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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엘리자베스 문)

다 읽고 난 지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프다.

루 애런데일의 선택은 최선이었을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그를 바라보는 톰, 루시아, 마저리의 마음은 어떨까? 물론, 루는 수술(치료?)을 통해 꿈을 이루었다. 결과적으로 그에게는 잘된 일이다.

루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경위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는 처음에 자신의 지금 모습을 잃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 두려워했다. 그러나 일련의 경험들 속에서 그는, 자폐는 그의 전부가 아니라 그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수술 같은 것이 아니어도 자신은(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더 이상 변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를 시도하기로 선택한다.

'나는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 내 경험을, 그저 읽은 책의 내용을 기억하듯이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나는 기억에 따르는 감정들을 간직하고 싶다.'(395쪽)


그랬던 그가 왜 시도하기로 선택했는가? 이어지는 내용은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장면이다. 병이 낫기를 기다리며 치유의 연못 옆에 가만히 누워 있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너는 낫고자 하느냐?' 루는 처음에 그 질문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낫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가 왜 치유의 연못에 갈 것인가? 혹은 그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이 원한 것일까? 설교를 들으며 그는 자신은 낫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심지어 자신이 받아들여진다고 믿었던 교회에서마저 어쩌면 '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인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목사와의 대화에서 그는 묻는다. '그렇다면 저는 낫고자 해야 합니까? 나을 방법이 없어도요?' 그는 혼란스럽고 괴로워한다.


수영을 배우고, 자전거를 배우던 기억. 그게 루에게 심경의 변화를 가져온 것일까. '이번에도 나는 두렵다. 허나 만약 내가 이 물결, 이 생물학적인 자전거를 타낸다면, 나는 비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이 얻을 것이다'(443쪽)

'만약 내가 변한다면, 그리고 변화가 그들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라면, 어쩌면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꼭 어느 한 가지가 아니다. 모든 것들, 모든 가능성들이 한번에 존재한다. "나는 지금과 같지 않을 거야." 나는 소리 내어 말하고, 편안한 중력을 놓고 그 확실함 밖으로 나와 불확실한 자유 낙하를 향해 날아오른다.'(444쪽)


마저리는 그에게 "루, 너는 지금 이대로도 좋아. 나는 지금 네 모습이 좋아. 다른 사람들처럼 되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말을 들었기 때문에 루는 조금 더 자신의 선택을 자신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야 한다고, 자폐를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면 그는 거부했을 것이다. 원하지 않는 병자를 연못가에 데려다 놓는 것처럼. 그러나 루는 스스로 변화를 선택했다.

달라진 루를 보며 아마도 마저리는 매우 큰 상실감을 느꼈겠지만, 어쩌면 내가 슬픈 감정이 든 이유도 비슷한 것일지 모르지만, 루 애런데일의 입장에서는 그것 또한 폭력일지 모른다. 그대로 머무르든, 변화를 향해 나아가든, 그것은 루의 선택일 때 의미가 있다. 타인의 인정이나 강요가 아니라.


이 책은 우연히 고른 책이지만, 지금 읽기로 한 데에는 앞서 읽은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의 영향이 컸다.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을 이야기하는 그 책과 연관해, '침팬지와의 대화(로저 파우츠 외)'를 읽으며 동물해방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수 있었고 장애해방과 연관되리라는 생각에 다음으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위 책에 수나우라 테일러가 피터 싱어와 인터뷰한 내용이 나온다. 싱어가 말한다. "저는 사람들이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요. '당신이나 당신 아이의 장애를 치유할 수 있고, 그 비용도 겨우 2달러에 부작용도 전혀 없다는 것이 보증된 알약을 누군가 준다고 해도 그 알약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글쎄요. 제가 볼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약을 사용하려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235쪽)

수나우라 테일러는, 싱어의 질문이 비장애중심주의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루는 약을 먹기를 선택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책(어둠의 속도)은 비장애중심주의적 편견을 드러내는 책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테일러는, '장애가 우리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루에게서도 드러난다. 테일러는 장애가 있는 상태가 완전하다거나 비장애의 상태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불완전한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다른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마커스의 말-장애는 예술이다. 그것은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다.-은 장애가 단순히 결핍이라는 생각에 저항한다. 게다가 그의 말은 우리가 효율성, 진보, 자립, 이성을 반드시 중심에 두지는 않는 삶의 방식들에서 가치를 찾도록 촉구한다. (...) 장애는 해방적일 수도 있고, 신나는 일일 수도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정상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지속적인 공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유의 장소일 수도 있다.' (238-239쪽)

뒤이어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하지만 확실히 자신에게 있는 장애를 즐기지 않는 장애인들, 장애를 "창조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비웃는 장애인들, 치료된다는 말에 크게 기뻐할 장애인들은 많을 것이다. 이는 비단 비장애중심주의와 내면화된 억압 때문만이 아니라, 상실, 고통, 개인적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서 보듯, 테일러가 장애로 인한 불편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테일러가 싱어의 질문을 경계하는 이유는, '치료의 문제는 자신의 장애에 대한 자긍심 대 의료적 개입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테일러는 여기서 앨리슨 케이퍼의 말을 인용한다. "치료에 대한 욕망이 꼭 불구를 반대하는 입장이나 장애에 대한 권리 및 정의를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47쪽)

여기에서 테일러는 문제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짚어낸다. '많은 사람들이 치료받기를 원하고, 장애를 갖고 싶어 하지 않고, 장애로 인해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문제시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사실들이 뜻하는 바가 장애란 객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런 감정들만이 장애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이라고 보는, 아주 뿌리 깊고 만연한 전제 자체다.' (248쪽)


그러므로, 실험적인 치료를 받기로 루가 선택했다고 해서, 자폐는 치료되어야 할 장애이며 불완전하고 비정상인 상태이다, 라고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루가 그런 선택을 할 때에도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394쪽)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루의 선택은 두려움을 딛고 새로운 배움으로 발을 내딛는 것, 수영을 배우거나 자전거를 배우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이것은 비장애인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 오후 책을 다 읽은 후,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안타깝고 슬펐는데 글을 쓰다 보니 명확히 정리가 된다. 루는 선택을 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맞았다.(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슬퍼할 게 아니라, 그 사실을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것이다. 몇 번이고 넘어지다가 자전거를 타게 된 아이를 보면 그러하듯이.

어둠의 속도
어둠의 속도
가여운 것들

언제부턴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영화는 보는 게 힘겨웠는데 현란한 의상과 미술에 정신이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엔딩 타이틀 내내 대체 저 폰트는 뭘까 번뇌함.

가여운 것들
가여운 것들
948. 투모로우랜드 (스티븐 코틀러)

곧 나오리라 예상되는 신기술들을 소개하는 책. 소행성 광산업이나 바이오닉 맨처럼 당연히 등장하겠지 싶은 기술도 있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처럼 개인적으로 글쎄다 싶은 기술도 있고, ‘착한 모기 만들기’나 ‘대통령 DNA 해킹하기’처럼 으스스한 이야기도 있다. 놀라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던 것은 스테로이드에 대한 대목이었다. 책에 따르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악명은 상당 부분 과장되었거나 아예 근거가 없다고 하는데 얼마나 믿을만한 얘기인지 모르겠다.

투모로우랜드 -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위대한 여정
투모로우랜드 -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위대한 여정
947.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을 쓴 아시자와 요의 단편소설집. 『아니 땐…』과 달리 초자연적인 소재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그 못지않게 어둡고 찜찜하고 인상적이다. 오랜 시간 따돌림을 당하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명한 판단을 못하게 된 이들이 범죄에 휩쓸리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차갑게 그린다.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60. 강남 페일에일과 떠돌이 생활

서울로 돌아와서는 HJ와 부동산 이야기를 한참 했다. 나는 서울을 떠나 부산이나 치앙마이에서 살자는 얘기를 했다가 면박을 들었다. 집을 살 궁리를 해야지, 무슨 소리를 하냐는 것이었다. 그렇지. 나도 반성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자. 세입자의 임기 기간이 끝날 때까지 따로 살자. HJ가 제안했다. HJ는 친정에서 살고 나도 부모님 댁에서 살거나 아니면 문학 레지던시들을 돌아다니면 되지 않을까. 듣다 보니 가능할 것도 같았다. 아이가 없고 내가 문학 분야 종사자인 점을 이참에 한번 이용해 보자는 마음도 들었다.

올해 연말에는 서울프린스호텔, 내년 상반기에는 연희문학창작촌, 내년 하반기에는 부악문원…….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해보면 어떨까. 많이 힘들까? 그런데 우리가 가진 돈으로 서울에 집을 살 수 있기는 한가?

부동산과 투자 문제에 몰두해 있어서 단편소설은 마감을 어겼는데도 한참이나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현대문학〉이 단편소설 한 편에 매긴 고료가 80만 원이었다. 치솟은 전세 값 앞에, 도무지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내가 노트북 화면을 보며 미적대는 동안 HJ는 주식 투자로 소액을 벌었고 금도 매입했다. 암호화폐 투자도 고민하고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놀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점점 익숙해지는 중이라고 했다.

HJ는 한동안 배달 플랫폼에 등록해서 음식 배달을 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는데, 주식 투자 쪽이 수익이 더 나았다. “아니, 그러면 배달하시는 분들은 주식 투자를 하지 않고 왜 배달을 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그리고 그 답에 대해 생각하며 우리는 우울해졌다. 투자할 돈이 없어서겠지. 이건 뭔가 세상이 단단히 잘못된 것 아닌가?

우리는 창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도 출판사를 차리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다. 출판사를 차린다 해도 다른 작가의 책을 내거나, 내 소설이나 논픽션을 거기서 출간할 마음은 없었다. 나는 2017년에 재미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소설을 소개하는 무료 서평집을 낸 적이 있다. 그걸 시리즈로 낼 계획이 있다. 2017년에는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문학 단행본을 낸 적이 없는 출판사에 외주를 줬는데 결과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내가 출판사를 차려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우리는 출판사뿐 아니라 북 카페도 차리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했다. HJ가 그런 공간을 꾸미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오늘의 집’ 사이트에 가서 남의 집을 구경하고, 오설록 티뮤지엄에서 그런 공간과 사회공헌사업을 연결하는 일에 대한 희망을 밝힌 적도 있다. 우리는 북 카페를 차리게 되면 이름은 ‘그믐’으로 짓자고 얘기했다. 그 단어가 좋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입장문을 비판하는 짧은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다. 별 얘기도 없었고 내용을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 입장문에서 나에 대해 하는 말이 틀렸고, 출협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작가들에게 인세 누락이 결코 예외적인 일탈이 아님을 담백하게 지적했다.

그런데 이 글이 하루 사이에 소셜미디어와 여러 인터넷 게시판들에 어마어마하게 퍼졌다.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젊은 세대가 출협을 이렇게 싫어했나? 각종 협회라는 조직들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도서정가제 탓이었을까? 출협에서는 내게 글을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거절했다. 자업자득이지, 뭐.

단행본 원고 납품이 늦어지는 데 대해 사과하고 계약을 해약해도 좋다고 메일을 보낸 출판사 6곳 중 4곳에서 답장이 왔다. 기다리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중 한 곳에 대해 내 쪽에서 해약을 요구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였는데, 전에 내가 계약한 원고의 청소년소설 버전을 보낸 적이 있다. 그에 대해 이 출판사는 그 원고가 좀비 소설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며 길게 비판했다. 그때는 별 시답잖은 규칙도 다 있네 하는 정도로 그냥 넘겼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 출판사와 나는 문학적 지향점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앞으로는 내가 쓰려는 글의 방향을 이해하는 편집자와 일하려 한다. 그 정도 협상력은 갖춘 것 같다.

딘 버넷의 『행복할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읽었다. 앞부분은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겼는데 뒤로 갈수록 정독하게 됐다. 결론에 이르러 저자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행복의 비결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사랑 역시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여러 사람들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통 요소들은 있다. 집, 유머, 다른 사람의 인정, 성공 등이며, 사랑과 섹스도 그런 요소 중 하나다. 일과 돈도 어느 선까지는 중요하다.

〈현대문학〉에 보내야 하는 단편소설은 정말 더 늦으면 안 되는 최후의 순간에 겨우 다 썼다. 실제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 시간은 이틀 반 정도다. 마지막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겨우 마감했다. 다만 그렇게 벼락치기로 쓴 것에 비해 작품 자체는 썩 마음에 들었다. 확증 편향을 일으키는 기술들을 비판하는 SF 우화였다. 추리물 요소도 조금 첨가했다.

그렇게 소설을 탈고한 날 저녁 모 신문 문학출판 담당 기자들을 만났다. 몇 년 전부터 그 신문 북섹션에 〈장강명의 벽돌책〉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번에 연재 담당자가 K 기자로 바뀌었다. K는 내 입사 동기다. 내가 수습기자로 경찰서에서 가장 먼저 만난 기자가 그녀다. 내가 소설가가 된 뒤에 내 인터뷰를 해주기도 했다.

K와 후배 기자 두 사람과 함께 칼국수 가게에서 만나 보쌈과 파전을 먹으며 소폭을 만들어 마셨다. 우리는 장류진 작가의 신작과 암호화폐, 웹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자리는 그 신문 문학출판팀 회식 자리이기도 해서, 원치 않게 그곳 선배 기자들에 대한 뒷담화도 많이 들었다. 후배 기자 두 사람은 모두 암호화폐 투자 경험이 있었다.

HJ가 아닌 사람들과 술을 마셔야 한다면 기자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가 제일 즐겁다. 기자들은 빠르고 직설적이다. 내가 원래 그런 대화를 즐겼던 걸까, 아니면 기자 생활을 하다가 그렇게 된 걸까. 기자들은 술도 빨리 마신다. 그 자리의 막내 기자도 소폭을 아주 빠른 속도로 만들어 돌렸다.

칼국수 가게에서 나와 맥주를 마시러 갔다. 근처에 있는 브루어리304라는 수제맥줏집에 가고 싶었으나 정기 휴일이었다. 그래서 생활맥주 서대문경희궁자이점에 갔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프랜차이즈다. 강남 페일에일과 소나무 IPA를 마셨다. 소나무 IPA를 마실 때쯤에는 이미 취해서 맥주 맛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전용 잔에 그려진

2호선 강남역 로고를 보면

맛있는데 어지러워요


돈의 속성 (300쇄 리커버 에디션, 양장) - 최상위 부자가 말하는 돈에 대한 모든 것
아무리 위대한 정치인이나 유명한 연예인도 자기 밑은 자기가 닦을 것이다. 저명한 학자라도 그와 다른 의견을 가진 그만한 학자가 항상 있고, 시간당 1,000달러를 받는 변호사라 고 해도 그의 견해를 반박할 상대가 있으며 경력 많은 의사라 도 그와 의견을 달리하는 동료가 많을 것이기에 나는 그 누구 의 절대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나 스스로다. 나는 나 스스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나는 독립적 인격체다. 내가 스스로를 이렇게 존중하면 내 안 에 나를 사랑하는 자존감이 생긴다. 이 자존감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도 그 어떤 권위에도 무조건 굴복하지 않게 한다. 사랑하는 부모님도, 존경하는 선생님도, 신부님, 목사, 스님에 게조차도 내 자유의지를 넘길 수 없다. 신에게라도 그것을 빼 앗길 수 없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 신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투자에 있어 은행 직원, 증권사 직원, 투자 전문 가, 선배, 혹은 세계 최고 펀드책임자, 은행장, 정부 고위관리 그 누구의 의견도 당신을 대신해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다. 스 스로 판단하고 공부하고 결정해야 한다. 투자 문제에 있어 사 고팔 때와 전망과 상품을 묻는 것은 하수들의 행동이고 대답 을 하는 사람도 하수다. 고수는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오직 '모른다가 정답인데, 오직 하수들이 모른다고 말하는 것 이 부끄러워 말을 함부로 할 뿐이다. 투자도 공부고 경험이다. 부자가 되고 자본을 모으는 기 술은 결국 공부와 경험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모두를 혼자 스 스로 해내야 한다. 남의 의견을 듣고 투자에 성공한 사람은 남 의 의견을 듣고 망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거물이 되어 남이 당신을 자랑하게 만들어라. 세상의 권위를 존중하되 의심하 는 태도를 끝나는 날까지 유지하기 바란다. 절대로 길들여지 지 말고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스스로 규 칙을 만들다 보면 규칙이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 비로소 당신은 혼자 스스로 서게 된 것이다.
아무리
아무리
여행의 쓸모
그 벤치 앞에 앉아 있으면 나는 빨랫줄에 널려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 빛깔 빨래가 된 느낌이었기에.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조금 뒤처지는 듯한 내 모습을 사랑했던 것이다. 굳이 무엇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좋은 공간,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은 공간,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 사이에 있는 틈새야말로 내가 진정한 안식을 느끼는 공간이었다. p286
그 벤
그 벤
여행의 쓸모
이런 공간에서는 관객이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야'라는 생각 때문에 소외되지 않는다. 마치 영화를 보듯 편안하게 미술을 관람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작품과 관객 사이의 머나먼 거리가 좁혀지고, 전문적 비평가와 아마추어 관람객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 진다.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예술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것이다. p280
이런
이런
댐즐

밀리 바비 브라운은 에놀라 홈즈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프로듀싱을 맡았다. 20살의 나이인데 이런 현실적인 감각은 타고난 건지 학습한 건지 조로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마약에 빠지지 않는 한 이들 세대는 최소 140살까지는 살 수 있을 거 같은데 초년 시절부터 이렇게 돈을 꾹꾹 담아두면 70대쯤되면 미디어 재벌(그때까지 올드 레거시 미디어가 남아있을진 모르지만)이 되어 있을 거 같다.

댐즐
댐즐
강철왕국 프로이센

저자 크리스토퍼 클라크는 호주 출신의 독일사학자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이며 2015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에 영국과 독일의 관계를 위해 일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지난 번 읽었던 ‘독일 현대사’는 독일의 1870년 통일부터 1990년 재통일에 이르는 시기의 말 그대로의 ‘독일사the Hisotory of Deutschland’였다면 ‘강철 왕국 프로이센’은 약 1600년부터 1945년까지 지원진 이름의 나라 프러시아(프로이센은 Preussen이라는 독일어, Prussia는 영어식 표현이다; 익숙한 프러시아로 쓰겠다)의 역사를 다루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 미국과 영국은 양차 대전의 원인을 프러시아라는 국가의 정신, 정체성에 있다고 파악하고 그 물리적 실체와 함께 그 정신(Preussentum)을 지우고자 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독일의 지명에서조차 프러시아라는 이름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일본의 근대화는 프러시아의 역사 발전을 그 모델로 차용했고 한국, 대만, 중국의 개혁 개방은 모두 일본으로부터 그 근대화에 필요한 방법들을 학습해 성공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러시아는 더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의 대상이 되는 나라였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여러 선택지 중에서 그리고 그 격변의 시기에 어떻게 그 발전의 精粹(정수)를 찾아 일본이라는 나라가 근대화에 성공하게 되었는지 정말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이 궁금증을 계속 되뇌이면서 그 답을 찾아가고 싶다.


앞서 소개한 책 ‘중세’에서 13세기 폴란드와 헝가리가 몽골의 침입으로 인구가 격감했을 때 서쪽의 부지런한 게르만족이 이주해 그 빈자리를 메웠기 때문에 오히려 몽골의 침입 이전보다 생산성이 더 올라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프로이센 정신(Preussentum, Prussia Virtues)이라고 칭송하는 독일의 국민성이 꽤 오래전부터 프러시아 지역에서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의 서러시아,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폴란드에 이르는 북독일, 발트해 연안 지역은 원래 이교도들이 살던 지역이었다. 인종적으로는 슬라브족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13세기가 되면 튜튼 기사단 혹은 독일 기사단이 십자군 전쟁을 벌여 서서히 이 지역이 기독교화 된다. 이들 독일 기사단은 같은 가톨릭 국가인 에스토니아-폴란드 국가들과도 영토적 전쟁과 대치를 하게 된다. 십자군 전쟁 이후 템플 기사단의 숙청을 지켜 보면서 이들 기사단들은 교황과 가톨릭 교회에 엄청난 불신과 원한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훗날 종교 개혁에 이르는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18세기 출현한 프리메이슨과 그것의 급진 세력인 일루미나티는 모두 독일 가사단과 무관치 않다.  


주요 프러시아의 통치자들을 간단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1525년 튜튼 기사단의 大마스터였던 알베르트가 프러시아 공작이 되며 세속국가화 된다. 알베르트는 브란데부르크를 영지로 갖는 호헨즐레른가의 귀족이었고 브란데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출권을 갖는 選(선)제후국이었다. 이후 프러시아는 호헨즐레른가의 가계로 이어진다.


1688-1713년(재위) 프리드리히 1세 시기 신성로마제국내에서 공국에서 왕국으로 도약한다.(1870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이 통일되기 전까지 신성로마제국은 오스트리아를 포함해 약 300여개의 크고 작은 나라들의 느슨한 연합이었다.)


1713-1740(재위) 프리드리히 빌헬름 I는 군인왕이라 불리며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 전성기의 초석을 놓는 군제 개혁 등을 이룬다.


1740-1786(재위) 프리드리히 II, 프리드리히 대왕이라고 불린다. 18세기 계몽군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와 이순신 그리고 계몽주의를 합쳐 놓은 듯한 인물처럼 보인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1740년 즉위하자 마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영토였던 실레지엔을 공격해서 차지한다. 이는 그때까지 신성로마제국 내의 역학 관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는 대 변곡점이 된다. 오스트리아는 영국과의 동맹을 포기하고 프랑스, 러시아와 동맹을 맺게 된다. 그 결과물이 7년전쟁(1756-63)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니얼 퍼거슨에 의하면 7년 전쟁은 산업혁명 이전 시기, 20세기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최초의 세계적 규모의 대전쟁이었다고 파악한다. 프랑스가 인도와 북아메리카에서 입지를 상실하는 것과 동시에 이제 러시아는 유럽 역사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등장하게 된다. 이 전쟁의 결과로 폴란드는 러시아와 프러시아에 의해 분할 점령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거래를 통해 프러시아의 동부 영토를 러시아에 양도하고 서쪽의 라인강 유역의 공업 지대를 획득하게 된다. 이 모든 사단이 프리드리히 2세의 슐레지안 침공에서 격발된다.


프러시아는 官民(관민)이 一體(일체)화 되는 전형적 사회였던 것처럼 보인다. 기본적으로 프러시아는 문맹률이 낮고 식자율이 대단히 놓은 사회였으며 공무원들이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계몽주의자로서 큰 역할을 담당한다. 영미 사학계의 주장처럼 시민 계급의 성장이 지체된 독일의 후진성이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는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임마누엘 칸트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치세를 계몽주의 그 자체로 파악했다. 왕이 스스로 프리메이슨의 회원이 되었고 수많은 독서회와 이념써클에 공무원들이 참여해 자신들의 의견을 언론 매체에 피력한다.


1820년대 헤겔은 프로이센이라는 국가를 ‘이성’과 동일시 하며 그의 시대에 이르러 역사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일체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와같이 저명한 철학자들이 자신의 조국에 대해 했던 평가를 오늘날 단순히 국수주의적 뽕이라고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 사회의 성격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 18세기 영국에서는 좀도둑에게도 쉽게 사형 판결을 내려 처형했고(한 해 1천 명이 넘었다) 수 많은 경범죄자들을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오지에 갖다 버렸지만 독일에서 이 시기 사형수는 세 자리수를 넘지 않았다. 그것도 실체 처형된 경우는 아래쪽 두 자릿 수에 해당한다. 또 오늘날과 같은 사회복지 개념이 모두 공산주의자들이 아닌 바로 프로이센이라고 하는 국가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 영미 사학계는 이를 단순히 융커 귀족들이 가부장적 권위주의에서 비롯된 사회정책이라 폄하하지만 그런 주장은 牽强府會(견강부회)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독일 철학과 실제의 국가실체와의 유착을 보면서 독일 근대 철학을 지나치게 이상화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것은 바로 이 시기 헤겔이 프로이센이라는 국를 통해 국가와 이성이 합체되는 역사의 종언이 이루졌다는 선언을 카피한 것이었다.또,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칼 마르크스가 헤겔의 ‘국가’를 유물론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치환한다. 그 역시 자본주의 종말론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역시 헤겔을 본 뜬 것이었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서양 철학이라는 것 역시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었다.


프러시아는 사회경제적으로 균질한 사회 구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엘베강 동쪽과 같이 융커 귀족 중심의 봉건적 사회질서가 강한 사회도 있었지만 라인강 유역의 서부처럼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사회경제 구조를 동시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말할 수가 없다. 지배계급의 비정상적 내지 과도한 착취 구조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20세기는 공산주의의 시대였지만 역사적 실험을 통해 ‘평등한 인간 사회’는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는 역사적 교훈을 학습하게 되었다. 때문에 전국시대 유학자들이 왕도정치를 주장했던 것처럼 프러시아와 같은 사회 모델을 참고하는 것은 결코 무용한 노력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 이후 愚衆(우중)의 정치 시대로 접어든 것이 분명하다.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의 불만과 불안이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며 표출되기 보다는 오로지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 모리배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 이 혼란과 혼돈의 와중에 올바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이 생기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 듯 내 의식의 안뜰에 이렇게 봄볕과 같은 각성의 시간이 찾아 드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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