌는데, 그 여인의 수호천사가 불쌍한 마음이 들어 여인이 살아있을 때 행했던 선행 하나를 기억해낸다. 구걸하던 거지 여인에게 양파 한 뿌리를 주었던, 아주 사소한 사건이다. 천사는 그 사실을 곧장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은 그 천사에게 그 양파 한 뿌리를 들고 불바다로 가서 그 여인이 잡고 올라올 수 있도록 내밀라고 한다. 그래서 실행에 옮긴 천사. 불바다에서 고통 당하던 여인은 천사의 도움으로 양파 뿌리를 구원의 동아줄로 잡았고, 천사는 그 줄이 끊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여인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불바다 속 다른 죄인들이 자기도 구원 받겠노라며, 양파 뿌리를 잡고 올라가는 여인의 다리와 몸에 필사적으로 달라붙기 시작한다. 자기에게 달라붙은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면서 여인이 내뱉은 말은 다음과 같다. “나를 끌어올려 주는 거야. 너희들이 아니라. 이건 내 양파지, 너희들 게 아니야.” 그 순간 양파 뿌리는 끊어졌고 여인은 다시 불바다 속으로 떨어진다.  


개별적으로 이 우화를 보면 그저 충분히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다. 혹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을 차치하고 생각한다면, 이 우화를 선행과 구원에 대한 인과관계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라는 거대한 숲 (써지지 않은 2부를 포함한)의 맥락에서 이 우화는 그저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이 우화의 의미를 기독교적 해석과 무관하게 단순히 일차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양파 한 뿌리를 거지에게 건네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선행 (실천적 사랑)도 구원의 이유가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요지는 구원의 ‘성취’가 아닌 구원의 ‘상실’에 있다. 수호천사 덕에 구원의 기회가 열린 사건보다는 타자를 발로 걷어차면서 자기만 구원 받겠다고 소리친 여인의 결과, 즉 구원의 상실 사건에 이 우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보다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왜 구원을 잃어버렸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한다. 양파 한 뿌리의 작은 선행은 그 여인이 자기 몸에 달라붙은 다른 죄인들을 걷어찼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즉, 작은 선행이 구원의 이유라면 그녀의 구원은 유효했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양파 뿌리는 끊어졌다. 왜일까? 


이 질문의 답은 양파 한 뿌리의 작은 선행이 구원의 이유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가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답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구원이란 작은 선행만으로 받을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양파 한 뿌리’로 말하고자 했던 구원은 아마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오히려 더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지 않았을까. 양파 한 뿌리의 작은 선행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선행을 대표하는 일이자 인간이란 존재가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일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얻을 수 없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여인이 타자를 걷어찬 이유 역시 이러한 구원의 유일한 방법, 즉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다시 불바다 속으로 빠졌던 그 여인의 마음 속에선 양파 한 뿌리가 구원의 동아줄로 내려왔을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맞아. 양파 한 뿌리를 내가 거지 여인에게 건네 줬었지!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고마워 수호천사. 나는 구원 받기에 합당했었던 거야!”라고 말이다. 즉, 이 우화는 기독교적인 해석에 어긋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시키고 있는 이야기이며, 인간의 그 어떤 행위도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 해석은 곧장 ‘하나의 밀알’로 이어질 수 있다. ‘양파 한 뿌리’의 선행으로 상징되어지는 인간의 모든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선 사소하디 사소한. 생각해 보라. 양파도 작은데 그 뿌리는 얼마나 작은지) 실천적 사랑은 그 자체로써 구원의 척도는 될 수 없으나, 하나의 밀알로써 이후의 많은 열매를 위해 쓰임 받는다는 해석이다. 거기엔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으며 사랑이 있다. 진창 속에서도 구원의 빛이 임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에도 진주가 있기 때문이고, 그 진주는 바로 하나의 작은 밀알, 작은 실천적 사랑일 것이다.  


3권은 갈등/위기/절정을 지나, 마치 표도르의 살인사건과 무관한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는, 콜랴 크라소트킨과 일류샤로 대표되는 아이들과 알료샤와의 관계 회복 이야기가 거대한 폭풍 후 다시 찾아온 조용한 햇살과 잔잔한 바람처럼 펼쳐지며 시작된다. 이어서 이야기의 초점은 다시 이반에게로 향하는데, 1권 끝에서 독자들을 압도시켰던 그 치명적인 매력은 ‘양심’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매개물을 통과하며 조금씩, 그러나 철저하게 산산조각나기 시작한다. 그는 악마를 보는 등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육신까지 병약해지고 만다. 이반의 무너짐. 여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메시지가 숨어 있지 않을까. 이 무너짐을 위해 그토록 압도적이었던 ‘대심문관’의 서사시를 이반이 창조하도록 만든 게 아니었을까.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의 낙차가 더 큰 것처럼.  


그리고 이어지는 법정 공방. 이 작품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그리고 중도포기한 사람은 한 번도 맛보지 못했을, 이 작품의 또 다른 빼어난 보석이다. 검사와 변호사에 의해 치열하게 진행되는, 정곡을 찌르는 변론, 이어지는 증인들의 증언이 스릴 넘치게 펼쳐지는데, 재미있게도 이 마지막 챕터의 제목은 ‘오심’이다. 드미트리는 아무런 물적증거 없이 (21세기 현대적인 관점으로는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드미트리 옷과 피부에 묻은 피가 누구의 피인지 굳이 CSI 같은 과학수사대의 철저한 검토도 필요 없이 아주 단순한 DNA 검사만 하면 단박에 드미트리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이 쓰였던 19세기 말에는 그런 조사가 가능하지 않았다) 넘쳐나는 정황적인 증거만으로 공식적인 살인자의 혐의를 쓰고 유죄 판결을 받게 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갈 날만 기다리게 된다. 

 

여기서 드리트리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비록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이루는 거대한 두 축을 이반과 알료샤로 보고는 있지만, 정작 스토리를 주로 이끌고 가는 인물은 드미트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드미트리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눈이 머물고 그를 통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미트리는 이반과 알료샤와는 또 다른 존재다. 드미트리는 표도르와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데 반하여, 이반과 알료샤는 두 번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굳이 드미트리를 이반과 알료샤와 다른 배에서 태어나도록 설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셋 중에서 드미트리가 표도르를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이라는 점, 너무 많이 닮아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하게 여자와 돈 문제로 서로 대립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여기서 한 가지 추가적으로 재미난 사실은, 마치 선과 악을 대변하듯 설정된 알료샤와 이반이 같은 배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세 형제 모두 표도르의 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까지, 아니 표도르의 사생아이자 결국 그를 살해한 인물, 악의 화신 스메르쟈코프 역시 그의 씨에서 나온 열매라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네 아들들은 한 아버지 표도르의 분열된 자아 내지는 파생되고 분화된 열매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 형제를 모두 합치면 우리네 인간 군상을 대변한다고 볼 때, 카라마조프 가에 흐르는 피는 곧 우리 인간 안에 흐르는 피일 것이다. 곧 인간을 넘어서는 무언가 (신의 존재일 것이다)로부터 지속해서 등지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반역과 죄를 의미한다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앞선 네 장편소설에서 굳이 가장 비슷한 인물을 고르라고 한다면,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물론 확연한 차이점도 있다. 이를테면, 라스꼴리니꼬프는 단절된 세상에서 엉뚱하고도 위험한 사상에 도취되어 살인을 저지른 반면, 드미트리는 비록 타인의 눈에는 충분히 살인을 저지르고도 남을 정도로 과격한 호색한으로 비춰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살인자가 아니다. 오히려 드미트리는, 겉은 단순무식하게 보일 정도로 폭력적으로 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도 여린 인물이라고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 작품 속에서 그는 돈과 여자 문제로 분노하며 아버지와 심한 갈등을 일으켰던 인물이지만, 그 누구의 부탁이나 바람과는 별개로 명예심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한 사람으로부터 입은 은혜, 즉 타자의 작은 실천적 사랑을 기억하고 보답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사람을 죽일 정도로 폭력적인 분노의 벼랑 끝에 서있다가도 누군가의 한 마디에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 속에 숨어 있던 어린아이가 드러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드미트리는 세 형제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그래서 가장 우리의 모습과 닮은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드미트리는 가장 카라마조프적인 인물이자, 가장 인간다운 인물인 것이다. 


드미트리를 보고 라스꼴리니꼬프가 떠오른 이유 중 하나는 작품 마지막에 둘 다 시베리아로 떠나기 때문이다. 비록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죄, 드미트리는 살인 누명이란 점이 다르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둘 다 그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 행동을 진심으로 늬우치고 (회개), 한 여인의 사랑 (라스꼴리니꼬프에게는 소냐, 드미트리에게는 그루셴카)을 매개로 새로운 삶을 시작 (회심과 구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적나라하게 까발린 인간의 본성,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심연으로 곤두박질치는 타락, 몸과 영혼의 파멸, 그러나 하나의 밀알과도 같은 한 사람으로 주어지는 사랑,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희망, 그리고 마침내 구원에 이르는 여정. 이런 플롯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죄와 벌’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죽음은 각 등장인물 속에 숨겨졌던 사상들을 마침내 붉은 피처럼 선명하게 드러나게 만들어 저자의 메시지를 효과적이고 적나라하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 주었던 게 아닌가 한다. 또 한편으론, 결코 하나의 밀알이라고 할 수도 없는 표도르라는 인간의 죽음은 조시마 장로의 죽음 및 소년 일류샤의 죽음과 극적으로 대비됨으로써, 하나의 밀알이 맺게되는 열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통로 역할도 담당했다고 해석 가능할 것이다. 표도르의 죽음은 이반으로 의인화된 무신론과 차가운 이성 및 논리를 그의 몸에서 분리시키는 동력이 되어줌으로써 (이반은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진 않았으나, 표도르의 사생아이자 악이 의인화된 인물 스메르쟈코프에게 ‘모든 게 허용된다. 즉 살인도 허용된다’는 사상을 간접적으로 주입시켜 살인을 조장했다는 혐의를 스스로 부인할 수 없어 정신분열증에 걸리고 만다) 하나의 밀알과 대척점에 있는 인간의 사상은 죽어서도 오로지 파멸만을 낳을뿐, 그 어느 생명의 열매도 부재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대신 조시마 장로와 일류샤의 죽음은 각각 이반과 대척점에 놓인 알료샤와 열 두명의 소년 친구들을 세상에 남김으로써 더 크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만약 도스토예프스키가 조금 더 살아 2부가 그의 초기 계획대로 만들어졌다면, 알료샤와 일류샤가 맺게 될 많은 열매에 대해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을까. 써지지 않은 도스토예프스키의 2부가 못내 아쉽다.  


표도르의 살인사건 덕분에 이 작품은 범죄소설, 혹은 추리소설의 플롯까지 취하게 되었고, 스릴과 긴장이 주는 흡입력은 이 방대한 작품 안에서 자칫 길을 잃은 채 중도포기의 기로로 접어든 돛단배와 같은 독자들에게 마침내 불어온 순풍과도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이 작품이 앞선 네 편의 장편에 비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두께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더 빠른 속도로 읽어낼 수 있었다. 몰입도에 있어선 다섯 장편 중 가장 압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중도포기했던, 구름처럼 허다하게 많을 잠정적 재독자들에게 이 감상문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정말 어마어마한 대작을 읽어냈다. 이 길고 긴 감상문까지 마치고 있는 나를 보니, 나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이토록 방대하고 심오한 문학작품을 만난 건 살면서 누릴 아주 드문 축복이라 생각한다. 진창 속에서도 진주를 발견하여, 온갖 추잡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사랑과 구원의 통로를 비추어, 읽는 독자의 마음을 결국엔 따스하게 만들 줄 아는 도스토예프스키. 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자 축복이다.  


#김영웅의책과일상


* 도스토옙스키 처음 읽기

1.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811

2.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815

3.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879

4. 미성년: https://rtmodel.tistory.com/928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rtmodel.tistory.com/1068

6.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087

7.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153

8.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159

9.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171

10.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174

11.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https://rtmodel.tistory.com/1077

12.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177

13.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이병훈): https://rtmodel.tistory.com/1194

14.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58

15.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62

16.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by 도제희): https://rtmodel.tistory.com/1388

17.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396

18.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429

19. 악몽 같은 이야기: https://rtmodel.tistory.com/1435

20. 악어: https://rtmodel.tistory.com/1436

21. 인간 만세!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488

22.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by 슈테판 츠바이크): https://rtmodel.tistory.com/1625

23.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by 조주관): https://rtmodel.tistory.com/1644

24. 백야: https://rtmodel.tistory.com/1659

25. 뽈준꼬프: https://rtmodel.tistory.com/1702

26. 정직한 도둑: https://rtmodel.tistory.com/1703

27.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https://rtmodel.tistory.com/1704

28. 꼬마 영웅: https://rtmodel.tistory.com/1706

29. 약한 마음: https://rtmodel.tistory.com/1707

30.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https://rtmodel.tistory.com/1711

31. 농부 마레이: https://rtmodel.tistory.com/1717

32. 보보끄: https://rtmodel.tistory.com/1719

33. 백 살의 노파: https://rtmodel.tistory.com/1721

34. 우스운 사람의 꿈: https://rtmodel.tistory.com/1722

35. 온순한 여자: https://rtmodel.tistory.com/1723

36. 예수의 크리스마스 트리에 초대된 아이: https://rtmodel.tistory.com/1724


*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1.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690

2.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696

3.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739

4.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744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합본 특별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합본 특별판)
지식이 전하는 감동을 나눠주는 책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고른 책은 항상 리스크가 있다. 그러나 제목이 너무 뭉클해서 집은 책이, 정말로 감동이 있는 책이라 뿌듯하다. 고인 1명과의 가상 인터뷰까지 포함해서 13인의 석학과 저자가 나눈 대화집인데, 나의 조야한 글솜씨보다 옮긴이 전대호씨가 "책을 번역하면서 두어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한 대목만 언급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이란 알게 되면 즐거우면서도 항상 '어려운 학문'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시작부터 작가는, 이 최고의 지성인들이 남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고, 세상을 알기 위해 헌신하고 굴하지 않는 끈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실 읽다보면 상당히 성깔이 느껴지기도 하고, 비관적인 이야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삶을 바쳐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들이 느낀 감동을 이렇게 쪼개줄 수 있나보다. 인상적인 문장이 정말 많아서 다 옮길 수가 없다.

원서가 2012년 발간이라, 여기 나온 연구들이 어찌되었는지 조금씩 찾아보고 싶다. 당장 다 찾아볼 수는 없지만 크레이그 벤터로 검색을 하니 100퍼센트 인공 합성 박테리아를 이미 만들어냈고(!) 와인버그 박사는 고인이 되셔서 여러 가지로 놀라움이 교차한다. 천천히 관련 서적을 찾아보면서, 이 책이 나눠준 따스함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 최고의 과학자 13인이 들려주는 나의 삶과 존재 그리고 우주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 최고의 과학자 13인이 들려주는 나의 삶과 존재 그리고 우주
942.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

손님들이 찾는 책을 구해주는 대신 수수료로 그 책을 찾는 사연을 묻는 헌책방 주인장의 이야기 30편. 딱 K-힐링 소설의 마케팅 문구인 것 같지만 이게 실화다. 세상에 정말 이런 공간이 있구나. 속편도 나왔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책이라는 물건에는 마법이 깃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대형서점보다는 도서관 혹은 헌책방에서 더 강력하게.

헌책방 기담 수집가
헌책방 기담 수집가
941. 스타메이커 (올라프 스태플든)

올라프 스태플든은 스토리텔링이 빼어난 작가는 아니었다. 철학 박사였던 그의 소설들은 사변에 비해 서사가 약한데 이 작품은 그런 특징이 극대화되었다. 그렇다고 스태플든의 작품들에 담긴 사변의 깊이가 그 자체로 엄청난가 하면 ‘인간성을 낯설게 보기’라는 문구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최초의 아이디어와 경이감을 칭송하는 독자들은 높이 사겠지만 서사를 중시하는 독자는 이게 뭐냐고 할 테고 나는 후자에 가깝다.

스타메이커
스타메이커
순간의 선택

그러니까 한의원이 아니라 정형외과를 갔어야 하는 거였구나; 자칫하면 내일 결근하겠음.

코로나가 아직 한창일 때 폭염 중에 냉장고가 퍼진 적이 있었는데, 누구나 선망하던 냉장고를 파격할인가에 잘 주문해놓고 거의 다 왔는데 하루 미뤄졌다고 취소한다고 하면 원래 온다하던 날짜에 올 줄 알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냥 취소처리되고 말은 적이 있었다. 놓친 건 어쩔 수 없고 빨리 오는 제품을 기준으로 얼추 비슷한 4door로 맞춰 배송받았는데, 역시 물량이 없어 결국 원래 제품 늦어진 것 보다 더 늦게 배송받았던 해프닝이 떠올랐다. 그 냉장고는 작동은 되고 겉보긴 괜찮으나 아직도 소음을 내면서 가동중이다. 병원도 조언받은대로 근육이완제를 처방하는 양방을 갔어야 했는데 또 돌아서 가버렸구먼. 아뿔싸~


ㅡ 이미 너무나 많이 돌아다닌 자 씀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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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성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을까. 서로 다른 각 시선들의 합이 존재를 온전히 재구성할 수 있는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물체의 속성을 파악하고 분류하려 한다. 근본적인 구조를 찾아 그것을 이해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것이 예측할 수 있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총체성을 획득하고 조화로운 질서를 찾으면 다음에 올 것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이성은 늘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그렇게 구축한 세계 밖에도 분명 무언가 있다.


튜링은 바로 이런 무작위성이 지능을 가진 기계의 관건이라고 믿었다. (p. 229)


마음, 감정, 생각, 눈에 보이지 않는 대부분의 것들은 환원 불가능을 내포한다. 그러한 절망에 매혹된 폰 노이만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내보이고 쓴다. 상대가 온전히 이해해 주리란 믿음을 가지고. 이성이든 직관이든 인간은 무언가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퍼즐의 빠진 구석을 바라보며 어떤 조각이 있어야 할지(혹은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없던 믿음보다 사라진 믿음이 더 나쁜 까닭은, 성령이 저주받은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나며 생긴 구멍처럼 떡하니 공백을 남기기 때문이다. (p. 112)


수학에 통약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공통 기준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값을 말한다. 총체성을 파악하는 시선이나 대상을 구조화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의 이해는 달라진다. 그러나 이해가 부족할 때가 더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서로 다른 레이어를 모아 겹쳐 들면 모두가 어느만큼은 받아들이는 모양이 나올지 모른다. 다른 것을 태생적으로 증오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직 공생의 올바른 방법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운 상태라고 믿는다.


이 코드에 관해 아직 규명 못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텐데요. (p.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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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하민 라바투트는 매니악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추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끊임없는 소통과 공생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악마diable의 어원은 분열자이다. 인류가 가장 두려워한 적의 실체는 함께하지 못함이 아닐까. 이해한다는 말은 진술문이 될 수 없을지언정 수행문이 되어 우리를 다가서게 만든다.

매니악
매니악
일이 힘들고 즐겁지 않을 때[내가 만난 名문장/김새섬]

3월 4일자 동아일보 "내가 만난 명문장" 코너에 개브리얼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중 한 문장에 관해 글을 올렸습니다.


온라인 기사 읽기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익숙한 작법서이지만 소설가 문지혁 작가가 번역해서 괜시리 주목을 끈다. 북미권 작법서를 읽는 가운데 급텐션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예시로 드는 영미 소설의 낯섦. 도입부는 나쁘지 않은데 역시나 온갖 예시들을 접하다가 길을 잃었다.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24-037 | 안 세르, 가정교사들

은행나무 (240307~240307)


❝ 별점: ★★★★

❝ 한줄평: 다채로운 색깔을 품은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소설

❝ 키워드: 가정교사 | 파티 | 사냥 | 욕망 | 감시 | 관찰 | 관음 | 시선


✦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면서도 동시에 두렵고 섬뜩하기도 한 이야기. ‘시선’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서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요! [📝 2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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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저녁 이네스가 돌아올 것이다. 셋이서 카드놀이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내일, 아니면 한 달 뒤, 혹은 일 년 뒤, 또 다른 낯선 남자가 그들의 내밀함 속으로, 갑자기 마법처럼 열리는금빛 철문 뒤에 놓인 밤처럼 감미로운 이 덫으로 걸어 들어오게 될지. (p.33)


✴︎ 

그리하여 결국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폭탄이 이 집 위로 떨어져야 삶이 갑작스러운 전환을 맞고, 철문이 활짝 열리고, 나무들이 뽑히고, 집이 자리를 바꾸면서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게 되는 걸까?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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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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