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더 쭉쭉 뻗어나가시길요^^
@ 전문 쇼콜라티에의 부심가득한
초콜렛책방
콜린 윌슨 본인은 이 작품을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자 서문이 무척 거창해서 좀 민망할 지경. 나는 산문과 비평을 흥미진진하게 잘 쓰는 사람도 소설을 재미있게 잘 쓰는 것은 아니라는 사례로 본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가 괜찮은 삶을 살았더라도 이런 소설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정확히는 ‘우주의 역사’라기보다는 ‘천문학의 역사’라고 해야 할 책이고, 콜린 윌슨의 유사과학스러운 추측이나 자체연구 내용이 섞여 있어 이 제 와서 교양서로 추천하기도 어렵다. 그런 추측 중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학계 밖에서 독학으로 공부한 똑똑한 사람들이 괴상한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콜린 윌슨도 거기에 해당한다.
독서가 중에는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혐오하거나 경멸해야 마땅하다고 믿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니다.
자기계발서 중에는 분명히 함량 미달인 물건도 많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상살이의 지혜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걸 책으로 엮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집안이나 마을의 어른이 그런 지혜를 가르쳤다.
로버트 그린의 920쪽짜리 책 『‘인간 본성의 법칙』(위즈덤하우스)은 어느 서점에서는 인문학 이론서로, 다른 서점에서는 교양심리 서적으로 분류돼 있다. 내 생각에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잇는 좋은 인간관계 분야 자기계발서이고, 실제로 어떤 서점에서는 해당 코너에 있다.
『인간관계론』처럼 『인간 본성의 법칙』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인간 심리의 비밀스럽고 어두운 구석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 나간다. 타인의 행동에 대처하는 법과 자기 마음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요령도 조언한다. 이것을 처세술이라고 깎아내려야 할까? 오히려 자식이 있다면 꼭 알려주고 싶은, 교과서에 없는 산 지식이라고 본다.
특히 『인간 본성의 법칙』은 80여 년 전에 나온 『인간관계론』에 비해 현대 사회생활에 더 다급하게 필요해진 지혜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탁월하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본다. 수천, 수만 명과 연결되는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타인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중국 문화혁명기의 끔찍한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집단 속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유혹들을 열거한다. 녹아들고 싶은 욕구, 감정의 전염, 과잉 확신, 집단 문화에 대한 순종 같은 것들이다. 리더, 모사꾼, 말썽꾼, 광대처럼 집단에서 개인들에게 부여하는 역할을 설명하기도 한다.
출간 1년도 안 된 책이 5만 부가 넘게 팔리자 출판사에서는 두 권으로 나눈 블랙 에디션을 내놨다. 벽돌을 쪼갠 셈. 두꺼운 분량이 부담스러운 젊은이가 있다면 13장(章)만이라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헌신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방법을 다룬 챕터다.
작년에 초콜렛 책방에서 처음 뵈었던 이평춘 번역가님의 엔도슈사쿠 단편선집 북토크를 진행하신 김혜나 작가님의 소설을 이제야 읽네. 내일 또 반갑게 뵙겠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192-고생이든 가난이든 겪으면 된다. 하지만 있어줬으면 한다.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살아나올 수 있었다. 가장 곤란할 때 나를 구해 준 것은 저축이 아니었다. "관찮아"라는, 그 집 마루에서 당신이 해준 말이었다.
167-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다.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161-내 능력이나 노력만으로 살고 있는게 아니다. 운이 좋았고, 혜택을 받은 세대이다. 그러니 양심을 벼리고, 추하게 늙지 않도록 알람을 켜둬야 마땅하다. 남의 고통에 귀막지 않아야할 업보를 지녔다.
97- 혼자 걷는게 좋은 것은 걷는 기쁨을 내 다리하고 오붓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콜린 윌슨에게는 인간의 정신 능력에 대한 유사과학스러운 믿음이 있었고, 그런 믿음이 강하게 반영된 저술일수록 시시하거나 괴상하다. 아들과 함께 쓴 이 책에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읽을거리로서 재미있고 역사 속 미스터리 같은 분야에서는 그럭저럭 합리성을 유지한다. 국내에는 ‘세계불가사의백과’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가 이후 현재 제목으로 다시 출간됐다. ‘본인이 천재라고 믿은, 산문 잘 쓰는 오타쿠’가 콜린 윌슨의 정체 아니었나 싶다.
2024년 2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온라인 독서 플랫폼 중 하나로 그믐이소개되었습니다.
“‘벽돌책’ 독파하자”… 온라인 독서모임 뜬다
기사 중에서
‘느슨한 연결’ 원하는 독자들 늘며
온라인에 감상문 올리고 토론 벌여
작가와 ‘줌미팅’하며 해설 듣기도
14만 자.
지난해 12월 19일부터 지난달 16일까지 온라인 독서 플랫폼 그믐의 에세이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마름모) 독서 모임이 올린 글자 수다. 500여 개 감상문에는 책의 글귀를 단순히 옮겨놓거나, “잘 읽었다” 정도의 단편적인 소개만 있는 게 아니다. 참여자들은 4주 동안 책을 꼼꼼히 읽으며 느낀 점을 상세히 써 내려갔다. “나도 작가처럼 쓰기를 망설였던 것 같다”며 자신의 감상을 쓰거나, 특정 단락을 놓고 서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10일에는 해당 에세이를 쓴 정아은 작가(49)와 독서 모임 참여자 40명이 서울 마포구의 카페에 모여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김새섬 그믐 대표는 “책을 꼼꼼히 완독한 독자만 모이니 질문의 깊이가 깊고 다양하다. 진짜 책의 내용에 대해 심층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독서 플랫폼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22년 출범한 그믐은 회원 수가 9000명을 넘어섰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2021년 시작한 독파는 3만 명을 넘겼다. 1만여 명이 참여하는 플라이북은 유료로 책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텍스처는 책에 쓰인 문장을 온라인으로 공유해 소통하는 방식이다.
온라인 독서 플랫폼이 인기를 끄는 건 아무 때나 참가할 수 있는 ‘느슨한 연결’을 원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어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독자들이 온라인 만남에 익숙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김새섬 대표는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 온라인에서 활자로 소통하면 오히려 책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독서 공동체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고민도 많고 막막하던 때가 있었어요. 이럴 때 제일 도움이 되는 건 이미 잘 하고 계신 분들에게 물어보는 것이죠. 감사하게도 커뮤니티를 만들어 이끌고 있는 선배님들 몇 분을 만나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트레바리의 윤수영 대표님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트레바리는 오프라인 독서모임도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멋지게 증명하였죠. 강남 아지트와 안국 아지트를 근거지로 일주일에만도 수십 개의 클럽이 열리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간 트레바리에서 클럽장으로 활동할 기회를 주셔서 ‘선택’이라는 키워드로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나에겐 아무런 ‘선택’할 일이 없다고요? 당장 오늘 점심 메뉴만 해도 우리는 볶음밥과 김치찌개 사이 더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했어요.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결국 내 삶을 이룹니다. 클럽에서는 내가 선택한 것, 앞으로 내가 선택할 것, 또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 나를 계속 따라다니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